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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에 10일 동안 긴 글을 써봤다

소셜미디어 계정 하나로 나의 가치관을 알릴 수 있다는 것

by Jiiin 진

*2024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현재는 1년 넘게 계속 콘텐츠 제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jiiinlog


영상 플랫폼에서의 긴 글 도전기


1) 인스타에 긴 글을 올린 지 벌써 10일이 지났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을 주변에서 거의 못 봤기에, 이 경험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업계 특성상, 일할 때는 더 빠르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데만 신경을 씁니다. 제 긴 글들은 ‘오글거린다’는 평가를 받을까 혼자만 간직했었습니다. 그런데 인스타에 장문의 글을 올리는 분들이 많아 놀랐습니다.


2) 대학생 때, 수식만 풀고 그래프만 그리다가 복수전공으로 철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중 800쪽짜리 교재로 한 학기 내내 하나의 주제로 끝없는 토론을 하며 논증, 반박, 재반박을 펼치는 강의가 있었습니다. 내면으로 울면서도 인간과 과학에 대한 아티클을 미친듯이 읽고 생각하며, 말과 글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3) 요즘 인공지능에 의지하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생각 근육이 사라지는 것 같아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취업 후 책을 멀리했기에, 다시 사유하고 글을 쓰려니 어렵습니다. 초반이라 제 이야기 위주로만 적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경험이 세상의 전부인 양 타인의 삶을 재단하게 될까봐, 글 쓰는 행위 자체에 경계심이 들기도 합니다. 주로 사회과학을 좋아했기에,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4) 최근에는 산발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알고리즘은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제 영상이나 사진이 별로라는 뜻이 아닐 거라고 합리화 중) 그래도 구조화되지 않고 횡설수설한 생각 조각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한 분이라도 읽어주는 것에 감사하며 ‘그냥’ 해볼 예정입니다. 저를 몰랐던 분들께, 이 계정 하나로 제 가치관을 알릴 수 있다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부록: 왜 게시물 사진에 시집을 넣었을까?


1) 중학교 1학년 때, 주말마다 인천까지 재즈 피아노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습니다.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핑계) 제 연주에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 크고 보니, 확실히 인생 경험치가 쌓인 뒤의 음악은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시나 소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어 시간에 작가와 시대 상황, 각 단어가 무엇을 비유한 것인지 하나하나 암기하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글의 논리를 분석하면 명쾌하게 풀리는 비문학과 달리, 문학은 저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나 소설 자체에 순수하게 몰입하기 힘들었습니다.


2) 자기계발서를 너무 많이 읽어 질린 탓에, 새로운 책이 필요해서 최근 도서관에 다녔습니다. 우연히 시집을 모아놓은 곳을 보게 되어, 몇 권을 집어들었습니다. 원래 알던 시인 위주로 보긴 했지만, 과거와 달리 모든 배경지식을 버리고 온전히 활자에만 집중하니 매력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제 취향이 아니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인스타처럼 시각적인 자극이 주가 되는 플랫폼에 긴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모험이었습니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이 도전이 뿌듯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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