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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Jan 30. 2024

켄넬을 없애다.

유기견 입양 일기 9



  무디는 두 달이 되도록, 켄넬에서 나오지 않았다. 켄넬 안에 있는 무디를 바라보는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마음을 열 때까지 3개월이 걸릴지, 1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니까, 두 달이라는 숫자와 기간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처음 보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자. 확실히 처음 왔을 때보다 긴장을 덜 하고 크고 작은 소리나 사람의 움직임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둔감해졌고, 무엇 보다 밥 잘 먹고 배변 잘하고 잘 놀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조금씩 점점 좋아질 거야.’

  무디의 변화에 집중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의 방향을 다잡아 본다.      


  그러다가 또 반대의 생각도 든다. 

  ‘그런데 무디야, 두 달은 너무 하잖아. 이 정도면 편해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 아휴... 그래, 결국 다 사람들 탓이지. 닭장에서 방치해서 어릴 때부터 모견과 떨어트려 키운 게 사람이니까.’     


  내 안에 몇 개의 자아가 존재하는 건지 이럴 때는 나조차도 정신이 없다. 그러다 많은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줄 것인지, 현재 상태를 유지하며 좀 더 기다려줄 것인지만 결정하기로 한다. 

  주변에서도 시간이 조금 흐르면 무디가 사람이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무디가 너희 집에 온 지 시간이 꽤 지나지 않았어?’라며 걱정과 염려스러운 말들을 하기도 했다. 

  변화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동안 관찰한 것들을 종합해 변화를 주기로 했다.      


  무디와 지내며 발견한 특이점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무디는 사람을 관찰할 수 있고 언제라도 사람을 피해 빠져나갈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한다. 무디에게는 안정감이 최우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디의 방석이나 켄넬을 사람의 동태를 살필 수 없는 장소에 두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가장 구석진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무디는 켄넬을 침실 안에 두면 켄넬 밖으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침실이 이미 가장 구석진 곳이고 사람이 다가올 수 없는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는지, 그곳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사람의 동태만을 살필 뿐이다. 그런데 켄넬을 거실에 둔 채, 사람이 거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따라온다. 거실에서는 다른 방이나 화장실 등으로 간 사람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켄넬 위치를 침실에서 거실로 옮겼다. 그러자 무디는 켄넬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왔다. 하루 종일 켄넬 안에만 있어 몸에 담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켄넬 밖을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 무얼 하는지 졸졸 따라다니며 관찰을 했다.  ‘진작 켄넬을 거실로 옮길걸... 무디가 최대한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침실 구석에 두었더니 오히려 더 밖으로 나오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인터넷에서 켄넬을 배치하기 좋은 장소로, 사람이 너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거실보다는 조용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방구석 쪽을 알려주는데 무디는 일반적인 방법보다는 무디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둘째, 켄넬을 아예 없앴다. 무디에게 켄넬은 ‘침대 밑 또는 서랍장 밑’을 대체할 장소였을 뿐이고, ‘숨을 구멍’이었기 때문이다. 켄넬을 거실에 옮긴 이후로, 무디는 켄넬에서 나와 하루 종일 집안을 돌아다녔고, 켄넬 밖에 있어도 안전하다고 충분히 느낀 것인지 방석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기에 켄넬을 없애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초반에,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켄넬을 분리해 뚜껑을 연 적이 있었는데 무디는 낑낑거리는 소리를 연이어 내며 불안하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켄넬을 없애도 무디는 잠시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보였을 뿐 이내 방석에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한 반려동물 커뮤니티에 무디의 현재 상태와 함께 켄넬을 없애도 될지 질문을 남긴 적이 있는데, 모든 댓글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나의 질문을 보고, ‘그런 상태의 강아지에게 켄넬을 없앤다는 것은 정말 무지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발상입니다.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에요’라며 극구 반대를 했는데, 다행히 이러한 예측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무디는 불안함을 보이지 않았다.    

  

  셋째, 방석 개수를 늘렸다. 침실에 두 개, 거실에 하나. 무디의 쉴 수 있는 공간을 넓혀가기 위함이었다. (방석 개수를 늘리는 과정에서도 무디는 새로 구매한 방석에 처음에는 올라가지 않았다. 간식을 방석 위에 놔주고 간식을 먹기 위해 방석에 올라가도록 유도하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하자 3일째가 되어서야 방석에서 시간을 보냈다.)  또한 무디가 미끄러지지 않고 편하게 뛰어놀 수 있는 매트도 늘렸다. 그러자 집 안에 무디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 무디는 침실과 거실, 서재 곳곳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거실에서 잠을 청하기도 침실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집 안에서 바삐 걷던 걸음걸이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켄넬 위치와 달리 침실에서 거실로 옮겼지만 성공적이었고, 또한 켄넬을 없애면 안 된다는 조언과 달리 무디의 반응을 본 후 켄넬을 없앤 것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실제로, 무디는 사람이 누워있는 침대에 올라와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고, 소파에 올라오기도 했으며, 거실과 침실 모두 무디의 놀이터가 되었다. 무디에게 훈련과 교육을 하는 것보다 마음을 여는 것이 최우선이었기에 그쪽에만 집중을 했다. 그렇게 무디는 집 안에서 편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늘려가는 듯했다.   




방석에 편하게 누워 있는 무디 (저렇게 되기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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