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특별한 아이
낯선 공간에서의 낯선 만남, 한호는 다소 긴장한 듯 물었다.
“저, 실례지만 누구시죠?”
그에 비해 앞의 노인은 어떠한 감정적 변화 없이 여전히 차분하게 답했다.
“난 요바, 그리고 이 녀석은 피클일쎄..”
노인이 작은 손을 들어 빛을 살짝 만진다. 빛은 좀 더 환해졌다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요바.. 어르신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씨름을 오래 한 한호는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웠다. 근데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생각났다. 길마가 이야기해준 ‘점검의 산’과 그곳을 지키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
“시간이 되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네. 그게 조금 빨라졌구나.”
요바는 한호를 보며 수염을 쓰다 듬었다. 빨라졌다는 의미, 한호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운명은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야.”
딱 한호 상황에 맞는 말이었다. 우승 한 날, 돌아가기 위해 탄 버스, 그리고 사고.
눈을 떠보니 게임 속이었고, 많은 경험은 아니지만 잘 이겨내고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그곳에서마저 죽어버렸다.
생각이 많아진 듯 허탈해하는 한호. 요바는 그런 한호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띤다.
“물론 항상 좋은 길로만 가면 좋겠지. 그러나 그것 또한 네가 만들고 개척해야 한단다.”
그의 말에 한호는 자신의 생각을 요바가 읽고 있는 게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여기, 이곳에서는 너의 모든 게 보인단다.”
요바가 말했다. 단순한 생각을 넘어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상념처럼 보인다고.
그러자 주변의 어두운 공간들에 한호의 예전 모습들이 파편화돼 보였다.
그곳에는 초등학교 씨름부터 들어간 순간부터 미래와 만나는 모습, 부모님과 할아버지, 그리고 최근 버스 사고까지 담겨 있었다.
“잘못된 것이 아냐, 모든 게 특별한 거지.”
놀라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한호를 보며 요바는 말했다.
“다만 너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구나.”
그렇게 말하자 다시 주변은 어두워졌고, 그곳에는 한호와 요바, 피클만이 남았다.
“알고 싶은 게 많을 게야.”
요바의 말에 한호가 긴장한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르신, 저는…”
그때 요바가 몸을 돌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피클이라 불린 빛도 그를 따라 날아갔다.
“따라오시게나. 듣고 싶은 말이 많을 테니.”
“…네.”
요바가 걸어간 방향으로 한호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빛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둠 속으로 나아가 조금씩 사라졌다.
“여기일세.”
한호와 요바, 그리고 피클이 도착한 곳은 아주 작은 문 앞이었다. 아마 요바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들어오게.. 차라도 한잔 하지.”
“네..”
먼저 요바와 피클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 문은 딱 봐도 한호가 들어가기엔 조금 작았다. 요바가 ‘아차’ 싶었는지 다시 문 근처로 왔다.
“그럼 잠깐 바꾸겠네.”
요바가 가볍게 손뼉을 두 번 치니 ‘펑!’ 한호의 모습이 다시 름름으로 변했다.
“이러면 들어올 수 있겠지?”
“아.. 네네.”
무릎을 꿇고 엎드린 상태로 조심스럽게 한호, 아니 름름이 들어갔다. 아담하고 작은 방. 름름이 서 있긴 무리였다.
요바의 방은 소소하고 작은 물건들로 가득했다. 작고 앙증맞은 탁자와 그 위에 방금 끓인 것 같은 따뜻한 차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르신은 여기에서 살고 계신 건가요?”
“그렇네, 자네에겐 조금 좁지?”
름름이 주저앉아 살짝 웃었다. 피클이 보란 듯 차 주변에서 날아다닌다.
“그래, 먼저 차 대접부터 해야지.”
름름은 작은 찻 잔을 받아한 모금 했다. 구수한 차가 온몸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둘만의 대화가 시작됐다.
한호는 살아온 이야기부터 사고를 겪었던 과정까지 담담하게 꺼냈다. 요바는 그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해줬다.
그중 이목을 집중시킨 화제는 씨름이었다.
“특이하구나, 씨름이라는 운동.”
“아, 한 번도 보지 못하신 건가요?”
요바가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 “게임으로 만들어졌다면 아마 알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접할 수가 없단다.”
하긴, 씨름이 게임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매일 같이 훈련하고 씨름만 생각하며 살았지만 정작 이런 부분에서 둔했던 것 같다고 한호는 생각했다.
씨름. 한국의 전통문화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힘겨루기식 스포츠다.
최근에는 다양한 채널 통해 젊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졌지만 여전히 씨름에 대한 인식은 약한 편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런 부분도 생각해봐야겠다.)
