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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콜중독맘 Aug 04. 2021

알콜중독자, 엄마가 되다

알콜 15년, 한심한 역사

 술을 처음 마신 열아홉살 이후 나는 착실하게 중증 알콜중독자의 길을 걸어왔다. 내가 알콜중독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된 요인은 세 가지. 첫째 처음 술을 배울 때 인사불성으로 배움. 둘째 술을 가까이하는 가정환경. 셋째 혼술습관이었다. 이 세 요인은 내가 엄마라는 존재가 되고 나서도 나를 아주 쉽게 알콜중독자의 늪으로 끌어내렸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내가 이 세 요인과 어떻게 발을 맞추며 알콜중독의 길을 걸어왔는지 그 한심한 민낯을 꺼내본다.


 첫째, 처음 술을 마셨을 때

 열아홉 수험생이었던 나는 당시 재수생이었던 동네언니와 종종 만났다. 언니는 예체능계였고 같은 예체능계였던 남자친구가 현역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어느날 언니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며 술을 먹자고 했다. 우리는 술과 안주를 사서 동네 허름한 여관방에 갔다. 언니의 민증으로 쉽게 통과한 우리는 방바닥에 소주와 사이다, 빈대떡을 펼쳐놓고 술을 마셨다. 대실시간 3시간 안에 다 먹어야했기에 사이다를 타서 쭉쭉 비웠다. 그날 언니는 인사불성이 됐고 나는 방정리를 한 후 언니 남자친구를 불러 언니를 실어 보냈다.

 이후 우리는 만나면 항상 방을 잡고 술을 먹었다. 늘 빨리 먹었고 둘 중 하나는 꼭 인사불성이 되어 나머지 하나가 챙겨주는 일을 반복했다. 이때 내 머리속에는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라는 쓸데없는 명제가 각인되었다. 언니와는 수능이 끝난 후 만나지 않게 됐지만 그 명제는 앞으로의 술길에 계속 남게 되었다.


 둘째, 술과 친한 가정환경

 대학 입학 후 술자리가 잦아졌지만 가장 많이 함께 마신 건 부모님이었다. 우리집에는 항상 술이 있었다. 소주와 맥주가 박스채 있었고 시원하게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에 몇 병씩 들어있었다. 찬장에는 양주가 있었고 언제든 안주로 먹을 수 있도록 양념고기가 쟁여져있었다. 나는 술이 먹고 싶으면 언제든 간단히 안주를 마련해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술을 꺼내 마실 수 있었다.

 휴일이면 부모님은 등갈비, 연어회, 한우, 수육, 갈비, 오징어삼겹살, 불고기 등 괜찮은 안주를 차리셨다. 각자 원하는 술을 앞에 두고 원하는 만큼 마셨다. 부모님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드시지는 않았지만 취할 정도로는 드셨다. 엄마는 취하면 항상 '다 큰 자식과 이렇게 술 한 잔 같이 하는 집이 드물다'며 우리 가족의 화목을 자랑스러워하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술과 함께했고 그것이 즐거움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안에서 술과 가까워지자 밖에서도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친구들과 만날 때 나는 자연스럽게 술을 찾았다. 술자리도 주종도 다양했다. 단체로 호프집에서 마시는 맥주, 분위기 있게 한두잔 즐기는 칵테일, 시끌벅적한 가게에서 먹는 막걸리, 포장마차에서 기울인 소주 등. 집에서 취할 때까지 먹어버릇한 나에게 앞의 두 개는 감질맛만 났다. 내 취향은 후자쪽으로 기울었다. 한두명과 자리를 만들어 소주나 막걸리를 주로 먹었다. 단체로 갖는 술자리에서보다 깊은 대화가 나왔고 친밀도도 높아졌다. 나는 자주 취했고 꽐라가 되었다. 별 경각심은 들지 않았다. 스무살이면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취하는 것도 즐거웠다. 연일 누군가를 만나 술을 먹었고 술약속이 없으면 심심했다.


 셋째, 혼술의 늪

 대학교 저학년(?)을 그렇게 지내다 어영부영 첫 섹스를 했다.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술이 많이 취해 있었고 눈을 떠보니 혼자였다. 그때부터 남들 앞에서 취하는 일을 크게 줄였다. 술 취한 나를 보는 남들의 시선을 따지기 시작했다. 대학교 고학년을 바라볼 나이었기에 주변에 술 먹는 친구들도 줄어들었다. 다들 앞가림을 하느라 바빴다. 그와중에 꽐라가 될 정도로 술을 마시면 한심하게 보겠지. 부모님도 매일 술을 마시는 내 모습을 한심하게 생각하실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절주를 했어야하는데, 숨기면서 마시는 길을 택했다.

