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뻔한 스릴러가 아닌 당신이 죽였다.

경로를 이탈해야만 보이는 진정한 나

by 어떤이




왜 제목이 당신이 죽였다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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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밀은 마지막화의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은수와 희수 그리고 우리들'. 이 이야기가 단지 주인공 은수와 희수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 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 세상에 살고있는 수많은 은수와 희수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삶을 만드는데 일조했거나 도와주었던 연관된 인물들까지, 그 모든 사람을 포함한 것이다. 그렇다면 제목에서 말하는 '당신이 죽였다'는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것을 의미할까? 아마도 이건 중의적인 의미로 느껴졌다. 두 가지의 죽음이다. 영혼이 죽은 사람과 실제로 죽은 사람.


첫 번째,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영혼을 죽임'을 의미한다. 피해자는 극중 초반 은수와 희수다. 은수와 희수의 겉모습과 일상생활은 완벽하다. 희수는 금전적으로 안정되고 매번 보석선물을 해주는 자상한 남편과 결혼한 행복한 아내다. 자신 또한 잘 알려진 유명 동화작가이다. 여기에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소중한 친구 은수가 곁에 있다. 은수는 백화점 VIP를 전담하는 유능한 직원이다. 부하직원의 선망의 대상이며 상사에게 인정받고 있다. 본인 또한 본인의 일에 만족하며 언젠가 이룰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들은 껍데기와 다르게 철저하게 부서진 존재들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무자비한 폭력에 장기간 노출되어 있었던 피해자들. 잔인한 상처가 나고 아물고 또 상처나고 아물고를 반복하며 이제는 상처가 느껴지지도 않게 되어 버린 사람들. 그들의 영혼은 죽어 있었다.


그들을 죽인 가해자는 여럿이다. 고통을 가한 가해자, 그런 위선적인 가해자를 길러낸 부모, 출세욕에 눈이 멀어버린 속물, 알면서도 외면했던 방관자들이다. 이들은 죄책감 없이 한 인간의 영혼이 죽였다. 눈을 뜨고 걸어만 다닐 수 있는 껍데기만 남은 좀비로 만들어버렸다. 특히 '당신'은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 이들을 지칭한다. '내 자식을 사랑한게 죄야?', '남 일인데도 내가 죄책감을 가져야해?', '직접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잖아' 등의 자기 해명을 늘어놓으며 억울함에 호소하는 이들. 이 시리즈는 그런 사람들에게 퍼붓는 지탄이다.


'아니, 당신이 죽였어. 그들의 영혼을'


두 번째,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죽임'이다. 피해자가 의기투합하여 가해자를 죽였다. 그 과정은 너무도 험하고 길었지만 그들은 결국 성공했다. 여기에서 '당신'은 직접적으로 죽인 피해자가 아닌 그들을 도운 조력자들을 지칭한다. 간접적으로 계속해서 그들의 곁에서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힘을 주고 있던 사람들이다. 오랜 고통속에 노출되었던 피해자들은 움츠러들기 때문에 돕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은 결국 피해자가 '응징'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을 때 이를 돕는다. 이미 그를 능력이 있던 사람은 직접적인 조력으로,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모른척하면서 그들을 도운 사람들도. 모두가 피해자들과 함께 악마를 응징한 사도들이다.


당신도 함께 죽였다. 그 악마들을




인간의 책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인물, 진소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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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하셔야겠어요?' 직원의 물음에 그는 한마디를 했다. '내 책임도 있어'. 그는 그 옛날 본인이 지키지 못했던 책임을 계속해서 마음에 묻어두고 있었다. 잊지 않으려고 자신의 공간에 억지로 잡아두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미련과 후회'가 은수를 만나면서 '책임'으로 승화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은수를 걱정했고 그녀를 진심으로 도왔다. 또 여느 드라마처럼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얄팍한 감정으로 덧칠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의 묵직한 책임감을 또 느끼게 해주는 말은 '내 직원이니까'이다. 직원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내 사람이니까'가 더 맞는 표현이지 않을까. 모든 사람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고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 그는 자신만의 기준이 확고하다. 그 기준은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은 다르기도 하다. 그러니까 법이나 도리, 인륜 같은 기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 시계를 훔치고도 너무도 당당한 그의 태도가 이런 그를 말해준다. 그러나 반대로 그만의 기준이 확고하기 때문에 기준에만 충족된다면 '무조건'이다. 은수는 그의 기준에 충족한 '그의 사람'이 되었고 그는 그런 은수를 끝까지 믿고 지원한다.


