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보단 이 세계 씨름 힐러!0화

0화 프롤로그 – (1)

by 겜노인

“밭다리!!” ‘삐이이익!’

시원한 호각 소리와 함께 꽃가루가 터져 나왔다. 거친 모래판, 승리를 거머쥔 한호는 양 손을 높이 들며 우승을 만끽했다.


시합이 끝난 씨름 경기장. 매년 유망주들이 모여 토너먼트 경기를 진행하는 이곳은 우리나라 씨름의 산실이자 스타 등용문이었다.


이날 우승한 강한호(18세)는 촉망받는 유망주다. 유명 씨름 명가의 후손이자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목받아온 신예 씨름선수다.


183cm의 키에 75Kg이라는 인상적인 신체 조건에 부모의 성격을 물려받아 성실하고 열정적인 노력파였다.


고등부 소장급인 강한호는 대학 진학보단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프로 입단을 준비하고 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프로에 진출해 천하장사를 목표로 활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타가 되어 씨름을 널리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씨름이 주는 묘미를 전 세계에 알리는 스타, 강한호의 목표였다.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담금질 중 하나인 이번 동계 시즌 첫 대회는 개학 일주일 만에 치러진 시합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미 씨름 명문 팀을 운영하는 남호 고등학교 2학년에 오른 한호는 새로운 후배들과 함께 올해 역대 최대 성적을 준비하고 있다.


그 시작은 아주 매끄러웠다. 시즌 첫 경기, 개인 우승과 팀 우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그러나 한해 무수히 많은 경기가 남아 있기에 한호는 자만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반영하듯 한호는 마지막까지 남아 물품 등을 정리했다. 그래서 다소 늦은 시간 경기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직은 봄이 오지 않은 까닭일까. 어둠이 내린 경기장 주변은 낮의 열기와는 다른 선선함이 느껴졌다. 아직 일교차가 크다.


“됐어, 내가 알아서 갈게.”

“그래, 조심히 오고.”

한호의 부모님이 마중을 나오지 못한다는 전화였다. 혼자 계시는 할아버지의 두통이 심해져서였기 때문이었다.


부모와 통화를 끝낸 한호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자신의 운동복과 샅바, 각종 도구가 들어 있는 큰 가방을 어깨에 메고 나왔다.


잠시 후 끼익 소리와 함께 외곽 순환버스가 멈춰 섰다. 도심에서 다소 먼 경기장 위치 때문에 버스 내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삑! 교통 카드를 찍고 버스에 오른 그는 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문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평상시 처음 음악 앱을 실행하고 평소처럼 ‘인기 차트’를 틀었다. 생소한 음악의 시작. 근데 이 노래는 가요는 아니었다.


(음? 무슨 노래지?)


한호의 귀에서 울리는 노래는 가사가 없는 반주곡이었다. 부드러운 선율과 묘한 푸근함까지 느껴지는 그런 음악이다.


평소 즐겨 듣던 인가 차트는 매번 1위가 바뀌기에 새로운 곡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난데없는 경음악은 낯설긴 하다.


한호는 스마트폰의 잠금 화면을 풀고 앱을 열어 지금 나오는 음악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베르니아 판타지?”


설명에는 올해로 7주년을 맞이한 MMORPG 베르니아 판타지의 메인 BGM이라고 적혀 있었다.


게임 OST가 인기 차트 1위라니. 한호는 그저 신기했다. 근데, 이 게임 명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누가 나한테 말한 것 같은데.. 미래였나?)


평소 게임에는 무관심한 한호. 훈련이 없는 날 영화나 추리 소설, 만화는 보지만 유독 게임은 손이 안 갔다.


낯선 음악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들어줄만했다. 그리고 버스 안이 따뜻해서인지 만사가 귀찮아지고 있었다.


이는 버스 안 손님들 – 3명 정도 -에게도 해당됐지만 버스 운전기사도 마찬가지였다.


늦은 주말 저녁, 차도 드문 조용한 도로는 익숙한 배터랑 운전기사에겐 너무 쉬운 길이었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외곽 순한 버스는 언덕길 코너로 막 들어가고 있다. 속도도 문제없고, 진입 과정에서 흔들림도 없이 부드러웠다.


그때 운전기사는 평소처럼 운전하고 있었다. 도로에 떨어져 있던 운전석 위치의 큰 돌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 꽉들 잡으세요!!”


놀란 운전기사가 떨어진 돌을 피하려고 급하게 핸들을 오른쪽 방향으로 움직였다. 좌회전 중이던 버스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버스 내부는 큰 흔들림으로 인해 모두 제대로 앉아 있지 못했다. 특히 한호는 기둥을 잡다가 손에 있던 스마트폰을 놓쳐버렸다.


