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alist
약속시간에 늦은 친구가 오길 기다리며 가전제품 매장으로 들어섰다. 아침마다 카페인 수혈을 받아야 정상생활이 가능한 나의 발은 자연스럽게 커피머신 코너에서 멈춰 섰다. 올드스쿨 커피메이커를 시작으로 백만원에서 삼백만원을 웃도는 에스프레소 머신, 디자인에 용도도 다양한 그 섹션에 있자니 없던 선택 장애가 생길 것만 같았다. 물론 살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남이 내려주는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현재 커피메이커를 사용 중이다. 공교롭게도 커피메이커로 내린 커피는 마시자마자 한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드는 압착식 에스프레소에 비하면 묽디묽다. 어떻게 해도 내가 원하는 진한 맛은 나지 않지만 또륵또륵 커피 내려지는 소리와 함께 집안 가득 퍼지는 커피 향은 매일 아침 나에게 잔잔한 행복감을 안겨준다.
해외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다른 가전제품은 모르겠지만 커피메이커는 꼭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업이 떠돌이이기 전 가지고 있던 에스프레소 머신은 한국을 떠날 때 처분해 버렸기 때문에 새로 사야만 했다. 사실 그때 처분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각종 세금 및 공과금을 내어 줄 직장, 그 직장에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나를 실어다 주는 차, 노동력 제공으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쉬게 해줄 집 그리고 그 집에는 언젠가는 사용될 거라 확신했던 요리기구들부터 시작해 용도가 불분명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그리고 옷, 신발까지 보내줘야 할 물건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정리하고 나니 그 많은 소유욕의 증거품들 중 유일하게 비움을 실천하던 곳은 냉장고뿐이었다. 일반적인 직장인의 삶이었으리라. 모든 정리가 끝난 나에게는 투명 플라스틱 상자 4박스 분량의 짐만이 남았다.
겉으로 보았을 때 불편할 것 없어 보이던 그냥 그런 생활을 하던 그때, 나는 행복했을까. 그랬다면 변화를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확신하건대 그때에 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걸 소유하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이것저것 엉겨 붙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내 마음과 같았다. 그래서 비워야 했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시작하여 보이지 않는 것까지 모두. 그렇게 4박스가 되어버린 내 30년을 본가에 맡겨두고 미련 없이 떠났다.
단순한 것. 본질적인 것. 기본에 충실한 것.
현재 내 삶 모든 것에 적용되고 있다. 내면의 비움에 있어서는 아직 시행착오를 겪으며 방법을 찾고 있지만 외면, 생활적인 것들에는 문제없이 잘 적용되어 흐르고 있다. 그렇다면 물질적인 것들을 최대한 최소화함에 있어 불편한 점은 없을까.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기 전인 몇 년 전 나에게 물어본다면 많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감당할 수 있는 불편함이 오히려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비우지 않고 많은 걸 소유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고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모든 건 자기만족. 여기서 중요한 건 '그래서 행복하냐'라는 거다. 나는 비워서, 그래서 행복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져서, 그래서 행복하다고.
소유던 무소유던 미니멀이던 맥시멀이던 내가 느끼는 만족감이 중요하다. 그 감정이 진심이라면 그것이 곧 행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