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 자백의 대가.2025

배우는 예상대로 최고이지만 연출은 아쉬운 시리즈

by 어떤이

들어가며


이미지 003.png
이미지 004.png


김고은과 전도연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두 배우 모두 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아우라와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시너지가 난다면 어떤 걸작이 나올지 감도 안왔다. 원래는 다른 배우들이 맡을 것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좀 상상이 안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캐스팅이 분위기로 보나 연기로 보나 훨씬 좋았을 것 같다. 게다가 최근 다시 본 마이네임 뮤직비디오 속 전도연 배우 특유의 도도하고 신비로우면서 약간의 퇴폐적인 분위기를 다시 접하면서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다.


결과적으로 실제 두 배우의 분위기와 연기는 예상한대로 최고였다. 그러나 연출은 아쉬웠다. 주제의식이 모호했고 내용의 개연성 또한 부족했다. 차라리 아주 짧게 줄였으면 좋았을 뻔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접하는 시리즈물들이 대체로 8화를 넘어가는 작품들은 모두 일부러 늘여놓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나 이런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물의 경우에는 짜임새와 장면이 나오는 위치 등에 따라서 재미의 정도 차이가 꽤 심해서 분량은 최대한 짧게 가주시는 것이 안전하지 않을까 싶다.





다소 힘빠지는 거래 동기

이미지 008.png


처음 모은이 공허한 눈동자로 뉴스를 볼 때와 거의 자발적으로 경찰에 잡혀서 들어올 때에는 동기가 궁금했다.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지 않고 서서 TV에 나오는 윤수만 보고 있는 눈은 윤수가 목표인 듯 보였다. 그래서 무언가 둘 사이의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들이 거래를 하고 중반부까지 윤수가 긴박하게 움직일 때에도 아무래 생각해봐도 모은과 윤수와의 연결고리를 짐작하게 할만한 떡밥이 나오지 않았고, 원했던 궁금증과 관련된 먼지 한 톨도 안나오니 점점 그냥 흥미가 떨어져버렸다.


눈 앞에서 윤수가 어떻게든 모은과의 거래를 마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주인공의 그 열띤 모험에 동참해야 할 동기가 계속해서 사라져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 그냥 모은이 왜그랬는지 결말만 볼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다시 잡혀들어가게 된다는 윤수의 초조함에 그다지 공감을 하지 못한 듯 하다. 거래 실패 시, 윤수가 감당해야할 것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거나, 살인을 계획하는 과정이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던 듯 하다. 차라리 윤수가 살인을 할 만한 성정이기도 하다는 떡밥을 초반에 던져줬어도 좋을 것 같다. 그녀에게 그런 전적이 있었거나 아니면 어릴 때 그런 폭력에 노출 됐던 경험이 있다는 종류의 헷갈리게 하는 포인트.


사람에 대한 편견

이미지 007.png


순간순간 '아 이런 부분을 특별하게 알리고 싶었나보다'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극에서 꼭 필요하진 않은 듯 한데 긴장감을 주고 일부러 반복하는 부분이었다. 아마도 연출자가 특별하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을 것 같다.


처음부터 사람의 양가적인 모습을 계속 보여줬다고 느낀다.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이는 인물들이 그랬다. 주무관 배순덕은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임산부이다. 우리는 이미 나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의심한다.(그리고 배우분이 굉장히 양가적인 마스크이시다..) 첫 만남부터 아이에게는 한없이 따뜻하지만 철저하게 감시할 것과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그녀. 혹시 경찰이나 교도관의 조력자가 아닐까 의심스럽다. 교도관 엄주임은 대놓고 매정하다. 표정부터 매정하고 계속해서 수감자를 다그치는 것처럼 묘사된다. 교도소에 있는 모든 수감자들도 그녀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모은과 윤수가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이미지 006.png


이는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윤수는 사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는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선정적이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기에는 옷이 단정해보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결혼식을 올리는 방식만 봐도 일반인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또 보이는 모습보다는 굉장히 정직하고 보수적인 성격이다. 가정적이고 성실하게 일을 해나가고 심지어 남편을 살인한 용의자로 몰려있는 때에도 별다른 반항이나 특이행동 없이 착하게 조사를 받는다. 이에 남편이 죽은 후에 조사를 받을 때에도 표정변화 하나 없는 그녀의 모습은 당연하게 의심을 산다. 너무도 태연해보인다는 이유다.


