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네펠트 . 베를린
베를린 '로네펠트' 차 상점
온통 각진 선으로 세워진 회색빛 현대 건물은 상상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가 목적지라는 것을 알려주는 간판이 아니었으면 당연히 그냥 지나쳤을 모습이었다.
출입문 조차 찾기 쉽지 않았고 그나마 가게를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창도 어두컴컴했기에
과연 영업을 하는 중일까 의심할 정도였다.
겨우 발견한 출입문 근처를 서성이다 아무래도 돌아갈 생각을 할 무렵,
어디선가 가게의 주인인 할머니가 서둘러 나타나 문을 열어주었다.
가게 내부는 차갑고 깔끔한 회색빛 외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좁은 공간에 잡다한 물품이 많아 복잡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아늑했고
오크 톤의 카운터와 벽장들로 꽉 채운, 약방 같은 곳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작업실에 기습적으로 방문해
잔뜩 쌓인 물건을 해치고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주인이 내게 티 리스트를 받아 가볍게 훑어보고
벽장을 칸칸이 채운 네모난 청빛 틴들을 쭉 둘러보더니
이내 이름을 발견했는지 하나둘씩 꺼내어 카운터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오기 전에도 원래 작업 중이었던지 잔뜩 꺼내 둔 찻잎과 소분 봉투들을 잠시 카운터 한쪽에 밀어내고서
새로 받은 티 리스트 주문을 빠르게 만들어 나갔다.
청빛 틴 앞면의 이미지와 꼭 닮은 브랜드 스티커를 기다란 봉투에 붙이고,
100그람에 맞춰 찻잎을 퍼 담고,
입구를 잘 말아서 컬러 테이프로 능숙하게 고정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 어느 약방의 조제실에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백에 가지런히 든 티를 챙겨 나가다 출입문 근처에 있는 바구니에 눈길이 갔다.
'무료 티백. 자유롭게 가져가세요.'
나는 이것저것 종류별로 뒤섞인 티백 더미에서 얼그레이와 아쌈을 꺼내 들었다.
좋아하는 티를 보물을 발견하듯 찾아내 들고 나오는 기분이 어쩐지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