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리 Mar 03. 2023

당신은 '뉴랜드'에
입주 하시겠습니까?

책 [연옥의 수리공]


'대체 현실'

삶의 모순으로 인해 현실이 불만족스럽거나 주체와 여러 조건이 더 이상 현실을 수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될 때 인간은 일반적으로 우회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대체하고 개인적인 안위를 보장하는 평안한 공간을 찾아가는 방법으로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는 세계를 의미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대체현실이 도래한 서울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는 이 소설은 ‘부양 유령’이란 첫 챕터부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인간의 뇌를 대체현실에 연결해 만들어낸 사후세계 ‘뉴랜드’

죽은 이들의 뉴랜드 입주를 위해 의료보험을 떠안고 빈곤층으로 전락한 산 사람들을 일컫는 ‘부양 유령’ 


소설 속 주인공들은 죽음을 위해 삶을 저당 잡히는 아이러니를 매 순간 처절하게 느끼지만 대체현실이 삶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이따위 세상에 영혼을 한 줌도 남기고 싶지 않다는 냉소적 인간의 분류’에 속하지만 “나를 포기하지 말아줘.”란 죽기 전 희진의 그 한마디는 참 이기적이라 생각 드는 동시에 먹먹해졌다. 





죽어서도 살고 싶은 희진의 이기심 

그 이기심을 아무도 몰래 외면했었던 지석의 죄책감.

죄책감마저 사치로 만드는 창준의 무능함. 

무능함이 판치는 현실을 외면하는 지우의 도피. 

‘뉴랜드’는 결국 모든 게 용서되는 정당화의 공간이자, 사랑의 반증인. 

(거짓으로라도) 새로운 희망으로만 가득 차야만 하는 곳이었다. 


뉴랜드의 부조리가 폭로되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정신만 남은 영생 보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며 사람다움을 실현내가는 유한한 삶의 가치를 전달하며 이 소설은 끝이 나지만 

책을 덮고나서도 소설 속 뉴랜드는 여전히 건재할것이며 

그 보험료를 납부하기 위해 누군가의 삶이 저당잡히겠구나란 생각에 씁쓸해졌다. 

하지만 그들을 누가 비난하며 비판할 수 있을까? 

모든 권리를 스스로 가지며 누리고 있는 나는 그들만큼의 간절한 열정도 열심도 없이 살아내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자 어쩌면 나의 뉴랜드는(사후세계보단 대체현실에 가까운) 

지금도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진 않을까 두려움이 생겨났다. 


나의 뉴랜드엔 현실의 어떤 외면들이 담겨 있을까? 
그 외면들을 마주할 용기가 나에게 남아 있을까?  
거짓된 희망이 아닌 진실된 희망을 꿈꾸며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부러진 순간조차 빛이 났던, 친애하는 나의 우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