이미지 005.png


아마도 제작자는 사람은 여러가지 모습을 하고 있고, 선인인지 악인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이 드라마의 기저에 깔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떤 누구도 '그렇게 생긴' 사람은 없다는 것. 오히려 편견이 생길 때에는 더욱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배주무관과 엄주임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가장 올바른 것 같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진실을 보려 하되, 너무도 확실히 흘러나오는 진실이 감정적으로 느껴졌을 때에는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확실한 태도를 취하는 것,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세상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일지도 모른다.


역시 사람은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가질 순 없다.

이미지 013.png


겉모습과 모순은 다르다. '왠지 사람이 성격 나쁘게 생겼어'가 아니라 '좀 이상하지 않아?'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 그건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류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진변호사가 그랬다. 그가 등장하자마자 '엄마 저 사람 이상한데?'라고 얘기했다. 그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모순이 있었다. 불쌍한 이들을 돕는 자선활동가, 근데 이제 외제차를 타는 부자. '국선변호사는 좋은 옷에 외제차를 타면 안되냐' 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이 둘은 의외로 논리적으로도 상충된다.


1. 좋은 옷은 왜 사는가? >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다. > 내가 어떤 포인트에서 만족하는가? > 타인에게 멋드러지게 보여진다.

2. 자선활동은 왜 하는가? > 타인을 돕기 위해서다. > 타인을 왜 돕는가? >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 정의를 왜 실현하는가? >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다.


확실히 1번과 2번은 결이 아주 다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은 말하자면 나의 인정욕구와는 거리가 멀다. 내가 돋보이는 것을 원하는 삶이 아니다.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삶이다. 진변호사는 이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타인을 왜 돕는가? > 타인에게 멋드러지게 보여진다. '멋진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자선활동을 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딱 드러맞는다. 그는 인정욕구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이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기까지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결말을 보고도 무미건조한 이유

이미지 004.png


결국 윤수가 왜 이사건에 끼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지 무례함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자들에 대한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모은이 왜 그녀와 거래하는 것을 생각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녀가 백검사에게 자신이 윤수를 선택했던 이유에 대해 말한 바 있지만 그건 정말 피치못할 때에 단 1명을 구해야 한다면 할 행동이다. 하지만 정말 그녀는 급박한 상황이었을까?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한 복수가 '아들이 없는 시간'에 방문해서 그르쳐버렸을 리는 없을 거고, 그럼 도대체 왜 복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다.


결말을 보고도 이해가 되지 않고 짜맞춰지지 않으니 속이 여전히 답답했다. '그래 다 알겠는데 그래서 윤수는 왜 그렇게 개고생한거야?'가 머리에 남는다. 만약 내가 윤수라면 모은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남편을 허망하게 잃은 것도 서러워죽겠는데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까지 하지?


시리즈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불분명하다. 복수로 살인한 사람과 우발적으로 살인한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재수없게도 끼게 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인가. 그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결말에 이르러서 결국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아버린 시리즈. 전도연과 김고은 배우의 열연과 미묘한 분위기와 아우라가 아깝고 아쉽다.




무례함이라는 것이 과연 살인의 동기가 되는가. 나는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가능할 것 같다고 느낀다. 5년 전과 현재를 대놓고 비교한다면 다른 나라처럼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물론 코로나를 겪으면서 외부활동이 자연스럽게 적어지고, 정적인 소모임이 늘어난 점도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로에 대한 의심을 넘어선 필요이상의 경계와 분노도 커졌다. 질투, 화, 사랑 등의 감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 말고 그냥 본인의 삶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로 인해 타인에게 칼을 꽂는다. 그게 너무도 아무렇지 않아진다. 이는 점점 사람이 사람을 위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나만의 분노 희생양이 사람이 되어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는 것이니.


사진출처: Netflix Korea


작가의 이전글영화 | 파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