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들이다
발령은 내 예상보다 더 늦어져서 7개월 정도 지나서 이루어졌다. 시험을 치른 곳은 대전인데 발령지는 천안이었다. 그나마 같은 충청권이었지만 처음으로 타지에 가게 된 나는 두려움과 흥분이 교차된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는 집에서 출퇴근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멀어서 안된다고 강하게 우겼다. 결국 ‘니 맘대로 해라'라는 허락 아닌 허락을 받았고 방을 얻으러 다녔다.
내가 나름 신경 써서 얻은 곳은 산밑에 있는 동네였는데 참 이상한 선택이었다. 대학교가 세 개나 있는 동네라서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었고 방값도 다른 곳에 비해 저렴했다.
그런데 직장과 많이 멀었다. 버스가 30분마다 한 대씩 오는 곳이어서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20분을 걸어 나와야 다른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겨울에는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버스가 늦어지는 경우도 많았고 걸어가자니 발이 눈에 푹푹 파묻혔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건강을 위해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는 사람이 없었고 나도 마찬가지로 예의를 차린다고 구두를 신고 다녔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이런 곳에 4년을 살았다. 원체 하나를 정하면 잘 못 바꾸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고 주말에 집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이 참 좋았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하숙을 하는 대학생들이 많았는데 주말이면 다들 단체로 사라지기 때문에 한적한 분위기도 한몫했다.
직장은 9시 출근, 6시 퇴근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신참인 나는 8시 이전에 출근하고 퇴근은 거의 8시가 넘었고 더 늦는 경우도 많았다.
행동이 느린 편인 나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한 탓에 자상하게 업무를 가르쳐 주는 선배도 없어서 힘들고 외로웠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먹을 것도 없었고 언제부터인지 냉장고에 맥주를 사다 넣기 시작했다.
안주로 맥주에 빵을 먹었다. 이렇게 하루 맥주 한 캔으로 시작된 주량은 한 번에 다섯 캔까지로 늘어났다.
나는 처음부터 내가 맡은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무원이었지만 고객을 상대해야 하고 서비스마인드까지 요구되었다. 강제로 친절한 표정을 지어야 해서 힘들었다.
6개월간의 시보(수습) 기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그나마 위안이 된 건 이제 정말 공무원이 되었구나! 하는 느낌 정도였다.
시보기간이 지나고 정규 9급 공무원이 되자 내 업무가 바뀌었는데 이번엔 고객상대가 아닌 정말 사무만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처음엔 고객상대가 아니어서 좋았지만 자리에 앉아 컴퓨터만 바라보고 있자니 이 또한 답답증이 몰려왔다.
나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유지했고 이렇게 나의 사람노릇 첫회는 부정적인 마인드로 시작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와 같은 일자에 입사한 동기가 인사업무를 보게 되었는데 이 인사담당이 나를 비롯한 직원들의 근무태도를 관찰해서 상사에게 보고하였고 이런 보고 결과가 인사이동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직장은 내 환상을 채워주는 곳이 아니고 나는 오랫동안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낮에는 친절한 얼굴을 장착하고 저녁에는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일상이 반복됐다.
첫 발령 후 1년쯤 지났을 때 운명적인 일을 맞닥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