손에 커피를 들고 길을 걷고 있었다. 코너에서 갑자기 마주친 사람과 부딪혔다. 커피가 쏟아지며 상대방 바지에 얼룩을 남겼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상대가 소리를 지른다.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 했다. 어버버 거리는 동안 그는 몇 마디를 더 퍼붓더니 어딘가로 사라진다. 다시 길을 걷는데 열이 받는다. 그 사람한테도 화가 나고, 아무 말 못 한 나한테도 화가 난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을 두고 까탈스럽고,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라 여긴다. 감정을 누르고 살다 보면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알지 못하면 적절한 행동을 보이기 어렵다. 그래서 당신처럼 얼어붙는 사람도 있고,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도 있는 거다.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표현해야 한다.
감정 표현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야기하면서 자기감정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험담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 나를 힘들게 했는데, 그것 때문에 ‘내 마음’이 어땠는지를 나누는 거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조언을 구하라. 사람들은 도움을 주는 걸 좋아한다. 듣는 일은 피곤하지만, 조언은 보람 있다. 문제는 아무 때나 할 수 없다는 거다. 내가 원할 때마다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스마트폰에 녹음을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벽에 대고 말하는 것보단 낫다. 순간적으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도 할 수 있다. 요샌 녹음을 하면 자동으로 스크립트를 만들어주는 어플도 있다. 조용한 시간에 다시 보면서 감정을 되짚어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을 일단 적는다. 써 내려가는 동안 감정이 진정된다. 다 쓰고 나면 잊어버린 염려가 없으니 맘 놓고 다른 일을 해도 된다. 다시 펼쳐볼 때쯤이면 이미 해결되었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효과적인 것 같다.
예전에 병원 원무과 직원과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허가받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 병동에 올라가기 위해 원내 접수처를 찾았다.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코로나 검사 다시 받으셨어요?” 원무과 직원이 묻는다.
“아니요. 중환자실에서 안 받아도 된다고 안내받았는데요?” 내 말에 그는 옆자리 직원에게 뭔가를 묻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다.
“일단 뒤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아무 설명이 없다. 불친절한 말투에 욱했지만 일단 한번 참는다.
“무슨 일이 있나요?”
“일단 가서 앉아계시면 연락 갈 거예요.”
인내심은 바닥을 쳤다. 현 상황의 부당함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대충 설명해 준다. 그 직원 바로 앞자리에 팔짱을 끼고 앉았다. 병동에서는 해결 중이니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한다. 쿨링 시스템이 고장 난 기계처럼 머리가 달아오른다.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온다..
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병동으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남편을 붙들고 한참 동안 설명해 봐도 소용없다. 병원 홈페이지에 올릴 항의글을 쓰기 시작했다. 환자 응대, 감염병 관리는 물론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 등 병원운영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내가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도 언급했다. 한 시간 만에 완성되었다. 기분이 좀 풀렸는지 졸음이 밀려온다. 업로드는 미루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은 바빠서 그냥 넘어갔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올리지 않았다. 바탕화면에 저장된 채로 있다. 그때 일이 떠올라 화가 날 때마다 그 파일을 떠올리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말보다 글이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데 효과적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감정은 표현해야 한다. 그때 내 몸이 어떤 상태였는지 감각을 다시 인식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거다. 그럼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이 무슨 감정인지 알아차리기 쉽다. 내가 어디 있는 줄 알아야 어디로 갈지 알 수 있다. 나의 감정을 알아야 평안한 상태로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