한호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보이자 요바가 말을 꺼냈다.
“씨름 이야긴 담에 더 듣기로 하고,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볼까?”
한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한호가 알고 싶은 건 하나였다.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방법, 그것뿐이었다.
요바가 마신 찻 잔을 내려놨다. ‘흐음..’ 가벼운 한숨도 흘러나왔다. 혹시 모르는 거 아닐까. 한호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됐다.
“지금 자네 상황은,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버그일세.”
버그? 게임 용어에 약한 한호가 재차 물었다. 그러자 요바가 가볍게 웃으며 설명했다.
버그(BUG)는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의미한다.
“그래, 그것도 아주 특별한 버그지.”
요바가 설명을 계속했다. 어느 날 서버에 생각지도 못한 코딩이 전개됐고, 그날 어떤 가상의 유저가 생성됐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요바는 베르니아 판타지 각지에 있는 많은 인물들과 소통했지만 뾰족한 해답을 찾진 못했다.
다만, 름름의 등장으로 인해 서비스 종료를 앞둔 베르니아 판타지에 알 수 없던 변화가 느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래된 게임이네. 이젠 신규 유저도 오지 않고, 서비스 종료를 앞둔 그런 게임이지. 그런 게임에 자네가 온 건 어떤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네.”
요바는 말했다. 개발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묵묵히 요바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 게임에는 하나의 비밀이 있네. 아마 일반 유저들은 알지 못하는 그런 내용이지.”
비밀. 베르니아 판타지는 모바일 기반의 MMORPG이지만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진 엔딩을 볼 수 있었다.
‘True Ending’ 즉, ‘진짜 엔딩’은 알려지지 않은 어떤 조건들을 달성하면 볼 수 있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일종의 보상이다.
“이 게임은 온라인 게임이지만 70 레벨 달성 시 유저 원한다면 엔딩을 볼 수 있지. 하지만 엔딩을 보지 않고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진 엔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네.”
요바는 그렇게 말한 후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 엔딩을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진 엔딩 조건은 우리도 알 수 없다네, 다만 엔딩을 볼 수 있는 조건, 최고 레벨은 필수인 것 같네.”
한호는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니어도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씨름의 길로 인도한 할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대회를 앞둔 씨름 경기장
“한호야, 첫 번째 경기는 예선전이야.”
“네, 빨리 끝내고 올게요.”
감독의 말에 초등학생 한호가 샅바를 야무지게 당겼다. 긴장도 하지 않고 싱글벙글 웃고 있다.
그걸 유심히 보던 한호의 할아버지가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가왔다.
“한호야, 할아비 이야기 잘 들어야 한다.”
흰 한복을 입고 있는 노인은 한호 앞으로 이동해 한쪽 무릎을 꿇고 샅바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예선전이나 결승전 모든 경기는 승패만 있을 뿐 모두 똑같단다. 하지만 선수가 자만하면 그 경기가 항상 마지막 경기가 된단다.”
어린 한호에겐 다소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날 예선전 경기에서 한호는 2:1로 패했고, 구경 온 어머니 품에서 펑펑 울었다.
그때 한호는 뭐든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뒤로는 어떤 경기든 허투로 대하지 않았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분명히 있다.)
비록 게임이지만 이곳에서 진심을 다해 노력한다면 그에 따른 보상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호가 다짐하자 요바는 작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두 캐릭터의 첫 만남이 끝이 났다.
한호, 아니 름름은 가볍게 요바에게 인사한 후 조심스럽게 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요바와 피클도 따라 나왔다.
“우선 자네의 일행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곳으로 먼저 가시게.”
요바는 손을 들어 먼 곳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름름은 그곳을 바라본 후 요바를 향해 인사했다.
“또 뵙겠습니다. 어르신.”
끄덕거리는 요바. 름름은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피클의 빛이 조금씩 멀어졌지만 두렵지 않았다.
조금 지나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눈을 뜨자, 익숙한 탄광의 모습이 드러났다. 다시 돌아왔다!
“쳇, 나도 이제 한계군..”
길마가 비어버린 인벤토리 창을 닫은 후 몰려드는 좀비를 피하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미 체력도 바닥에 가까웠다.
름름이 쓰러진 이후 분노한 길마가 4마리의 좀비를 물리쳤지만 그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게 입은 상태였다.
남은 좀비 3마리가 길마를 맹추격하고 있다. 계속된 도망에 지친 걸까. 길마의 다리가 살짝 풀렸다.
움직임이 멈춘 길마. 그를 쫓던 좀비 중 1마리가 양 손을 높이 쳐든 후 잡아먹을 듯 휘두르며 다가왔다.
