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제1권
<명상록>을 알게 된 건 몇 년 전 방영한 tvn의 <어쩌다 어른>을 통해서였다. 나는 가끔 무언가 일상이 실타래로 잔뜩 꼬여 풀리지 않을 때, 인상 깊은 작품을 만든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곤 했는데 <미생>의 윤태호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웹툰 작가지만 그 역시 요즘의 20대와 같이 암흑과 같은 시기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열정은 넘쳐 만화를 그리는 기술을 잔뜩 작품에 넣었지만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는 알맹이가 없었던 시절. 스스로의 작품에 떳떳하지 못했던 설익은 20대에 <명상록>이라는 인생책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다시 내 마음으로 돌아가 보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명상록은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가 자신의 생애 말기에 외적들의 침공을 제압하기 위해서 제국의 북부 전선이었던 도나우 지역으로 원정을 간 10여 년에 걸친 기간 동안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철학 일기다.
그가 로마 제국을 다스리는 일과 이민족과의 전쟁이라는 외적인 압박감, 무거운 짐으로부터 물러나 자기 자신 속으로 들어가서 흐트러질 수도 있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있는 교훈들을 기록했다.
문득 나를 제외한 변수들이 나라는 상수를 옥죄어오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변수와 상수의 개념을 다시 짚어야 한다. 변수는 바꿀 수 없지만, 상수는 바꿀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를 행운이라고 말한다.
뻔한 말들로 나열되어 있지만 이 말들이 윤태호 작가의 군데군데에 와닿았다고 한다. 몇 천년이 지나 금수강산이 빌딩 숲으로 변했지만 인간의 눈, 코, 입 그리고 심장은 그대로이다. 그렇기에 고전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일까?
나도 작가와 같은 사람이기에 <명상록>이 주는 울림이 있었고, 이를 곱씹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은 꽉 막히는 출근길, 막막한 점심시간, 잠들기 전 깊게 가라앉는 새벽에 있는 당신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나 질문이 있다면 짧은 <명상록>의 문구를 통해 조금이나마 풀어헤쳤으면 한다.
마르쿠스는 제1권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장점들을 세세하게 설명한다. "너의 마음을 즐겁고 기쁘게 하고자 한다면, 네가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좋은 점들을 떠올려보라". 마르쿠스는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가 이 사람들로부터 그런 장점들을 배워서 자기가 실제로 행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그들에게 어떤 장점들을 보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고, 자기가 그런 점들을 배우려고 한 것임을 말하고자 했다.
8. 아폴로니오스로부터는 내면의 자유, 그 어떤 것도 우연에 맡겨두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 오직 이성만을 의지해서 살아가고 다른 것들은 단 한순간이라도 돌아보지 않는 것, 극심한 고통을 겪거나 자녀를 잃거나 오랜 병을 앓아도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한 사람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늘 느긋하고 여유가 있으며 온유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생생한 모범을 통해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때 조급하게 굴지 않고, 철학적인 진리들을 자신의 삶의 경험 속에 녹여서 알기 쉽게 가르치면서도 자신의 그런 재능을 자랑하지 않고 아무것도 나인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에게서 보았으며, 비굴하게 보이지 않고 무성의하게 보이지도 않게 친구들이 베푸는 호의를 받아들이는 법도 알게 되었다.
10. 수사학자였던 알렉산드로스로부터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는 것, 무례하거나 어처구니없거나 황당한 말을 해도 중간에 말을 잘라버리거나 핀잔을 주지 않고, 도리어 그 사람이 사용한 표현 자체가 아니라 내용을 함께 생각하고 토론해 보거나 그 밖의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직접적으로 재치 있게 깨우쳐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12. 플라톤 학파의 철학자인 알렉산드로스로부터는 누구에게 말하거나 편지를 쓸 때 "내가 너무 바쁘다"라는 말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고 자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생겨나는 의무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자꾸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15. 막시무스에게서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절제하는 것, 한 번 결심을 했으면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것, 병을 앓을 때나 그 밖의 다른 그 어떤 나쁜 상황에서도 쾌활함을 잃지 않는 것을 보았고, 온유함과 위엄이 잘 조화되어 있는 성품의 모범을 보았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아무런 불평 없이 해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기 입으로 말한 것들은 자기 마음속에서 생각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고, 자기가 행한 것들은 나쁜 의도가 전혀 없이 행한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를 모든 사람에게 주었다. 그는 어떤 일에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고, 급히 서두르거나 망설이는 법이 없었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하거나 낙담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아부하지 않았으며, 갑자기 화를 내거나 의심하지도 않았다.
그는 너그럽고 선량했으며 기꺼이 용서했고 정직했다. 그는 바른 길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바른 길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게서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기가 그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유쾌한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16. 내 양아버지에게서는 온유함, 신중하게 심사숙고해서 한 번 내린 판단은 흔들림 없이 고수하는 것, 명예를 얻고자 하는 헛된 허영심이 없는 것, 일 자체에 대한 열정과 끈기, 공공의 유익을 위해 무엇인가를 제안하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 상벌을 엄격히 하는 것을 보았고, 밀어붙일 때와 풀어 주어야 할 때를 경험으로 알고 계신 것을 보았으며, 소년들에 대한 모든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보았다.
(중략)
무엇보다 그는 수사학이나 법률이나 윤리 같은 분야들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을 시기하지 않고 기꺼이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런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것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또한 그는 변화를 주는 것이나 오락가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늘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일을 하곤 했다. 잠시 심하게 두통을 앓다가도 이내 다시 힘을 차리고서 일상으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했다.
(중략)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이 의지가 너무 약해서 안 할 수 없고, 한 번 하면 완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런 일들일 지라도 자기는 안 할 수도 있고 적당히 즐길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은 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일을 안 할 수 있는 절제력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막시무스가 병들었을 때 보여준 것과 같이 완전한 불굴의 정신을 소유한 사람의 특징이다.
17. 신들에게서 나의 좋은 조상들, 좋은 부모, 좋은 누이, 좋은 스승들, 좋은 권속과 친지와 친구들을 예외 없이 거의 모두 얻었다. 나는 사람들을 상처 받게 할 수 있는 기질을 타고나서, 여건이 조성되기만 했다면, 그들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든 깊은 상처를 받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나의 그런 기질이 나타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게 한 신들의 은총 덕분이었다.
* 이 글은 현대지성에서 발간한 <명상록>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