그 스마트폰은 툭 튕겨나가 버스 하차 계단 아래에 떨어졌다. 그러나 당장 저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버스는 여전히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핸들을 겨우 잡고 있는 운전기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 안전벨트 착용.. 하시고! 꽉.. 잡으.. 세요!”


버스는 운전기사의 노력처럼 쉽게 중심을 잡지 못했다. 아직 코너를 돌고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버스 내부는 아수라장이었다. 비명을 지르는 여성 승객부터 승객의 짐으로 보이는 가방 등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겨우 기둥을 잡고 버티던 한호는 경찰에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너무 멀리 있었다.


스마트폰을 잡기 위해 몸을 웅크려 손을 내미는 한호. 닿을 듯 말듯한 스마트폰이 야속하게 흔들리고 있다.


“승객.. 조심.. 어어어?!”


그때 중심을 잡지 못한 버스가 코너를 벗어나자마자 ‘끼익’ 미끌리더니 ‘콰앙~’ 소리와 함께 오른쪽으로 쓰러져버렸다.


엄청난 충격이 한호를 강타했다. 속도를 제대로 줄이지 못한 버스는 그야말로 ‘쭈욱’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렇게 미끄러진 버스는 언덕길 옆 방지턱과 일부 임시 가림막을 길게 부순 후 길에 걸치듯 겨우 멈춰 섰다.


하필 이곳은 제법 경사가 진 언덕이었는데 지난번 사고로 인해 가드레일이 손실됐고, 최근까지 이를 고치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지?)


한호가 정신을 차린 건 얼마 되지 않은 후였다. 이마 부분에서는 피가 흘렀다. 한호는 몸을 겨우 일으켜 눈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깨진 유리파편부터 여러 물건들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버스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한호도 겨우 몸을 움직이고 있지만 허벅지부터 팔에는 큰 상처가 나 찢어진 옷 틈 사이로 선혈이 나 제대로 힘을 줄 수 없었다.


(온몸이 너무 아프다. 아.. 어떻게 된 거지?)


한호가 겨우 버스 오른쪽 창문틀을 밟고 일어서자 창문 아래로 시꺼먼 경사가 드러났다. 순간이지만 공포스러웠다.


(여길 벗어나야 돼.)


겨우 한걸음을 떼는 한호. 그러자 철 긁히는 소리와 함께 쓰러진 버스가 조금 밀리듯 덜컹 흔들거렸다.


이미 버스의 무게 중심이 아슬한 경계에 놓여 한호의 움직임에 반응을 보인 것이다.


잠시 멈춰 선 한호는 버스 안을 두리번거리며 확인했다. 오른쪽 입구, 출구가 모두 막힌 상태에서 빠져나갈 곳을 찾기 위함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지만 버스가 충돌하며 버스 앞 오른쪽에 있는 유리가 크게 파손돼 있었다.


한호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앞 유리 운전석에는 버스 운전기사가 신음 소리를 내며 매달려 있다.


(구해 드려야 돼..)


버스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한호는 운전기사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중앙 앞쪽에 위치한 비상 망치가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한호가 움직이지 않아도 버스는 조금씩 흔들렸다. 그때 운전기사가 겨우 눈을 떴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곧 내려드릴게요”


벨트를 풀어보려고 했으나 충격으로 끼어버린 듯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한호는 탈출 망치 아래쪽 망치 뒤에 칼날 부분을 써서 벨트를 잘라냈다.


그러자 버스 운전기사가 맥없이 자신의 방향으로 떨어졌다. 한호가 받을 새도 없이 말이다. 쓰러졌던 한호가 겨우 몸을 일으킨다.


운전기사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 한호는 떨어진 비상용 탈출 망치를 들고 앞유리로 향했다.


그리고 깨진 부분을 집중적으로 부수듯 내리쳤다. 그러나 유리는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한참 걸릴 것 같았다.


그때 한호의 눈에 소화기가 들어왔다. 한호는 소화기를 양손으로 움켜쥔 후 강하게 앞 유리를 후려쳤다!


‘콰직!’


내려찍은 곳부터 유리가 춤을 추듯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호는 이를 꽈악 물고 다시 한번 강하게 소화기를 휘둘렀다.


그러자 ‘퍼억’ 소리와 함께 앞 유리에 큰 구멍이 생겼다. 사람 한 명이 웅크린 채 나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버스의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지고 있었다. 점점 경사 쪽으로 버스가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아마 주변 운전자의 신고로 경찰이 온 것 같았다.


한호가 힘겹게 운전기사를 앞 유리 구멍으로 내보내고 있을 때 경찰 2명이 뛰어왔다. 덕분에 운전기사를 구해낼 수 있었다.


“학생! 괜찮아? 일단 밖으로 어서 나와!”


경찰 한 명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한호는 뒤에 사람이 있다고 말한 후 버스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성 승객과 할아버지 한 분이 쓰러져 있었다. 아마 충격으로 둘 다 의식을 잃은 듯 보였다.