(제길, 여기까지인가..)
“흐아아압!”
‘콰아앙!’
커다란 충격음이 탄광 안을 울렸다. 그곳에는 좀비 1마리가 구겨지듯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다. 그리고 그 옆 름름이 서있었다.
어둠을 뚫고 나온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눈에 보인 좀비의 기운 상체를 잡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왼다리를 미는 강력한 ‘차 돌리기’ 기술을 썼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상처가 잔뜩 나 있는 길마가 지친 상황에서도 반갑게 름름을 맞이한다.
“길마형, 미안해요. 너무 늦었죠?”
그 말과 동시에 름름의 몸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평상시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저.. 저런 건 본 적이 없는데..”
그때 길마에게 힐 스킬이 적용됐다. 녹색 효과가 길마를 감싸자 상처도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쓰러진 좀비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남은 2마리의 좀비가 름름을 향해 흉측한 팔을 휘두르며 다가왔다.
그 순간 빠르게 름름이 좀비 앞으로 지나쳐갔다. 좀비들을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속도였다. 그 사이 름름의 양 손이 좀비의 허리를 잡았다.
그 순간 름름이 상체를 세우고 있는 상태에서 허리를 빼앗긴 좀비의 바깥다리를 걸어 후려쳤다! ‘밭다리 치기’였다.
‘쿠웅!’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좀비가 바닥에서 튕겨 날아갔다.
그리고 름름은 곧바로 옆에 있던 좀비의 하체를 잡아 허리 높이까지 들었다.
“저, 저게 무슨 기술이야?!”
허리를 잡힌 좀비가 버둥되지만 름름은 흔들림 없이 잡고 있다. 놀란 길마는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완전히 상대를 든 름름이 좀비의 하체를 잡은 쪽을 들고 자신의 상체를 왼쪽으로 회전시키며 좀비를 집어던졌다!
씨름 경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터지면 모든 관중들을 기립하게 만드는 화려한 기술 ‘후려 던지기’였다!
일반적인 ‘돌려 뿌려 던지기’ 기술은 상대방이 지면에 다리가 닿은 상태에서 상대의 힘을 역으로 이용해 넘어 뜨리는 기술이다.
그러나 름름의 후려 던지기는 상대방을 대각 방향으로 들고 회전해 던지듯 날려버린 것. 시원하고 호쾌한 한방이었다!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좀비가 비명 소리와 함께 서서히 사라졌다. 름름은 좀비들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길마 쪽으로 뛰어갔다.
“길마형 괜찮아요?”
길마가 몸을 들어 름름을 바라봤다. 어느새 몸을 감싸던 푸른 기운이 사라지고 평범한 힐러 캐릭터로 돌아왔다.
“너, 살아 있었구나..”
“아, 그게..”
름름은 요바를 만난 이야기를 길마에게 전했다. 그 후 전투 상황에 대해선 그냥 몸이 막 움직이는 상황이었다고.
“어쨌든,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마워.”
길마가 름름의 어깨를 툭 친 후 자신의 대검을 등에 장착했다. 고개를 끄덕거린 름름이 나아갈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뭐지. 이 이상한 감정은?)
봇으로 만들어진 길마는 여러 가지 설정이 적용돼 있는 가짜 유저다.
나름 정교하게 만들어져 등장 초반에는 화제도 됐지만 금방 유저들이 눈치채 버렸고, 나중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름름은 자신을 가짜 유저가 아닌 인공지능 봇이 아닌 진짜 유저, 친한 형처럼 대하고 행동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대우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길마 입장에선 낯선 경험이었다.
“아, 길마형, 저쪽 길로 가면 될 것 같은데..”
름름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길마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거린 후 름름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래, 너도 왔으니 이 던전 끝을 봐야지?”
“네, 그래요.”
름름이 앞장서 탄광 깊숙한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길마는 복잡한 생각을 지우려는 듯 고개를 몇 번 흔든 후 름름을 따라갔다.
그렇게 름름과 길마가 탄광 더 깊숙한 곳으로 사라지자 누군가가 뒤에서 나타났다. 분명 광부는 아니었다.
(저 캐릭터… 카윌님이 아셔야 할 것 같군.)
잠시 생각하는 듯 서 있던 캐릭터가 름름과 길마가 간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이 흩날렸다.
그리고는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름름과 길마는 좀비와 몇 번의 조우가 있었지만 적은 수라 쉽게 소탕하며 계속 전진했다.
그리고 사이사이 발견된 퀘스트 아이템 ‘철광석’도 제법 모을 수 있었다.
