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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Jun 23. 2024

첫 산책

유기견 입양 일기 10


  무디는 두 달 만에 무디 몸 크기만한 켄넬에서 나와 집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켄넬 밖으로 나왔으니, 집 밖으로도 나가야 한다. 무디와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정석대로라면, 간식 훈련을 통해 목줄에 대한 좋은 인식으로 심어주어야 한다. 간혹 산책은 좋아하는 데 목줄을 싫어해서, 산책 나가기 전 목줄을 피해 줄행랑을 치는 개들도 꽤 많기 때문이다. 목줄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목줄을 하면 산책을 나간다는 것을 인지시켜 목줄에 대한 호감을 높여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디가 우리 집에 오기 전, 내 머릿속에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들어 있었다. 물론, 무디가 오고 나서 기존에 알던 일반적인 훈련법은 모두 무너졌다. 


  무디의 성향과 특성에 맞는 방법으로 산책을 나가야만 한다. 그렇게 무디와 산책 나가기 작전이 시작됐다. 무디는 6개월이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경계하는 것들이 많다. 무디는 사람의 인기척이나 소리, 새로운 물건 등에 대한 경계가 높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무디와 같이 '콜'이 안 되는 개는 하네스와 목줄을 이중으로 둘 다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둘 중 하나가 벗겨지거나, 줄이 끊어지거나 했을 때 줄이 하나 더 있기 때문에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안전 줄과 같은 것이다. 목줄 또한 개가 벗으려고 힘을 주거나 당길 때 더 조여지면서 잘 빠지지 않는 목줄을 하는 것이 좋다. 

  겨울철이라 벗겨질 염려가 없는 하네스 재킷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무디에게 하네스와 목줄을 모두 하는 것은 무리였고, 하네스를 하고 그 위에 또 옷을 입는 것도 무디에게는 부담이었다. 그리고 발을 끼우고 가슴을 채우는 옷은 무디에게는 버거울 것이 분명했기에, 입기 최대한 간편한 재킷으로 선택했다. 대신 고리나 줄이 끊어질 것을 대비하여 리드줄 두 개를 연결했다.  

  

  무디에게 적합한 하네스 재킷과 리드줄을 구매한 뒤, 물품을 집 안 곳곳에 두었다. 무디는 새로운 물건에 호기심을 보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나 목줄과 리드줄 냄새 맡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그런 무디의 행동을 몰래 훔쳐보면 산책용품이 무디에게 덜 낯선 물건으로 인식되기를 바랐다. 그러고 나서 무디 몸에 목줄을 대고 가볍게 문질러 주었다. '쓰담쓰담' 하니 처음에는 무디 몸이 경직되어 얼어 있었지만 점차 긴장을 푸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무디에게 목줄을 채워... 보려고 했으나 완벽하게 실패했다! '훈련사 영상이나 책에서 봤던 것처럼 순조로우면 역시 실전이 아니지'라고 심기일전하고 그 다음날 다시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무디는 목줄과 하네스를 보면 바로 겁에 질렸다. 그럴 만도 하다. 사람이 무디를 뜬장에서 빼네 켄넬에 넣고 보호소로 데려간 기억, 병원에서 강제로 예방접종을 한 기억, 사람이 무디에게 뭔가를 한다면 무디를 괴롭혔다고 느낄만한 기억뿐이기 때문이다. 목줄과 하네스를 바닥에 두고 그 안에 간식을 넣어두면 무디는 몇 번의 경계 후 목줄 안에 얼굴을 넣어 간식을 먹었다. 이런 식으로 무디와의 휴전 기간을 가졌고, 무디가 목줄과 친해지길 바라는 시간을 가졌지만 그럴 여지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결심을 해야 했는데, 일단 하네스를 어떻게든 하고 밖에 나가 보기로 결심했다. 이 와중에도 무디는 고개를 돌리는 카밍 시그널을 보내며 하네스가 싫다는 표현을 했지만 입질을 하거나 사람을 물려고 하거나 으르렁대지 않았다. 그렇게 하네스를 착용하고 집 안을 먼저 몇 바퀴 같이 걸었다. 무디는 리드줄로 사람과 연결된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과 발맞춰 걷는 모습을 확인한 후, 밖으로 향했다. '가 보자.'


  무디는 세상에 처음 나왔다. 이런 넓은 세상이 있었는지, 냄새 맡을 수 있는 풀과 나무와 흙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무디에게 자연 냄새를 맡고 바람을 느낄 여유 같은 건 없었기에, 꼬리는 땅에 떨어지다 못해 무디 몸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무디가 리드줄을 따라 잘 걷는 듯하다가 돌발행동을 보였는데, 바로 길가 수풀 속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마른 수풀 안에 딱딱하게 얼은 가지뿐이라 얼굴이 긁히고 몸이 아플 텐데, 그런 것은 개의치 않고 몸을 마구 욱여넣었다. 이때서야 떠올랐다. 무디는 구석에 숨고 싶어 하는 본능이 강하는 것이. '설마 밖에 나와서도 구석을 찾아 숨으려고 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네...'


  그래도 무디는 처음치고 잘 해냈다. 한동안 무디와 산책을 나가는 것은 노동이었다. 산책을 실제로 하는 시간은 10분, 20분 정도인데, 산책을 나가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고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 기본 30분 이상씩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실랑이를 벌이며 3주 정도 꾸준히 산책을 나가자, 무디는 조금씩 변해갔다. 산책의 즐거움을 알아갔다. 밖에 나가기만 하면 축 쳐져 말려있던 꼬리는 위풍당당하게 올라갔고, 무디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네 달 정도가 지나자 무디는 '산책'이라는 단어를 알아듣게 되었다. 무디는 '밥'이나 '간식'과 같은 단어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산책'이라는 단어에는 누가 봐도 행복한 강아지임을 온몸으로 피력하게 되었다. 

  심지어 무디는 사회성이 매우 좋은 강아지였다. 산책을 하며 만나는 온 동네 강아지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사람은 피해 다니지만, 강아지만 보면 무디는 강아지와 인사하고 같이 놀고 싶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꼬리가 말려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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