(무릎아.. 어깨야 제발 버텨줘!)


달리 방도가 없는 상황. 한호는 여성 승객을 번쩍 들어 어깨에 멘 후 몸을 낮춘 채 할아버지를 다른 팔로 안아 들었다.


축 처진 여성 승객과 할아버지. 엄청난 무게감에 무릎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한호의 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겨우겨우 발걸음을 떼 앞 유리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버스 앞에서는 경찰과 시민들이 합세해 유리창 구멍을 더욱 크게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덕분에 할아버지와 여성 승객은 운전기사보단 신속하게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그때 버스 뒤에서 다급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충격으로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사람인 것 같다.


“사, 살려줘! 여기 안전벨트가 안 풀려!”


경찰과 시민들은 한호에게 나오라고 계속 말했지만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던 한호는 다시 뒷자리로 향했다.


뒷자리 남성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마구 몸을 흔들고 있다. 그럴 때마다 버스가 조금씩 더 요동쳤다.


“움직이지 마세요! 곧 벨트를 자를 테니깐.”


그러나 남성은 화를 내듯 더 몸부림쳤다. 한호가 뒷자리에 있던 비상 망치를 겨우 잡아 안전벨트를 자르기 시작했다.


“빨리해! 죽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남자. 그러나 한호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아마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 듯하다.


그때 버스가 ‘끼 기기 긱’ 소리를 내며 뒤로 조금씩 밀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앞 쪽에 있던 경찰과 일반 시민들이 놀란 듯 ‘어, 어~’ 하며 버스 여기저기를 잡았다. 하지만 내려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천천히 밀려내려 가는 버스. 그 순간 남성의 안전벨트가 끊어졌다! 겨우 벗어난 남성은 몸부림치듯 일어섰다.


그리고는 한호를 밀치듯 지나쳐 버스 앞쪽으로 뛰어가버렸다. 순간적인 행동에 한호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평소라면 그럴 리 없겠지만 아마 다친 무릎에 무리가 온 것 때문인 것 같다.



그 남성이 넘어지듯 버스 밖으로 나가자 버스는 무게 중심을 잃은 듯 급격하게 경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경찰과 시민들이 어떻게든 버스를 잡고 한호에게 나오라고 소리쳤지만 버스가 끌리듯 내려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한호는 필사적으로 움직이려고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사이렌 소리, 버스가 충격을 받으며 내는 소리, 사람들의 외침 등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끼기긱, 끼이~익’


이 기분 나쁜 소리를 마지막으로 버스는 경사면을 미끄러지듯 내려가기 시작했다.


‘쿠콰앙~ 쾅, 쾅’


그리고 이내 커다란 굉음과 함께 굴러갔다. 작은 나무는 힘없이 버스와 충돌해 부서졌고 차량의 유리 파편과 함께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졌다.


안에 있던 한호는 강한 충격과 함께 버스 안을 뒹굴고 있었다. 너무 큰 충격이라 오히려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대로.. 죽는 걸까.)


이미 몸의 제어가 불가능한 상황, 그때 어떤 음악이 한호의 귀에 들려왔다. 한쪽만 끼어져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서였다.


(뭐지.. 아까 그 음악.. 인가?)


그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언덕 아래 지면에 추락했다. 충격음이 사라진 사고 현장에는 사이렌 소리만 남았다.


* * *


잠시 후 음악 소리가 멈췄다. 아까까지 느껴지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진 상황. 한호는 어리둥절했다.


(나.. 사고당하지 않았나?)


버스 사고는 분명히 벌어진 일이었다. 생생했던 감정의 흔적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에서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아프지도 않고 오히려 편안했다.


(여긴.. 어디지?)


엎드려 있던 한호가 상체를 일으켜 앞을 쳐다봤다. 버스는 커녕, 아까 보였던 어두컴컴했던 경사면 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신 푸른 녹색의 잔디가 깔려 있는 초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꽤나 이질감 가득한 형태로 말이다.


화창한 날씨, 푸른 하늘, 묘하게 닮은 여러 개의 구름. 그리고 인자한 미소를 품고 있는 태양이 눈에 들어왔다.


(…. 태양이.. 웃고 있다고?!)


화들짝 놀란 한호가 주변을 바라봤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한 느낌, 그렇다면!


(설마 이곳이 천국인가?)


아니었다. 인자한 미소의 태양이나 시골 느낌 물씬 나는 넓디넓은 초원이 천국 일리가 없다. 그냥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때였다.


“크르크큭, 이게 얼마만의 사냥감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괴상망측하게 생긴 존재들이 서 있었다. 한호는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특이한 건 머리 위에 ‘Lv 03 부대장 고블린’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 고정된 것 마냥 그 존재가 움직일 때마다 따라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부라도 떨뜻 ‘Lv 02 신참 고블린’들이 2마리 서 있었다.


