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이란 거창한 것이 아닌, 공부하고 있는 분야 혹은 일을 통해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본인이 원하는 길과 그 분야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났다. 대학 시절 멘토링 활동을 하며 친해진 분으로 벌써 약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국내에서 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에서 스페인 문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나누고 그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때 행복하다는 그녀의 말에서, '알면 사랑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여행에서 우연히 들은 스페인어에 호기심이 생겨 스페인을 공부하게 되고,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나라 스페인을 타인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그녀. 도대체 스페인의 어떤 점이 이렇게 흥미로운지 궁금해지고, 나도 스페인을 더 깊게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더 알면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후, 현재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스페인, 포르투갈어 문학과 박사과정에서 스페인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유진입니다. 한국에서 스페인은 여행지로는 인기가 많지만 이렇게 스페인 문학을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문 것 같아요. 지금 학과에서도 제가 유일한 한국인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스페인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보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유진 님이 스페인어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여행을 갔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페인어 말소리를 들었어요. 스페인어권에서 흔한 이름인 '호세(Jose)' '후안(Juan)'에 쓰인 첫 글자 'j'가 영어식 발음과는 다르게 읽히는 것이 참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스페인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외국어에 대한 호기심이 어릴 적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러한 흥미를 살려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자연스럽게 스페인어 전공을 택했습니다. 처음엔 스페인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면 언어뿐 아니라 “문화”도 배우면서 정말 열정적인,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어요.
아하~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하셨군요! 저도 스페인 여행을 하고 매력에 푹 빠졌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대학 전공도 서어서문학과를 선택하신 건가요?
맞아요. 처음에는 국제어문학부로 입학해서 2학년 때 전공을 결정해야 했는데요. 영문과, 불문과, 독문과, 중문과, 서문과, 일문과, 언어학과 중에 고를 수 있었어요. 당시 영문과가 가장 인기가 많고 주변에서도 영문과를 추천해서 잠깐 고민을 했지만, 제가 이 전공을 얼마나 원했었는지를 떠올리면서 서어서문학과로 진학했습니다.
대학 서어서문학과에서는 특히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배우셨는지 궁금합니다.
스페인 및 중남미의 문화와 문학을 다룬 수업을 주로 들었어요. 한국에서 영미권의 문화 및 문학은 잘 알려져 있는 것에 반해, 타 언어권 문화에 대한 관심은 적은 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스페인어권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 정말 재밌었어요. 예를 들어,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옥수수는 단순히 주식으로서의 농작물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마야 문명의 창조 신화에 의하면 신이 옥수수 반죽으로 인간의 형상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기도 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기원과는 비슷한 듯 다르기에 흥미롭지 않나요? 옥수수 신을 모시는가 하면, 현재까지도 이 지역 문화권 사람들의 생활에 아주 깊이 파고들어 있는 것이 바로 옥수수입니다.
*메소아메리카: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지의 중미지역으로 과거 마야, 아스텍 문명이 자리했다.
오호~ 정말 흥미로운 관점인데요! 유진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스페인어권 문화에 대해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이 드네요. 문화를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싶으면, 그 나라의 언어를 먼저 배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언어를 배우다 보면 역사도 알 수 있고,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그 나라의 관습도 알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스페인어 어휘에는 ‘알-‘(al-)로 시작하는 말들이 정말 많아요. 그 밖에도 “아랍어가 아닌가?” 싶은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요. 오늘날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에 7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랍 왕조가 머물렀던 영향으로 볼 수 있답니다(711~1492년). 그렇기에 언어 말고도 식문화, 건축물 등 스페인의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죠. 또한 사용하는 국가에 따라 스페인어도 단어와 문장 구조가 다르고 그런 것들을 배우다보면 자연스럽게 문화도 알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현지를 직접 방문해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러고 보니 유진 님은 스페인에 가보셨나요?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대학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다녀왔어요. 원래 한 학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저는 이 기회를 살려 언어와 문화를 깊게 배우고 싶은 마음에 한 학기를 더 연장해서 스페인의 여러 지방 소도시들을 여행했어요. 돌아보면 교환학생 경험이 제 인생에서 큰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교환학생이 터닝포인트라고 하시니 더욱 궁금한데요. 유진님에게 터닝포인트였던 이유가 있을까요?
대학 학부 때부터 스페인어권 문학을 더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다루는 내용뿐 아니라 외국에 나와 연구를 이어가는 것이 과연 제 적성에 잘 맞을 것인가를 알아보고 싶었고, 교환 학생을 하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돌아올 수 있었거든요. 스페인 교환학생 첫 학기 때 스페인어 고전 문학 수업(스페인에서 듣는 문학 수업이니 국문과 수업 같은 셈이죠?)을 들었는데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정말 재미있었고,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학교에서도 좋게 봐주셨어요.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힘든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스페인을 향한 저의 콩깍지가 계속 쓰여있었습니다. (하하)
그리고 한 학기 더 머물면서 스페인의 소도시를 굉장히 많이 다녔어요. 학교 문화 수업에서 배웠던 장소들,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된 곳들을 방문하며 책의 내용을 떠올려보기도 했죠. 짧은 여행으로는 가기 어려운 곳들을 다닐 수 있어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이렇게 알면 알 수록 매력에 빠졌고, “아 나는 아직도 스페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갈증이 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오~ 힘든 순간이 있어도 스페인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였다는 점이 인상 깊네요! 그래서 학부 졸업 후에 석사 진학을 하신 건가요?