특히 자신이 시작한 일을 스스로 마무리짓고 싶어하는 은수의 부탁을 단지 눈빛만으로 이해하고 들어주는 그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는 단지 내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방식이 아닌, 그들이 진정으로 다치지 않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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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착하다'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 단어에는 나약하고 순종적이고 멍청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대신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내가 정의하는 '좋은 사람'은 적재적소에 자신의 힘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약자는 돕고 강자에게는 맞서면서 어느 누구도 다치거나 희생되지 않고 모든 생명체가 자기다움을 지키면서 살 수있는 세상을 만들 수 았게 하는 사람. 그 세상의 일원이기도 하고, 균열이 생겼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해 힘을 쓸 줄도 아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두 주인공 은수와 희수, 진소백, 아랫집 아주머니, VVIP사모님, 경찰이 그 역할을 했다. 그들은 은수처럼 사연있는 사람도 아니고, 진소백처럼 부자도 아니고, 에이스 경찰도 아니다. 그렇다고 용감하게 나서서 주인공들을 구해낸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의 말에 이끌려 섣부른 판단을 하지도 않고, 두렵지만 작은 손이라도 내밀어보려고 노력하며, 나서서 소리를 내지는 않아도 침묵으로 주변사람을 지켜내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런 평범한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우리 사회에 더 큰 영향을 주며, 그것이 진정한 좋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되는 방향이 아닐까 싶다. 비록 아주 작고 느리더라도.




진짜를 가려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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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는 모순적인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외모, 재력, 성격 모두 완벽한데다가 아내바라기인줄 알았던 노진표는 가정폭력범이었고, 도둑이고, 조선족이고, 불법도박장을 운영하는 진소백은 그들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다. 하필 시체를 묻으러 가는 길에 일어난 로드킬 사고는 발각되지 않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장애물이 될 것 같았던 노진영 모녀는 결과적으로 주인공들에게 가장 골칫거리인 부분을 해결해준다. 돈 많은 사모님은 보여주기식 전시를 하는 위선자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계획에 꼭 필요한 퍼즐이 되어주고, 오지랖부리는 아줌마일 것 같았던 아래층 이웃은 눈치빠르게 그들의 계획을 눈감아준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상식'이란 반드시 통하지 않는다. 세상은 위선적인 것도 많고, 내가 보고, 믿고 있는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럴듯해 보이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가려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세상과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나를 껴맞추려고 하지 말고 진짜 나를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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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이 멘트가 나온다. 그들이 절박하게 계획을 실행하며 이동할 때 나온다. 멘트를 듣기만 해도 불안감이 밀려오는 말이다. 특히나 오로지 네비게이션에 의존해 목적지로 이동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보다 무서운 말이 없다. 이 시리즈에서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진정으로 바라는 일을 하려고 할 때 불안함을 느낀다. 관성의 법칙 때문이다. 뇌는 효율을 위해 원래 하던 행동과 방식을 고수하고자 한다. 기존의 행동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안되는 이유'를 내 머리속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습성때문에 운동도, 학습도 뇌의 기존 패턴을 벗어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매번 하기 힘든 것이라고도 한다. 하다못해 운동도 그렇게 힘든데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살아오던 나의 인생과 삶, 주변인을 바꾸는 것은 얼마나 힘들까. 옆에서 누군가가 아예 업어서 데리고 가지 않는 한, 한 발자국은 물론 손가락 하나 까딱 움직이는 것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용기를 내서 가야한다. 불안하더라도 나에게 옳고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그 무거운 한발 한발을 손으로 잡고 끌어올려서 내딛도록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경로를 이탈한 것처럼 보이고, 무언가 불안하더라도 그게 바로 천편일률적인 네비게이션이 아닌 오직 하나뿐인 내 영혼의 지도가 이끄는 방향이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더 이상은 이 문장에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느끼자. 뇌를 가스라이팅 해보자.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이 펼쳐질 것이고 내가 알지 못한 나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찿다보니 원작이 오쿠다 히데오의 '나오미와 가나코'. 내용도 익숙하고 오쿠다 히데오 책이라면 열심히 읽고자 하는 내가 언젠가 읽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원작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다시 한번 책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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