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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인 jiin mia heo Apr 21. 2022

스트릿카, 백인 보이, 나의 분홍 패딩

인종차별이 자기혐오로 변하는 과정

 모든 차별과 자기혐오는 맞닿아 있다. 특히나 그 차별이 우리의 선천적인 특성에서 비롯될 때, 우리는 아주 쉽게 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병에 걸린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날 때부터 타고난 것들로 인해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미온적인 절망감은 자연스레 자기혐오로 변한다.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무언가가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데, 어떻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의 인종, 생물학적 특성, 성정체성 등은 무슨 짓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실패감을 소화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탓하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결해도 태어난 존재 그 자체만으로 차별과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간단한 사실엔 엄청난 공포와 불안이 뒤따른다. 그것을 인정하기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자신을 의심하고, 다그치고, 미워한다. 나 자신이 변하면 상황이 변할 거라는 헛된 믿음에 기대는 편이 낫다. 내가 거길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 옷을 입지 않았어야 했는데. 좀 더 친절했어야 했는데.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차별과 자기혐오의 관계는 종교와 같다. 사람은 너무 논리적인 나머지 비논리적인 종교를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도대체 왜 하필 그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논리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절망을 경험한 후에 종교에 기대기 시작한다. '우리보다 절대적인 존재가 있으니 그를 섬기고 따르면 삶은 나아질 것이다', '혹여 나쁜 일을 당한다면 나의 기도가 부족한 탓이다', '안 좋은 일이 생기긴 했지만 이 정도에 그친 것은 다 그분의 덕분이다'라는 논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우리를 위로한다. 미친듯이 두렵고, 무섭고, 공포스러운 일이 언제 어디서든 이유 없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차별이 자기혐오가 되는 과정도 비슷하다. 차별의 이유가 '나의 존재 자체'라는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평생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더 편한 방법으로 나 자신의 능력과 잘잘못을 끊임 없이 의심하고 괴롭히며 고통스럽게 위로한다. 그렇게 해서 나를 더 다그치고 내가 더 나아지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생기니까. 나의 인종이 바뀔 수는 없지만 나는 변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상적인 나'처럼 행동하지 못 한 모든 순간에 자기 자신을 미워하면 된다.


 캐나다 토론토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처음으로 10대 백인 남성에게 신체적으로 위협을 당한 적이 있다. 예전에 살았던 루마니아보단 캐나다가 훨씬 안전하다고 마음을 놨던 터라 그 충격이 더욱 거셌다. 이미 루마니아와 각종 여행지에서 칭챙총니하오곤니치와, 차 타고 가면서 빽 소리 지르기, 길에서 시비 걸고 조롱하기, 레스토랑에서 대놓고 무시하기 등 온갖 인종차별을 당했음에도 말이다. 신체적 위협이라고 한들 다른 심각한 폭력 사건에 비하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창창한 대낮인 오후 1시. 여느 때처럼 지하철에서 스트릿카로 환승하려던 참이었다. 스트릿카(트램)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대중교통이었다. 버스를 타면 멀미가 나고, 지하철은 어두컴컴해서 싫어하는 나한테 딱이라고 호들갑을 떨곤 했다. 곧 도착한 스트릿카의 중앙 쪽 문이 열렸고, 나와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 스트릿카에 올라 탔다. 내 바로 근처에는 많아야 12살 정도 되어 보이는 백인 남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 백인 보이-소년은 묘하게 착한 어감인 거 같아서 싫다-의 걸음이 유독 내가 가는 길이랑 겹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예 그를 앞질러 걸으려고 속도를 높였다. 난 토론토에 온 후로 항상 쏘리를 입에 달고 다녔는데, 그 백인 보이에게도 미안하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리고 빈자리를 찾으려는 찰나 그 백인 보이는 내 어깨를 아주 세게 치고선 말했다.


 "저리 꺼져 뻐킹 아시안."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이상하게도 욕을 먹는 건 분명하게 알아 듣는다. 'get the fuck off fucking asian' 같은 말을 했던 건 확실하다.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뭐야'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그러자 그 백인 보이는 스트릿카 뒷 쪽으로 휘적휘적 걸으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그 커다란 입 좀 닥쳐."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백인 보이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더이상 대꾸할 힘을 잃은 채 태연한 척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소화가 되지 않았다. '루마니아랑 다르게 캐나다는 아시안도 많고 인종차별도 없구나!'라고 들떠있었기에 더더욱 정신 차리기 힘들었다. 아무리 인종차별이 거의 없다한들, 인종차별을 당할 확률이 적더라도 '그 한 번'이 일어난 순간 모든 일상에 금이 가고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인종차별을 당하는 순간 우리는 아시안이 된다. '한국인인 나', '사과를 좋아하는 나', '기타를 치는 나' 같은 속성은 모두 사라진 채 아시안이라는 껍데기만 남는다. 한참이나 적막이 흘렀다. 방금 일어난 일을 곱씹던 와중에 한 백인 여성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쟤가 너한테 뭐라고 더 못 하게 동료인 척 할게."


 그러고선 그는 나의 상태를 물어 왔다. 나는 밝은 척 웃으면서 고맙다고, 괜찮다고 답했다. 속으로는 그냥 존나게 울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렇게나 힘겨운 와중에도 내가 괜찮아보였으면 했고 나보다 그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 같은 건지, 멀쩡한 아시안처럼 보이고 싶었던 건지, 피해자가 아닌 척하고 싶었던 건지 뭔지. 나는 치욕스러운 감정을 꾹 누르고 강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에 루마니아에서 살아서 이런 거 익숙해."


 말도 안 되는 대답이었다. 당연하게도 차별과 폭력은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고 익숙해져서도 안 된다. 아주 조금 더 빨리 회복하는 방법을 겨우 배워갈 뿐, 그런 모멸감에 적응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대답을 들은 그는 너한테 자꾸 이런 일이 벌어져서 유감이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나는 '걔가 교육을 못 받아서 그래.'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또 어딘가 미안해서 그냥 웃어 넘겼다. 방금 전에 그런 모욕을 당했는데도 말이다. 그는 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물어봐주었고,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신의 룸메이트도 한국국인이라고 했다. 그의 억양 때문에 단번에 그가 영국에서 왔다는 걸 눈치챘지만 일부러 물었다.


 "여기 사람이야?"


 그는 영국에서 토론토로 온지 몇 년 되었다고 답했다. 사실 억양 때문에 짐작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니 고맙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도 나도 같은 외국인이고 이방인인데. 그가 토론토에서 받아 들여지는 범위와 내가 토론토에서 받아 들여지는 범위는 너무나도 차이가 컸다. 속은 너덜너덜했지만 그의 친절함에 보답하고자 애써 밝은 척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이상하게도 영어를 쓰면 더욱 더 파닥파닥거리곤 했다. 부족한 언어 실력을 외향적인 척으로 메우려 했고, 스스로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시안'이 되기 싫어서 버둥거렸다.


 "그런 일을 겪었지만 대신 너를 만났잖아! 너가 내 하루를 살렸어!"


 그가 내릴 때가 되자 환하게 웃고 너스레를 떨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그가 날 걱정하지 않도록 편히 보내주고 싶었다.


*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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