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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인 jiin mia heo Apr 28. 2022

스트릿카, 백인 보이, 나의 분홍 패딩 (2)

캐나다 토론토에서 겪은 인종차별

-이전편에 이어서-


*


 그를 보내고 나니 이전 사건의 충격과 애써 밝은 척 하는 데서 오는 공허함이 동시에 밀려 왔다. 토론토에 살 때 매일 느끼던, 피곤함과 우울함이 섞인 공허함. 단순히 외국어를 써야 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난 원래 매우 내향적인 사람임에도 토론토에서는 유독 성격 좋은 사람인 척 웃고 오버하고 많이 떠들려고 했었다. 영어수업이나 회화모임에 가서 조용한 한국인 혹은 일본인을 보면 답답하고 불편했고, 되도 안 되는 영어로 자기 할 말은 끝까지 다 하는 남미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분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동족혐오와 자기혐오를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그들과 다르다고 구분 짓기 위해 알게 모르게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그러니 하루가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안이고 뭐고 원래 내향적이고 말수 없는 인간한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 마음을 추스리지 못 한 채로 어학원에 도착했다.


 학원에 도착해서 눈에 익은 얼굴들이 보이니 잠시 마음이 놓였던 거 같다. 잠깐 마음을 고른 후에 방금 있었던 일을 전했다. 막상 아는 사람들에게 털어 놓으니 이번에는 화가 나고 억울했다. 나는 일본인 클래스메이트에게 말했다.


 "나 방금 스트릿카에서 인종차별주의자 남자 애 만났어."

 "정말? 무슨 일이었는데?"

 "걔가 나한테 뻐킹 아시안이라고 욕하고 세게 밀쳤어."

 "그런 일이 있었다고? 난 토론토에는 인종차별 없는 줄 알았어! 난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분한 마음을 털어 놓았는데도 후련하지가 않았다. 나는 그때 누군가가 내 마음을 헤아려주거나 그 백인 보이를 욕해주는 걸 크게 바랐던 것 같다. 그렇게 찝찝한 상태로 대화를 마무리하자 이번에는 교실로 들어가려는 어학원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백인이었다. 그에게 흥분한 어조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일이 너한테 일어났다니 정말 유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깊은 고립과 절망감을 느꼈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당연한 반응인데도 그랬다. 그후로 선생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어찌해야 할지 굉장히 난처한 듯 보였다. 나는 괜찮은 척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문을 닫고 겨우 혼자가 되니 덮어 두었던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 왔다. 살면서 처음 겪는, 새로운 종류의 치욕스러움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나의 인종,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생물학적 특성, 그로 인해 비롯된 외모, 타고 태어난 모습과 내 존재 자체가 누군가가 나를 폭행할 이유가 된다. 인종차별로 인한 폭력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눈으로 보고, 겪고, 몸소 소화해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나의 존재, 나의 정체성, 나의 인생을 순식간에 송두리째 뭉갰다가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다시 들여다봐야 했다. 그런 상태로 한참 동안 눈물을 삭히다가 겨우 교실로 향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어찌저찌 수업을 마친 후 바로 집으로 향했다. 오늘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오늘의 모든 순간을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낮에 비하면 어느 정도로 충격이 가셔서 그런지, 이제는 되레 나의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인종차별처럼 민감한 문제를, 그렇게 화내면서 툭툭 던지듯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싶은 조바심이 들었다. 그런 생각들은 자연스레 자기회의와 검열로 이어졌다. 애초에 그 백인 보이가 나를 왜 밀쳤을까? 내가 옆으로 더 빨리 비켜줬어야 했나? 너무 빠르게 혹은 느리게 걸었나? 내가 걔 앞길을 가로 막은 거였나? 내가 무례한 거였나?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내가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생각을 하고 또 하다 보니 결국엔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내 분홍색 롱패딩 때문인가?'


 한국에서 가져온 나의 분홍 패딩. 별로 따뜻하지도 가볍지도 않지만 그냥 색이 예뻐서 갖고 싶었던 나의 분홍 패딩. 엄마는 탐탁치 않아했지만 결국 내 고집을 이기지 못 하고 사주었던 나의 분홍 패딩. 딸기우유처럼 밝고 눈에 띄는 나의 분홍 패딩. 김연아가 입었던 그 유명한 뉴발란스 분홍 패딩. 하지만 여기선 아무도 분홍색 롱패딩을 입지 않는다. 그냥 롱패딩조차 흔하지 않은데 분홍색 롱패딩을 입는 사람이 나말고 누가 있겠어. 누가 봐도 이방인이라, 내가 ‘여기 사람’처럼 입지 않아서 그런 일을 당했나? 얼마 전에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여기서 나고 자란 아시안 여자들은 아시안 남자랑 사귀지 않아. 인종차별주의자들이지. 너처럼 나중에 캐나다로 온 여자들 말고. 딱 보면 옷 입는 스타일도 다르잖아."


 그래서 내가 만만해보였나? 다른 옷을 입었으면 그 백인 보이가 날 밀치지 않았을까? 한국에서부터 주구장창 입고 다니던 내 분홍 패딩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온갖 잡생각들은 분명하고 당연한 명제, ‘태어난 모습 그 자체 때문에 폭력을 당해선 안 된다’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이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내 의지로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마어마한 공포와 억울함을 불러 일으켰다. 처음 겪어본 새로운 차원의 수치심과 치욕스러움은 정상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렇게 차별로 인한 폭력이 자기혐오의 전조가 되어 가는 과정을 몸소 겪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런 생각들을 끊어내지 못한 채 집에 도착했다. 당시 나는 필리핀계 캐나다인 가족들과 살고 있었다. 내 방으로 올라가기 전에 잠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학원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조심스러웠지만, 나를 괴롭히는 마음들이 도무지 가시질 않아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오늘 스트릿카에서 어떤 백인 보이가 나한테 쌍욕을 하고 밀쳤다고. 그러자 그들이 당연한 듯 물었다. 


 "너 괜찮아?"


 그제서야 묵혀둔 감정이 씻겨 내려가는 걸 느꼈다. 그 짧은 문장의 온도에 공감과 위로가 느껴졌다. 내가 기다렸던 반응이 이거구나 싶었다. 그 문장에는 같은 일을 겪어본 사람만이 전해줄 수 있는 적절함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선 그들은 '그런 사람들은 으레 있으니까 그냥 무시해.'라고 말해주었다. 크게 호들갑을 떨지도, 놀라지도 않는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내 방에 돌아와 옷을 벗었다. 입고 있던 분홍색 롱패딩을 대충 소파에 던져 놓고는 한참 동안 앉아만 있었다.


 며칠 후, 블랙 프라이데이 할인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검은색 패딩을 주문하는 일이었다. 여기 사람들이 입을 만한 길이와 여기 사람들이 입을 만한 디자인의 검은 패딩. 나의 분홍 패딩에 비하면 길지도 않고 튀지도 않는 검은 패딩. 그날 이후로 그 분홍 패딩은 한 번도 입지 않았으며, 귀국하기 직전 저렴한 가격에 팔아버리고 왔다. 지금도 토론토 어딘가 한국인 여자 아이의 옷장에 걸려 있을 나의 분홍 패딩.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 선택할 수 없는 것 때문에 고통 받는다.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차별주의자가 되는 걸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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