(나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서울에 위치한 남호 고등학교의 한 교실. 한 여학생이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를 본 한호가 놀리듯 말한다.


“또 게임하고 있는 거야?”

“뭐래, 씨름인! 저리 가서 운동이나 해.”


여학생이 손가락으로 눈 아래를 잡아당기며 ‘메롱’ 한 후 다시 게임에 열중한다.


그녀는 이름은 유미래. 현재 남호 고등학교 2학년이자 한호와 같은 반이다.


한호와는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원수 같은 사이다.


둘은 서로를 최악으로 말하지만 친구들은 이 둘을 ‘미래 부부’라고 부르고 있다.


“너 같은 근육 덩치가 이런 걸 알리가 없지. 2013년을 강타한 모바일 MMORPG ‘베르니아 판타지’를 말이야~”


한호가 미래의 손에 있는 스마트폰을 슬쩍 쳐다본다. 화면에는 화려한 그래픽 효과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 게 재미있냐. 가짜잖아. 가짜.”


한호가 관심 없다듯 손사래를 치며 말하자 미래는 관심 없다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속상한 부분은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한 게임 스트리머. 아직은 구독자가 4~5백 명 정도밖에 안되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미래에겐 삶의 목표가 됐다.


한호가 씨름 훈련을 하듯 미래는 틈틈이 게임을 공부하고 방송해왔다. 노력이라면 미래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한호가 답답할 뿐이었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알려주고 싶은 미래였다.


“너도 매번 몸만 쓰지 말고, 게임해보는 게 어때? 나름 재미있다고.”


미래는 그렇게 말하며 한호의 얼굴 쪽으로 스마트폰을 쓰윽 내밀었다.


화면에는 빛이 나는 대검을 들고 있는 우람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옆엔 작은 귀여운 동물(?)이 꼼지락 거리고 있다.


“이 작은 동물은 뭐야?”

“아, 펫이야. 여기서 키우는 애완동물이지.”


잠시 흥미가 생긴 걸까. 한호는 화면을 좀 더 자세히 바라봤다. 우람한 덩치의 남자는 ‘Lv 70 미래미래용’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캐릭터는 최고 레벨에 전투력도 최상이야. 오랜 시간 플레이하면서 꾸준히 단련했거든.”

“최고 레벨? 뭐 천하장사 같은 거야?”


‘풋!’ 하고 웃어버리는 미래. 한호다운 비유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여기에도 랭킹이 있으니깐, 그래서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려면 최고 레벨 이후에도 계속 플레이를 해야 해.”


한호가 흥미가 생긴 듯 자신도 해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그리고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미래에게 내밀었다.


조금 오래된 스마트폰이었다. 미래는 한호의 스마트폰을 보자마자 인상부터 썼다.


“이거 언제적 스마트폰이야?”

“아.. 하하. 글쎄.. 중학교 때부터 썼던 건가.”


미래는 잠깐 생각한 후 자신의 계정을 로그아웃했다. 그리고 한호에게 다시 내민 후 새로 캐릭터를 제작하라고 했다.


“자, 잠깐 해보는 거라면 내 스마트폰으로 캐릭터를 만들어해 봐도 돼.”


게임은 해본 적도 없는 운동인 한호에겐 너무 어려웠다. 미래는 친절히 설명해주며 캐릭터 제작에 돌입했다.


여러 개의 멋진 캐릭터가 화면에 등장했고, 미래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이건 근접 공격 위주의 파이터고, 이 캐릭터는 대미지가 높은 아처야. 이건 강력한 마법을 쓰는 소서러지.”


그때 한호의 눈에 띄는 하나의 캐릭터가 있었다. 회복과 지원을 하는 ‘힐러’였다.


그러자 미래가 손가락을 들고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이 캐릭터는 상급자들이 하는 직업이야. 너 같은 초보에겐 너무 어려워.”


MMORPG 속 힐러는 전투보단 파티 플레이 속 지원을 담당하는 캐릭터라 혼자 키우기는 꽤나 버거운 직업이다.


“그러니깐 더 땡기는데.”

“에휴, 고집스럽긴. 맘대로 해라.”


미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캐릭터 생성’ 버튼을 터치해줬다. 그러자 ‘캐릭터의 이름을 입력해주세요!’라는 문구가 떴다.


“자, 그래도 이름은 있어야지?”

“아.. 나 이름 짓는 거 잘 못하는데..”


한호가 인상을 쓰며 고심에 빠지자 귀찮다듯미래가 말했다.


“대충 적자, 너 씨름인이니.. 름름 어때?”


아마 힐러 캐릭터가 여성으로 기본 설정돼 있어서 그렇게 말한 듯하다. 한호는 별생각 없이 끄덕끄덕거렸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한국 게임 산업의 불안 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