 친구를 만날 때는 가볍게 반주를 먹고 헤어졌다. 술약속일 때는 더 먹되 정신을 놓을 때까지 먹지 않았다. 모자란 양은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채웠다. 텀블러에 술을 담아 이동하면서 먹고 집앞 벤치에 앉아 맥주나 매화수를 마셨다. 원하는 만큼 먹고 집에 가서 고꾸라져 잠들었다. 부모님과 집에서 마실 때는 내방에 술을 미리 숨겨놓았다. 부모님 앞에서는 적당히 먹고 내방에 숨어 취할 때까지 마시고 그대로 잤다. 혼자 조용히 취하니 편하고 좋았다. 점점 혼자 마시는 시간이 늘어났다. 졸업이 가까워졌을 때는 테이크아웃 커피컵에 술을 담아 강의실에 들고 가기도 했다. 나는 이미 중증알콜중독자였지만 그저 재미없는 일상에 술이 낙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와중에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다. 일은 열심히 했다. 야근이 잦고 출장이 많자 부모님의 눈치를 볼 일이 줄어들었다. 야근을 핑계로 빈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혼자 술을 마셨다. 출장을 핑계로 방을 잡고 몇날며칠 혼자 술을 마시기도 했다. 슬금슬금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일에 성과를 내고 있었고 술 때문에 할일을 못하는 경우도 없었기에 괜찮다고 위안 삼았다.

 연애를 했다. 현재 남편인 당시 남자친구도 술을 좋아했기에 데이트 때마다 술이 빠지지 않았다. 휴일날마다 만나서 술 마시고 놀러다녔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돌아와서는 부모님 앞에서 안 먹은 척 또 술을 마셨다. 부모님과 먹은 뒤에는 내 방으로 들어가 혼자 또 마셨다. 남자친구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도 모르는 나만의 혼술은 매일밤 이어졌다.


 결혼, 임신 그리고 술

 결혼을 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확 늘어나자 내가 술 먹는 횟수도 자주 노출되었다. 남편은 처음엔 황당해했고 조금 지나자 몇 번 크게 화를 냈다. 그때마다 끊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든 끊으려면 끊을 수 있다고, 지금은 끊을 필요가 없을 뿐이라고 근거없는 낙관론을 펼쳤다. 건강검진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이 핑계가 되었다.

 술 문제를 제외하고는 남편과의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남편은 훌륭한 사람이었고 나는 술만 빼면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2세 계획을 세웠다. 나는 임신하면 물론이고 아기가 태어나면 당연히 술을 안 마실 거라 믿었다. 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기를 가지면 못 마실 것이기에 나는 임신준비 기간 동안 열심히 술을 마셨다. 임신 가능성이 있는 기간에는 조심하다가 임신테스트기에 한 줄이 뜨면 그 다음 텀까지 술을 들이붓는 식이었다. 남편은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임신이 되겠나'하고 한소리 했지만 어째어째 임신이 됐다.

 아기를 품고 있는 10개월 동안이 내 알콜 15년 역사 중 유일하게 술을 안 마신 기간이다. 이때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했다. 삼시 세끼를 챙겨먹고 야채를 많이 먹었고 매일 운동을 했다. 몸에 있던 염증자국이 사라졌고 머리가 맑고 얼굴도 붓지 않았다. 술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출산 후 조리원에서도 잘 챙겨먹고 잘 쉬어서 붓기도 다 빠져서 퇴원했다.

 그렇게 건강한 몸을 유지했으면 좋았을 텐데.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남편은 축하한다며 맥주를 한  선물해주었다. 남편이 출산 후 몸조리의 중요성을 몰라서 준 건 아니었다. 다 알고 있지만, 그렇게 술을 좋아하고 찾던 내가 임신했다고 열 달을 꼬박 참고 무알콜맥주도 안 마시면서 버틴 게 안쓰럽고 고마웠던 것이다. 이것 한  정도야 괜찮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 한 이 내 물꼬, 아니 술꼬를 터버렸다.

 처음에는 주말에만 조금씩 마셨다. 아기는 순했고 밤중 수유도 60일경에는 끊었다. 아기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자 남편 퇴근 후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졌다. 수유텀이 잡히고 원더윅스 같은 것도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게 수월한 날들이 흘러갔다. 아기는 아기침대 안에서 눈을 굴리고 팔다리를 휘저었다. 귀엽게 웃고 하품을 했다. 그리고 많이 잤다. 나는 아기가 자는 동안 무료함을 느꼈고 오랜 버릇인 술이 생각났다. 처음 그 생각을 했을 때는 너무나 약한 아기를 두고 술을 마신다는 게 끔찍해 몸서리를 쳤다. 내가 술을 사러 나간 사이 아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무서웠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내가 핸드폰을 하거나 티비를 보고있어도 아기에게 아무일이 없자 나는 슬슬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집앞 편의점까지 기껏해야 5분. 나는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트름을 시키고 모빌을 보여주면서 놀다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편의점까지 달음박질을 하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무일 없겠지만, 혹시, 혹시. 괜찮을 거야. 아가야 조금만 버텨줘. 중얼거리며 서둘러 계산을 하고 집으로 뛰어왔다. 아기는 나갈 때와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숨을 쉬며 자고 있었다.


 그렇게 알콜중독자는 엄마가 되었고, 엄마는 다시 알콜중독자가 되었다.




#알콜중독 #엄마 #육아 #혼술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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