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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콜중독맘 Aug 04. 2021

술값으로 150만 원을 썼다. 나는 엄마인데.

그것도 '혼술' 값으로.

1,497,900원.

= 소주 832병 = 4캔 만원 맥주 599캔 = 막걸리 1152병.


 오래전부터 혼술이 취미였다. 코로나가 닥친 뒤에 이 취미는 더 견고해졌다. 식당이나 술집이 아닌 편의점에서 술을 사 집에서 혼자 마셨다. 그렇게 쓴 술값이 6개월 간 근 150만 원. 내 돈으로 내가 사서 내 집에서 조용히 먹는다는데 뭐라 할 건덕지가 있을까.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내가 돌도 안 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엄마'라는 사실이었다. 아기가 3개월도 안 됐을 생후 86일부터 9개월이 되기 하루 전인 생후 269일까지 184일. 만 6개월 동안 나는 아기를 옆에 두고 술에 젖어살았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백일도 안 된 아기를 집에 혼자 두고 술을 사러 나갔던 그 첫날. 아기는 순했고, 60일경부터 이미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모빌만 보여주면 잘 놀다 잠들었다. 나는 좀 심심했고 술생각이 났다.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팔다리를 꼬무락거리는 것밖에 못하는 아기가 아기침대 안에서 큰일 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 시간 넘게 고민하다 결국 집 앞 5분 거리인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제발 무사해줘'라고 되뇌며 3캔에 9900원 하는 맥주를 샀다. 서둘러 집에 돌아와 아기침대를 들여다봤을 때, 나갈 때와 같은 모습으로 곤히 자고 있는 아기 얼굴을 봤을 때의 안도도 기억한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했던가. 두 번째부터는 쉬웠다. 아니 봇물이 터졌다.



아기 혼자 집에 두고 술 사러 나간 첫 달의 기록 :


11일 오전 8시 12분 막걸리 2병

  오전 10시 1분 막걸리 2병

  오후 5시 2분 막걸리 2병. = 7800원

12일 오후 12시 6분 맥주 4캔과 막걸리 1병.

 = 11300원

13일 오후 4시 36분 막걸리 2병 = 2600원

15일 오전 11시 6분 맥주 4캔, 막걸리 1병

  오후 7시 9분 맥주 5캔, 막걸리 1병 =26000원

16일 오후 6시 16분 막걸리 큰것 1병 = 3200원

17일 오후 4시 34분 맥주 4캔 = 10000원

18일 오후 3시 30분 막걸리 2병 = 3800원

19일 오후 1시 4분 막걸리 큰것 1병

  오후 4시 38분 보통것 1병

  오후 9시 8분 맥주 4캔 = 14500원

20일 오후 12시 1분 맥주 5캔

  오후 6시 16분 막걸리 1병 = 13800원

21일 오전 8시 25분 막걸리 3병

  오후 3시 17분 막걸리 1병 = 6400원

22일 오후 9시 33분 막걸리 2병 = 2600원

23일 오전 9시 11분 맥주 4캔, 막걸리 1병 = 11900원

24일 오후 3시 22분 막걸리 1병 = 1900원

25일 오후 4시 15분 막걸리 3병 = 3900원

26일 오후 1시 6분 막걸리 3병 = 3900원

27일 오전 11시 56분 맥주 4캔, 막걸리 2병

 = 12600원

28일 오후 3시 5분 막걸리 3병 = 5700원

29일 오전 8시 26분 막걸리 3병 = 3900원


총 145,800원



 이 첫 달에 아기 백일이 있었다.


두 번째 달 21만 600원
세 번째 달 25만 7600원
네 번째 달 28만 3700원


 그만 마시려는 시도는 몇 번 있었다. 뒤집기 하기 전까지만, 되짚기 하기 전까지만, 기기 시작하면, 이제 정말 그만 마셔야지, 그러면서도 술독에 빠져있는 기간은 연장되기만 했다. 아기는 점점 자라 갔고 엄마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한 손에 술을 들고 쿠션에 몸을 기댄 채 아기를 바라봤고 아기는 눈을 마주치며 웃다가 자기와 놀아주길 바라며 울었다. 제풀에 지쳐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그런 아기를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술을 놓을 수 없었다. 술이 깨면 아기에게 미안해 마음이 옥죄었고 못해준 죄책감에 아기와 놀아주는 것에 집착했다. 과도한 놀이는 아이에게 맞지도 않았고 나를 금방 지치게 했다. 그럼 나는 또 술을 마셨다. 취하면 아기에게 미안한 것도 놀아주어야한다는 압박감도 잊혀졌다. 밥을 주고 씻겨주고 재워주었기에 이 정도면 할 일을 다 한다고 자위하면서, 눈 마주치면 웃어주고 입맞추고 다시 술을 마셨다. 당연히 술에서 깨면 죄책감과 후회는 더욱 심해졌고 너무나 한심한 내 꼴을 보며 다시 술로 도피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다섯 번째 달 32만 1400원
여섯 번째 달 26만 8900원
총 1,497,900원.


 나는 취하는 경지를 넘어 그저 술을 들이붓기 위해 일어나고, 또 술을 마시기 위해 잠을 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맥주와 막걸리만 마시다가 더 빨리 쉽게 취하고 싶어 소주를 마셨다. 쓴맛을 없애고 꿀꺽꿀꺽 마시기 위해 음료를 타 마셨다.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않고 안주도 없이 술만 마셨다. 몸이 버텨낼 리 없었다. 출산 후 처음으로 열이 나자 겁이 덜컥 났다. 병원에 가 약을 처방받았다.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 술을 놓지 못했고 간신히, 금주를 시작했다. 지금도 참기 힘들 만큼 술생각이 나지만 그럭저럭 잘 버텨내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6개월 간 아기가 안 죽고 살아준 것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혼자 아기를 돌보면서 블랙아웃이 우스울 정도로 술을 마시다니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다. 나의 아기에게 정말 못할 짓이었고 영원히 아무도 모르게 지워버리고 싶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때의 일을 글로 남기는 것은, 생각보다 아기를 키우는 알콜중독자 엄마가 많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알콜중독자'이기만 해도 한심한 눈빛을 받을 텐데 그 중독자가 '엄마'라니. 그 두 단어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알콜중독자 엄마들은 나처럼 음지에 숨어 혼자 잠식되어 간다. 그렇게 삭아가는 엄마들은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나는 그 '알콜중독자 엄마'들이 알콜의 늪에 더 깊이 잠기지 않기만을 바란다. 우연히 이 글을 본 알콜중독자 엄마가 '그래.. 정말 그만 마셔야지'라고 한 번만 스치듯 생각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부끄럽고 한심한 알콜중독 엄마의 민낯을 풀어보려 한다.



#알콜 #알콜중독 #엄마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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