맞아요. 저는 스페인 문화 고유의 특성을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문화를 잘 알고 싶으면, 그 나라의 문학을 알아야 한다고 느껴 문학 공부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습니다.문학 텍스트를 보면 날씨, 식습관과 같은 일상적인 것부터 한 사회의 역사, 정치, 경제 구조까지 많은 것들을 읽을 수 있거든요.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해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세계를 소개할 뿐 아니라, 우리가 텍스트를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을 제안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어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제 학번 중에는 제가 유일하게 대학원에 진학했네요. (하하)
친구들은 모두 취업과 같이 다른 진로를 택하는데, 홀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에 대해 불안하지는 않으셨나요?
당연히 불안하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수요가 많이 없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도 그만큼 자리가 많이 없다는 것을 아니까요. 그래도 '내가 여기서 이만큼 열정과 시간을 들여서 하는데, 그게 어떻게든 쓰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배우는 것들이 쓰일 수 있도록 제가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와 멋지네요! 그래도 석사 후에 박사까지 하기는 쉽지 않은데, 박사 결정은 어떻게 내리신 거예요?
저는 가르치는 것을 원래 좋아했어요. 그래서 대학생 때도 여러 멘토링 활동도 하고, 과외도 많이 했습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도 하지만,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같이 나누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같이 좋아하는 걸 볼 때 정말 행복해요.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스페인”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제가 하는 말에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는 더 깊고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가 경험해보고, 잘 아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필요로 한다면 얼마든지 제 것을 나눠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러기 위해서는 저의 경험과 지식을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페인 문학을 전공하시는데, 스페인이 아닌 미국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신 건가요?
스페인에 가고 싶은 마음도 컸었는데, 현실적으로 스페인은 장학금 기회가 많이 없었습니다. 특히 저처럼 외국인 대상으로 혜택이 없었어요. 반면에,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 100% 장학금도 받고 현지 체재비까지 지원을 해줍니다. 현실적인 요인으로 미국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면도 없지 않아요. 그렇지만 스페인과는 다른 미국의 연구 경향이 흥미롭다고 느껴졌기도 했고, 실제로 지내보니 학과 내에 스페인 및 중남미 사람들이 많아서 평소 스페인어로 소통하기 때문에 스페인에 가지 못한 것이 아쉽지는 않아요. 물론 향후 연구 등의 목적으로 스페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더 좋겠지요.
하필 유진님이 유학 가시는 시점에 코로나 19가 터졌네요. 그럼에도 현재는 한국이 아닌 미국 현지에서 생활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한국과 열네 시간이라는 시차에 맞춰서 밤낮을 바꿔가며 온라인 강의를 듣기보다는 도서관과 가까운 곳에 살며 혼자만의 공간에서 오롯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걱정이 되었는데 한 학기를 지나고 보니,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이 어려운 점은 아쉽지만, 이곳에서 저만의 생활 리듬을 만들고 이동 시간을 아껴 강의를 듣거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아무래도 1년 차라 그런지 새로운 곳의 문화와 스타일에 적응하는 일이 큰 과제로 느껴집니다. 학과 내 친구들은 대부분 중남미 사람이거나 미국 사람이라 영어/스페인어 중에 하나는 모국어인데, 저는 둘 다 모국어가 아니기에 새롭게 익혀야 할 것이 많네요. 수업 문화도 한국과는 매우 다른데, 한국보다 학생의 수업 참여 비율이 훨씬 높아요. 이제 2학기가 시작되었는데, 대학원 수업에서 읽어야 하는 자료의 양이 정말 많기도 하고, 지난 학기에는 포르투갈어까지 추가로 배워야 했습니다. 이렇게 공부할 게 많은 점도 어렵네요. (하하)
어려울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유진 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공부할 때 어렵고 힘들면, 이렇게 해서 과연 졸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럴 때 내가 얼마나 이 일을 하고 싶었는지 생각해보면 다시 힘이 납니다. 또 미국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며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편안함과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뒤로하고 떠나왔다는 점도 생각해요. 마지막으로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 당장 내가 잘되고 좋을 것만 생각해도 벅찰 때가 있는데, 안 좋은 경우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거든요!
유진님의 향후 진로(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신지요?
저는 앞서 잠깐 말씀드렸듯,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더 길러서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좋아하는 스페인 문학 및 문화를 전달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로 인해, 사람들이 스페인에 대해 더 흥미를 갖게 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스페인이 여행지로는 인기가 많은데, 그 이상으로 더 깊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정보가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사람들이 모르는 매력이 많은 나라거든요. 교수가 되거나, 책을 쓸 수도 있고, 클래스를 열 수도 있고 그 방법은 다양할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의 꿈, 목표가 궁금해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에게는 “자유”라는 가치가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 제가 좋아하는 일이 제가 잘하는 일이 되는 것.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제 꿈이자 목표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하고 싶으면 하자!”라고 주어진 제 책임을 지키는 한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유진님이 생각하는 선한 영향력이란?
아직 이런 말을 하기에 젊은 나이이긴 하지만, 그동안 제가 살며 겪은 경험과, 앞으로 살아가면서 쌓일 경험들이 저를 직∙간접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생각,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저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그동안 마음 한편에 품고 있던 것들을 밖으로 꺼내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면 제 열정이 조금이나마 전달된 것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영상통화로, 서면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아쉬워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잠깐이지만 스페인이라는 나라와 문화에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아요. 최근 10여 년 사이에 정말 많은 분들이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시는데 유럽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매력에 심취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괜히 저도 반갑더라고요.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여행에 제약이 있는 상황이지만, 갑자기 늘어난 혼자만의 시간에 ⟪돈키호테⟫를 읽어보시면 어떨까 추천드리고 싶어요. 스페인 문학을 대표하는 ⟪돈키호테⟫와 함께 소설 속 여정을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