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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Jun 23. 2024

간식 무서워하는 강아지

유기견 입양 일기 11


  애견 운동장이나 애견 카페를 가면, 마치 소지품 검사하는 어린 시절 선생님 또는 공항의 수색견처럼 사람들의 가방을 검사하며 돌아다니는 개들을 꽤 봤다. 간식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 킁킁대며 돌아다닌다. 아니면 여태까지 만난 개들은 간식 봉지 부스럭 대는 소리만 나도, 간식을 먹는다는 기대감에 멀리서도 달려오는 경우가 많았고, 간식을 얼른 달라며 제자리에서 몇 바퀴를 '뱅그르르' 돌며 기쁨을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역시나 무디는 내가 봐왔던 개들과는 달랐는데, 간식에 무관심한 정도가 아니라 간식을 주려고 부엌으로 가 봉지를 열면 '후다닥' 도망을 갔다. 무디는 간식 봉지 소리를 무서워하는 듯했다. 심지어 겁이 많은 강아지에게 직접 가깝게 다가가 간식을 주지 않더라도, 멀리서라도 간식을 던져 주어 '사람은 간식을 주러 다가오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좋은데, 무디는 간식을 던져 주는 것도 무서워했다. 간식을 던져주려는 손동작이나 모션만 취해도 역시나 도망갔다. 사람 눈만 마주쳐도 줄행랑을 치던 그 모습과 같았다.


  '자, 무디야, 간식 먹자'라고 하면 무디는 도망갔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아 간식을 내밀면, 무디는 도망갔다. 

  무디와 멀리 떨어져서 무디 쪽으로 간식을 최대한 살며시 던져주면, 무디는 도망갔다. 

  부엌에서 간식을 꺼내려고 봉지를 열다가 '부스럭' 소리가 나면 무디는 화들짝 놀라 도망갔다. 

  사실 무디와 나의 거리가 이미 멀리 떨어져 있어서 더 이상 '도망'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거기에서도 도망을 갔다.


  무디와 나의 출발점은 이런 것이었다. 다른 강아지에게는 간식을 꺼내면 바로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것이 시작점이라면, 무디는 간식을 꺼내면 놀라 도망가는 것이 시작점이었다.

  온갖 영상을 보며 이 역시 공부하고 시도했다. 무디와 같은 강아지는 약간의 밀고 당기기가 필요했는데, 오히려 내가 '제발 간식 먹어줘'라는 뉘앙스로 간식을 주기보다는, 간식을 꺼내두고 '먹으려면 먹고 말려면 말아'라는 태도로 무디를 대했다. 간식을 꺼내서 '무디야, 간식~'이라고 해보고 무디가 도망을 가면 도로 봉지에 간식을 넣고 치웠다.  물론 이 방법만으로 바로 효과가 나타나진 않았다.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 무디가 먼저 다가오면 그럴 때만 간식을 꺼냈다. 무디는 사람과 한 집에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존재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그들의 행동반경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뭘 먹는지,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한참 동안 무엇을 하고 나오는 건지, 샤워를 하고 나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드라이기로 뭘 하는 건지,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는 부엌을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TV를 볼 때는 소파에 앉아 TV를 응시하면서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고 심각해지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그런 것들은 한동안 관찰했다.

  그럴 때마다 무디에게 얼마든지 보여줬다. '사람은 드라이기로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는데, 소리가 좀 난단다'하면서 머리카락을 말릴 때마다 등 뒤에서 슬며시 나타나는 무디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무디는 사람의 하루 일과를 관찰하고,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안정감을 느끼는 듯했다. 무디는 그런 식으로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슬며시 다가와 냄새를 맡기도 하고 가만히 응시를 하기도 했는데, 집안 곳곳에 간식을 구비해 두었다가 무디가 다가오면 아주 자연스럽게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간식을 '슥'하고 내밀었다. 그러면 무디는 간식에 관심을 보이고, 다가와 손에 있는 간식을 먹었다. 


  그리고 세 번째, 무디가 침대에 누워 있으면, 간식을 무디 앞에 던져 주기만 하고 쿨하게 떠났다. 내가 간식을 던져 주고 자리를 바로 떠나면 무디는 곧바로 간식을 먹었다. '사람은 무디가 좋아하는 간식을 주는 사람이야', '사료 말고도 맛있는 간식을 주려고 다가오는 거야', '간식 봉지 부스럭 소리가 나면 거기서 간식이 나와'라는 것들을 무디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러한 노력들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러자 무디는 간식을 쥔 손에 달려들기도 하고, 간식 봉지를 소리를 내면 꼬리를 흔들며 먼저 다가오기도 했다. 

  '옳지, 잘한다, 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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