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리 Apr 04. 2022

부러진 순간조차 빛이 났던,
친애하는 나의 우리에게.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드라마가 끝이 났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잊고 있던 나의 청춘도 꽤 빛났더랬지.’란 미화 속에 살 수 있었다.

청춘이라 불리던 나의 그 시절 내가 받지 못했던 위로와 응원이 담겨 있어 

드라마를 보는 동안 꽤 많이도 울었다.

또 한편으론 부러져 볼 용기를 내었던 아이들은 결국 부러진 채 청춘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는 게 

꽤나 현실적이어서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한때 수도 없이 부러져봤던 청춘들이 이제는 휘어지는 법을 터득한 채 시대와 어우러졌다.

그들의 휘어짐은 살아남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리고 그 누구보다 그들의 삶을 응원했지만

그들이 성장 할 동안 (사실 성장이 아닌 생존이었다 말하고 싶다) 나만 남겨진 것 같아 서글펐다.


드라마가 끝난 후 나의 청춘을 같이 지새워준 나의 친구들은 

아쉬움을 가득 담은 자신들의 감상을 적어내며 단톡방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일이면 출근을 하고, 취업준비를 하며, 육아를 해야 하는.. 

서로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는 일주일에 두 시간 꿈을 꿨었나보다.


수업을 땡땡이치고 학교 운동장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미래를 논하던 10여년 전 어느 날을 떠올렸고,

현실과 타협해 이루지 못한 열정을 다시 한 번 품어도 보았다.


“우리가 이 여름의 주인이 되는거야. 그럼 적어도 이 여름은 우리 거잖아.“


희도의 제안처럼, 승완이의 외침처럼

해질녘 어느날의 운동장 주인은 우리였고, 

(오지 않을) 미래를 담아내던 대학로 어느 작은 카페 2층 자리의 주인도 우리였다.


청춘의 어느 페이지에 머물러 있던 흩어져보린 그 시절 우리의 꿈도,

서로에게 닿지 못한 우리의 응원이 오랜만에 떠올라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한참을 울었다.

친애하는 나의 우린, 어느 계절까진 아니더라도 나의 찰나에 주인이 되는 법을 잊은 채 살아간다.


내일이면 청춘에서 한발짝 더 멀어져있을 것이고,

또 수많은 찰나를 계절을 잊어가며 치열한 현실들을 버텨내고 있을 친애하는 나의 우리.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이진을 일어서게 만들었고 유림이를 살아내게 만들었던 희도의 그 응원이

오늘의 나에게 닿길 바란다. 내일의 너가 다시 일어설 수 있길 바란다.

어쩌면 우리의 청춘은 끝이 더 가까워지고 있겠지만 

계속 계속 멋있게 버텨내는 걸 옆에서 오래 볼 수 있길 바란다.


우리의 계절에 주인이 되길 바라본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마지막을 고작 아쉬움이란 한단어로 남기기엔

끝까지 살아있어 준 이진이가 희도가 유림이가 승완이가 지웅이가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행복을 바라주는 넌, 무지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