빠르게 전진하는 두 캐릭터. 그러나 여전히 광부들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혹시, 좀비가 돼버린 건 아닐까요?”
“쓰읍. 무슨 그런 안 좋은 말을..”
길마가 손으로 X자를 그리며 안된다는 표시를 한다. 름름이 다소 민망한 듯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렇지만 던전을 들어가는 내내 광부들을 한 명도 보지 못한 건 좋은 징조는 아니다.
“탄광의 지리는 광부들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분명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야.”
길마의 말을 들은 름름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둘은 탄광 깊숙한 곳으로 계속 전진해 나아갔다.
“지도 한 번 볼까?”
어느 정도 들어왔는지 길마가 확인 차 지도를 펼쳤다. 현재 위치는 탄광의 2/3 지점, 가장 큰 갱도 앞이었다.
“아마 여기서 조금 더 전진하면 탄광의 끝, 커다란 채광 구역이 있을 거야.”
채광 구역. 철광이나 탄석 등을 직접적으로 캐는 공간이다. 두 캐릭터는 탄광의 갱로를 따라 계속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 저기!”
름름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채광 구역, 낙석 주의’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드디어 던전의 끝 부분에 도착한 것이다.
채광 지역은 넓은 원형 형태로 돼 있고, 여러 군데 채광을 진행한 흔적들이 보였다. 꽤나 넓은 공간이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작업 공간처럼 보이는 작은 동굴 쪽에 목탄차 하나가 뒤집어진 채 입구를 막고 있었다.
“누군가.. 일부로 막은 것 같은데.. 가보자.”
름름과 길마가 목탄차 근처로 다가가자 작은 목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길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거기, 누구 있나?”
그러자 내부에선 놀라듯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구하러 왔습니다.”
이번에 름름을 말했다. 목탄차 뒤 작은 동굴 안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조용히 퍼졌다.
“아, 안돼.. 지금은 나갈 수 없어!”
그러자 안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분명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목탄차 때문에 그러신거면 저희가 치워..”
“아냐! 일부로 둔 거야! 그 녀석이 올 거라고!”
그 녀석? 름름과 길마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혹시 좀비를 말하는 걸까.
“탄광 내 좀비들은 저희가 처리했어요. 나오셔도 됩니다.”
“아니야! 그놈들 말고.. 진짜가 있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채광 구역 한가운데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좀비와는 다른 커다란 움직임이었다.
“머, 뭔가 온다! 름름 조심해!”
길마가 황급히 몸을 돌린 후 대검을 꺼내 공격 자세를 취했다. 름름 역시 지팡이를 꺼낸 후 다음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쿠크그그그…’
그때 지면을 울리는 묘한 소리가 두 캐릭터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리고 이 이상한 소리는 조금씩 름름과 길마 쪽으로 다가왔다.
‘콰아아앙!’
그 순간 지면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뚫고 튀어나와 둘을 덮쳤다!
“피해!”
길마가 왼쪽 방향으로 뛰듯 회피했고 름름도 대비한 까닭에 겨우 피할 수 있었다.
두 캐릭터를 기습한 존재는 뒤집혀 있는 목탄차 근처에서 서서히 몸을 돌려 름름과 길마를 노려봤다.
“저.. 저게 뭐죠?”
름름에 눈에 들어온 거대한 몬스터는 검은 피부를 가져 좀비와 흡사했지만 탄력 있는 피부와 잘 단련된 근육이 돋보였다.
퀭한 눈동자의 얼굴, 그리고 더럽지만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이는 치아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나오는 거친 숨결이 눈에 띄었다.
손톱과 발톱은 더러웠지만 길고 예리했다. 누더기가 된 옷이 아니었다면 이 몬스터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쳇, 저건 좀비가 아니라 구울이다.”
지면 밖으로 튀어나온 구울은 양쪽을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본 후 ‘크아아아아악!’ 탄광이 울리도록 큰 괴성을 질렀다.
“정말 조심해야 돼. 준비해 름름!’
그때 구울의 머리 위로 ‘던전 보스!, 주술로 만들어진 괴생명체 구울’이라는 안내 문구가 떴다. 탄광 던전의 마지막 적이었다.
“분명 쉽지 않을 것 같아, 뭐든 팍팍 쓰라고!”
“네, 형도 조심해요!”
두 캐릭터가 채광 구역의 중심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아마 목탄차 쪽 숨어 있는 광부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는 것 같다.
뒤로 빠져 공격 자세를 취하는 름름과 길마를 따라 구울의 시선이 조용히 따라 움직인다. 흐른 눈동자지만 살기만큼은 분명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