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2025년 트레바리 마지막 모임에 참여하며

by 어떤이

나의 독후감


처음엔 그저 사람과 사람 간의 호의와 베풂, 선물, 인정, 선의 등에 대한 내용으로 이해했다. 이에 대해서도 단순하지 않게 일상 생활에서 느꼈던 묘한 기분과 이유를 모를 따뜻함과 같이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아주 꼼꼼하게 쌓아올린 근거로 요목조목 설명하는 내용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놀라움이 경이로움이 되었다. 우리의 사회는 얼마나 많은 증여로 이루어져 있으며 숨은 공로자가 얼마나 많을지에 대한 깨달음이 나를 벅차게 했다.


사랑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사랑 덕분에 살게 된다.


엄마는 항상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귀찮아하면 엄마는 짜증내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란 존재는 원래 말을 많이 해야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항상 서로 적당한 관계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나도 상대를 귀찮게 하지 않고, 상대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길 바랬다.


그런데 30대가 되고 나서 알았다. 그 귀찮음이라는 것이 기브앤테이크로 채워지지 않는 우리 삶의 아주 작은 틈새를 마지막으로 메워주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이 적정거리를 깨고 한발자국 서로에게 다가가는 관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없으면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다. 우리는 왜 존재하고 사랑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사실 어느정도 인생을 살아보면 내가 왜 이 세상을 살고있는지 그 이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사실 태어났으니까 사는거지 딱히 이유는 없다. 이럴때 그 공허함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이 귀찮은 관계이다.


책에서 말하는 '증여'라는 것이 바로 이 '귀찮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증여는 서로 깔끔하게 주고 받는 교환이 아니다. 받은 적 없이 시작하고, 대가 없이 주고, 내가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보람이라는 보상을 내가 받는, 상상력을 통해서 그 고마움을 알 수 있는, 자본주의의 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다. 어렴풋하게 느끼고만 있었던 이 사실을 책의 정교한 문답을 통해 확신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닌 사회


이름 없는 영웅이 떠받치는 일상 챕터에서는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공로자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더울 땐 시원한 곳에서 추울 땐 따뜻한 곳에서 남들 쉴 때 쉬는 일만 하면 된다는 말을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곤 했다. 적어도 그래야 내가 어떤 기준 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안심하게 해주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완전히 뒤집는 대사를 드라마에서 만났다. <노무사 노무진> 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왔던 대사였다. "이 사회는 남들 잘 때도 더울 땐 더운데서 추울 땐 추운데서 일하는 나 같은 사람들 덕에 유지되는거야, 알겠냐?" 뒤통수를 시원하게 때리는 말이었다.


우리 사회는 원래 이렇게 생겨서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새벽에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도로보수원, 법의학자, 건설노동자 등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며 세상이 돌아가게 해주는 분들이 있다. 책에서 말하는 숨은 공로자에는 기부천사와 같이 선행을 베푼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분들 또한 우리 삶이 유지되게 해주는 숨은 공로자가 아닐까 싶다.


모든 주제에 대해 차근차근 근거를 대며 설명해주는 책이다 보니, 책을 다 읽고도 놓친 부분이 많은 기분을 느꼈다. 평소에 철학은 감성을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감성적인 내용을 분석한 책이 아닐까 싶다 ㅎㅎ 삶을 살다가 갑자기 공허함을 느끼거나 반대로 철저하게 개인주의로 살고싶은 욕망이 솟구칠 때 이 책을 꺼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곱씹으며 읽어볼 철학책이다. 지은님이 이 책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시나 한가지 콘텐츠를 접하면서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오늘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트레바리의 가장 좋은 점은 세상을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단단한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타인과 제대로 된 교류를 하지 않았으며 또 그걸 받을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던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서 책에 대한 그 분들의 생각은 물론, 일상을 탄탄하게 채워가는 그 분들의 노하우들을 줍줍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기도 하다.




책에 대하여

1. 증여를 받았을 때의 난처함

회사 선배들에게 받기만 했을 때 난처했었는데, 난처하기보다는 잘 받고 또 후배에게 물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좋았겠다라는 어떤 분의 이야기에서 '받는 것'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상기했다.


2. 증여세

증여세를 이야기하는 것은 신선했다. 확실히 '증여'라는 단어는 어감이 따뜻함과는 거리감이 있다. 그런데 정말 일본문화를 생각해본다고 한다면 일본에서의 '선물'이라는 것이 증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증여라는 단어를 그냥 선물이라고 바꾸는 것도 좋겠다.


3. 대가없이 증여하는 '산타클로스'와 같은 존재로 '초등학교 교사'라는 이야기.

동의했다. 특히나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마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선생님이라고 부를 분들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 하나하나를 아끼고 챙기고 지지해주는 분들, 나도 그런 선생님들을 존경한다.


4. 빅이슈코리아

홈리스인 분들을 후원하는 매거진이라는 것은 정말 몰랐다. 나는 이런 부분에서는 정말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봉사와 관련된 부분에서 나는 열리지 않은 것 같다. 이런 행동이 실제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일지에 대한 의심이 내 내면에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해야할 것이라는 필요성을 느낀다. 베풂이 없으면 이 사회구조가 돌아가지 않으며 나도 사회에 한 구성원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충만함을 느낄 수 없을테니. 그러니까 결국은 결론이 '자기만족'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런 결론이 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5. 상대가 원하지 않는 증여는 증여가 아니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증여가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증여는 확실히 '관계'이다.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가 증여를 받지 않고자 한다면 그것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거부의 의미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주는 선물은 받지 않고, 자신이 주는 선물은 받으라고 하던 어떤 회사선배가 떠올랐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누군가가 주는 것은 민망할 정도로 받지 않으면서 자신이 주는 선물을 안받으면 '왜 안받아 서운하게'라고 표현했다. 이건 일방적이다.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받을 여유가 없으면서 일방적으로 내 마음만 주려고 한다? 이건 증여가 아니라 저주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 밖에 알게된 것들


좋은습관PT

- 우리동네 체육관 말고 이런 전문적인 PT를 받는 곳이 있는지 몰랐다. 걱정병이 많은 나는 이런 공식적인 단체를 찾아갔으면 되는 거였는데 왜 이런 생각을 진작에 해보지 못했는지. 모든 것을 나 혼자 하려고 하는 성격은 나에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할 기회를 앗아갔던 것 같다.


편지 답장을 해주는 봉사

- 봉사라는 것은 이상하게 한국 사회에서 '착한 사람'만큼 오해를 많이 받는 단어인 것 같다. 분명 긍정적이고 무엇보다 무해한 단어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감정팔이'와 같은 악독한 말들에 의해 구질구질하고 짜증나는 것이라는 이상한 느낌을 준다. 또한 봉사는 왠지 큰 일을 해야할 것만 같은 마음의 부담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봉사는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옛날 목소리 봉사를 하고 싶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누군가에게 어떤 답장을 해줄지는 고민을 안겨주지만 내가 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거창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건 아마도 비대면이라는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마라톤을 뛰어주면 돈을 주는...

대신 마라톤을 뛰어주면 돈을 주는 인플루언서도 있다고 한다. 마라톤을 뛴다는 것은 나 자신의 성취감을 위한 것인데 증표만 얻고 싶은 분들이다. 정말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가능한 사고일지 모른다. 나는 지금껏 이런 사람들에 대해 경멸의 시선만을 보냈는데 이 모임에 있는 분들은 신기하게도 '세상엔 다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도로 이야기하셨다. 한편으로 나 따위가 누군가를 판단하려고 했다는 면에서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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