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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Jan 26. 2024

애견 펜션에 가다.

유기견 입양 일기 8: 처음으로 사람 손길을 허락해 준 날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애견 펜션에 함께 갔다. 나와 남편은 연말 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올까 했지만, 무디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여행의 꿈은 접어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디와 함께 가거나, 호텔링을 하거나, 지인에게 무디를 대신 봐주도록 부탁을 했어야 했는데, 무디에게는 세 가지 중 어떤 것도 무리인 상태였다. 무디는 집과 사람도 낯선 상태에서 새로운 곳으로 간다면, 여행 공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적응해야 하는 무서운 곳으로 인식할 것이기 때문에 함께 가더라도 길게 갈 수는 없었다. 또한 사람을 무서워하는 터라 지인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기에, 적당히 타협을 보기로 했고, 집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태안에 있는 애견 펜션으로 1박 2일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개가 뛰어 놀 수 있는 마당 공간이 펜션 한 채 마다 모두 딸려 있는 곳이었다. 마당 공간은 실내 수영장과도 바로 연결되어 있어, 수영 하다가 마당에서 뛰어놀 수도 있고 마당에서 뛰어놀다가 수영장에 풍덩 뛰어들 수도 있도록 되어 있었다. 무디는 아직 겁이 많아 사용할 수 없었기에 다음을 기약했고, 수영장은 우리들의 차지가 되었다. 

  강아지 샤워실, 드라이기, 침대, 관련 용품 등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개와 지인 집에 놀러가거나, 개와 여행을 가거나 외출을 할 때, 무디 용품 가방이 따로 있다. 마치, 아이를 키울 때 기저귀 가방에 한 보따리를 싸서 나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보니, 나의 보부상 가방은 무디의 짐 가방으로 쓰게 되었다. 방석, 배변패드, 물 그릇, 밥 그릇, 장난감, 배변봉투, 간식, 사료 등 필수적인 것만 챙겨도 벌써 가방이 묵직해진다.      


  펜션에 도착해, 추가 요금을 결제하는데 ‘개는 지갑으로 키운다’라는 말이 조금씩 와 닿았다. 펜션 숙박비용은 비수기여서 할인된 가격이었음에도 35만원 이었다. 게다가 소형견, 중형견, 대형견, 크기나 무게에 따라 추가요금이 발생한다. 무디는 진도 믹스라고 말씀드리자, 사장님은 곧이어 ‘진돗개는 추가요금이 발생할 수 있어요’라며 고개를 갸우뚱해 하셨다. 무디는 진도 믹스지만 아직 아기이고 다른 작은 견종이 있는 믹스견이라 5kg 밖에 안 된다고 했는데, 사장님은 직접 무디를 확인하러 오셨다. 보시더니 ‘아이고, 정말이네요. 귀여워, 정말 작네요’하고 가셨다.      


 “무디가 분명 켄넬에서 나오면 구석이나 어딘가에 숨으려고 할 거야. 위험할 수 있으니까 숨을 만한 곳들을 미리 막아놓자.”

  무디는 병원에 가서도 켄넬에서 나오자마자 숨고 싶어 했었다. 이번에도 분명 그럴 것이 예상됐기에, 숨을만한 곳을 막는 일을 먼저 시작했다. 소파 밑은 내가 봐도 숨기 좋을 공간이었다. 우리는 구석진 곳을 막아놓고 무디 켄넬을 열어주었는데, 역시나! 무디는 숨을 곳을 찾아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안 그래도 들어 갈까봐 막아둔 소파 밑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갔다. 안전하지 않기에 소파 밑에 계속 무디를 둘 수 없었고, 우리는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소파를 움직여 무디를 나오게 했고, 다시 소파 밑에 들어갈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무디는 신발장에 가만히 앉았다. 

  무디가 사람과 교감이 잘 되는 상태에서 여행을 왔다면 최고였을 것이다. 그리고 무디는 평소처럼 집에만 있었으면 마음이 더 편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디에게도 한계로 몰아붙이지 않는 선에서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 믿는 마음도 있었다.      


  무디가 좋아하는 고구마 간식을 놓아주니, 돌아다니며 고구마를 모두 주워 먹었다. 무디의 동태를 조심히 살피며 우리는 간단히 수영을 한 후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수영장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무디가 수영장으로 들어왔다. 거실에 켄넬 문도 열려 있었고, 사람을 피해 앉을 수 있는 다른 공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디는 수영장에 계속 머물렀다. 불편하다고 느낄 때는 잠시 수영장 바깥에 나갔다가 곧바로 수영장으로 다시 들어왔다. 무디는 수영장 물이 신기했는지, 마치 곧 물에 뛰어들 것 같이 오랫동안 호기심을 보이며, ‘들어갈까 말까’하는 듯한 몸  동작을 보여줬다.

  무디가 수영장과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의아하면서도 신기해, 슬쩍 무디 옆에 앉아 봤다. 무디는 도망가지 않고 여전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래서 무디 얼굴을 쓰다듬어 봤는데, 무디는 그래도 가만히 있었다. ‘무디가 낯선 곳에 와서 그나마 우리를 의지하는 걸까? 아니면 도망갈 곳이 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해버린 걸까?’하는 추측을 해보며, 무디의 처음 보이는 행동에 우리는 기쁘기도 당황하기도 했다. 무디를 살짝 들어 무릎에 앉히니 또 가만히 있었다. 이것이 무디와의 첫 번째 스킨십이었다. 

     

  펜션은 복층 구조였는데, 1층에 무디가 혼자 편히 쉴 수 있도록 켄넬과 간식, 사료, 배변패드 등을 두고, 나는 2층 침실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아침에 남편이 귓속말로 ‘무디 올라왔어’라고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침에 깨면서도, 인기척을 내면 무디가 놀랄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눈만 뜨고 눈동자를 굴려가며 주변을 살폈다. 

  자기 전,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은 열 다섯 칸 정도 있는데, 계단 칸 마다 간식을 두었다. 무디 같이 겁 많은 강아지에게 스스로 뭔가를 도전해보고 성취감을 느끼는 경험을 주고 싶어서였는데, 무디는 정말 용기를 내 계단 마다 있는 간식을 먹으며 2층까지 올라왔다. 

  ‘무디도 실은 계속 용기를 내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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