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쓰는 티타임] 피앤티의 잭팟 더비

P&T : Jackpot Derby

by JiJi

이야기로 쓰는 티타임 1.



책장에 가지런히 정렬된 책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손가락 끝에 층층이 닿는 묵직한 모퉁이가 단조롭게 느껴질 무렵,

새로운 감각이 찾아왔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단번에 꺼내 든 책을 가만히 내려다보니 특이하게도 두꺼운 고동색 나무를 조각해서 만든 책이었다.

단단한 표지를 천천히 들어냄과 함께 갈색빛의 향기가 조금씩 스며 나왔다.

뜻밖에도 책 안은 상자처럼 중간이 비어 있었고 그 작은 공간을 자연의 조각들이 오밀조밀 채우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기로 했다.


가장자리부터 시작해서 굵은 나뭇가지들과 약간 그을린 듯한 잔가지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그 안쪽으로는 연주황 빛부터 서서히 변하는 주홍색, 진갈색 낙엽들이,

그다음은 노란 꽃가루가 간간히 묻은 자잘한 이파리와 잔디가,

가장 안쪽으로 P.T. 이니셜을 박음질한 진갈색 가죽 꾸러미가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꾸러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궁금했다.

혹시나 다른걸 잘못 건드려 흐트러질까 조심하며 천천히 가죽 뭉치를 끄집어냈다.

같은 재질의 가는 끈으로 묶어 놓은 매듭을 매만지다 한쪽 줄을 가볍게 당겨보았다.

매듭은 정말 쉽게 풀렸다.

부드러운 가죽이 손바닥을 덮는 촉감을 느끼며 중앙으로 시선을 옮겼다.


말린 무화과 두 조각.

정확히 반으로 갈라 잘 말린 연살구색 열매였다.

이번엔 손을 코 앞으로 모아 맡아보았다.

이름 모를 꽃향이 스며든 은은한 무화과 향 위로 살짝 그을린 낙엽의 냄새가 떨어지고

가장 밑바닥에는 비를 맞아 군데군데 젖은 장작 내음이 잔잔하게 고여 있었다.


그때, 아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흰색 종이가 발치에 떨어졌다.

손가락 길이밖에 안 되는 작은 카드를 주워 뒷면을 돌리니 누군가가 가지런히 쓴 글이 보였다.


'숲에서 경마 대회장으로 이어지던 길을 걷던 10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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