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그리워했던 것을 다시 마주했을 때, 그리움이 변한 적이 있나요?.
여러분은 한때 너무나 그리워했던 것을 다시 마주했을 때, 그리움이 변하는 걸 느낀 적이 있나요?
1) 그리움은 참 묘한 감정이다. 그리움을 생각하면, 대학생 시절 파리를 포함한 해외에서의 476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매일 행복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청춘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루하루가 다채로운 감정들과 새로운 모험으로 가득했다.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보낸 시간들은 내 20대 초반의 일기장을 채웠다.
2) 마지막 학기가 종강하고 나서도 그리움은 내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처음 겪어보는 공허함을 메우려 혼자 즉흥 여행도 많이 떠났었지만 해소가 안 됐다. 한 친구가 “너는 왜 맨날 스토리에 그립다는 말만 올려?”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부딪히려 휴학을 하고, 초대해 준 친구들 집이 있는 대륙과 도시들을 연결해서 배낭 하나를 메고 세계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움이 내게 단순한 향수인지, 간절한 마음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나 보다.
3) 이런 충동이자 감동이었던 경험들이 무색하게, 귀국해서 복학하고 취업을 하면서 정말 바쁘게 일만 하면서 살았다. 연차를 매년 다 못 썼기 때문에 멀리 여행 간다는 건 불가능했던 삶이었다. 그러다가 몇 달을 고생해서 간신히 휴가를 내 다시 파리를 찾았다. 4년이 흘러 다시 만난 파리의 거리는 여전했고, 시간이 멈춘 듯했다. 종종 볶음밥을 포장하던 기숙사 앞 중식당도, 하굣길에 바게트를 사던 단골 빵집도 그대로였다.
4) 하지만 친구들이 많이 떠난 파리는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자주 산책하던 동네 공원을 다시 찾았을 때, 문득 앞으로도 이곳을 올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 조금 쓸쓸해졌다. 그렇게 소중하던 공간들이 시간 속에 희미해지는 걸 보면서, 추억은 어쩌면 추억으로 남기는 게 가장 아름답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고, 새로운 사람들과 인생에 대해 대화를 하면서 여러 깨달음이 있기도 했다.
5) 교환학생 시절, ‘그리움은 슬퍼서 힘들지만, 내게는 멋진 일을 벌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일기에 쓴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리움은 나를 과거로 이끌지만, 신기하게도 현재를 더 선명하게 보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쳇바퀴를 도는 것 같던 회사 생활 속에서 과거는 실제보다 더 빛나게 기억됐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그리움 때문인지 4년이라는 시간을 잘 버텨왔기에 항상 감사하기도 하다.
6) 파리 공원 벤치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하지만 그리움은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과거를 마음 한편에 조용히 간직한 채 앞으로 걸어가는 법을 알게 됐다. 어쩌면 이게 그리움의 역설이 아닐까? 그리워한 만큼 성장했고, 이게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는 지금 이 순간과, 앞으로 꾸려나갈 미래가 더 중요해진 것 같다.
7) 재작년 가을에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그리움을 살며시 내려놓고 나만의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 지나간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새기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됐다. 그리움의 진짜 의미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서 미래를 준비하는 지금 이 순간 자체에서 오는 것 같다. 그리움은 과거에 묶인 감정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내게 온 선물이면서 미래를 꿈꾸게 하는 희망인가 보다.
이제는 과거의 나를 품고,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미래의 나를 그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