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연담] 프롤로그
"꿈이란 오랜 시간 동안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정보였습니다."
관객으로 가득한 방송국 스튜디오의 무대. 그곳에는 유명 토론가이자 인기 프로그램 '이야기에 대해..'의 MC를 맡고 있는 G씨가 서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청중들은 언제나 그랬듯 진중하게 그를 바라봤고 오랜 경험 탓인지 G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차분히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그 꿈에 대한 정보를 세계 최초로 분석한 학자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꿈에 대해 추적하고 꿈의 진실을 파헤쳐온 그 사람!"
G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관객들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그동안 외부 노출을 꺼려왔던 그가 방송 처음으로 무대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 여성 관객은 그의 모습을 오랜 시간 기대했던 것처럼 마른침을 삼켰다.
"소개합니다! 꿈을 정복한 우리나라 최고의 학자 A씨입니다!"
G는 게스트가 나오는 곳을 향하 몸을 돌리며 손으로 가리켰고 빠르게 카메라와 조명이 그의 뒤를 따랐다.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웅장한 음악이 따라오며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잠깐의 틈 후 그곳으로 한 명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환영합니다! A 학자님!, 어서 오세요!"
옅은 미소를 보이며 나온 A의 모습을 본 관중들은 다소 놀랐다. 음침하고 뚱뚱하거나 안경 뒤로 헝클어진 머리를 보인 연구쟁이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는 깔끔하고 세련된 슈트에, 무엇보다 안경을 쓰지 않았다. A는 G의 옆에 서서 관객들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멋져요!"
갑작스러운 관객의 반응 -아마 아까 마른침을 삼킨 그 여성인 것 같다- 에 A는 깜짝 놀란 듯 소리 난 곳을 쳐다봤지만 이내 방송의 특징이겠지라는 듯 특유의 옅은 미소를 지었다. 둘의 상황을 보던 G가 끼어들었다.
"A씨의 모습에 모두 놀란 것 같습니다. 이런 귀한 분을 오래 세워두면 안 되겠죠?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토크쇼는 슬슬 본론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A는 차분하게 G의 질문에 답변했다. 그가 살아온 근황부터 어떻게 꿈을 분석하게 됐는지, 그리고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그의 논문 등 많은 질문이 이어졌다. 다소 과감한 질문도 있었으나 A는 괜찮다듯 빠르게 답변했고 가끔은 목이 탄다듯 앞의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그렇다면 이제 핵심적인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학자님. 꿈은 무엇인가요?"
관객들의 시선이 A에게 쏠렸다. 일부 학자들에겐 공개됐지만 방송을 통해, 무엇보다 알려지지 않은 존재 A에 의해 듣고 싶었던 꿈의 진실을 듣는 상황이 드디어 온 것이다. G는 평소답지 않게 다소 굳은 표정이었다. A는 소파에서 몸을 조금 일으켜 앞 쪽으로 기울였다. 그는 G를 쳐다보지 않고 말을 시작했다.
"꿈은.. 전 세계, 전 우주, 전 은하 속에 있는 또 다른 '나'의 행동입니다"
"아.."
관중들은 술렁거렸고 G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A는 그런 반응에 관심 없다는 말을 이어나갔다. G는 카메라 뒤쪽의 작가를 향해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좀 당황스러운데..라는 듯 말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평행세계, 즉 나와 같지만 나와 다른 곳, 다른 시간에 사는 또 다른 나의 이야기가 어떤 계기로 전달돼 꿈으로 재현되는 것이죠."
"(꿀꺽) 하.. 하하 학자님의 이야기가 다소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아닌 내가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뜻인가요?"
G는 A의 이야기에 무심결에 반박하듯 질문했다. 그제야 A는 G의 얼굴을 쳐다봤다. A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고 말을 이어나갔다. 관객들의 술렁임은 이내 잦아들었다.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저 또한 이런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으니깐요. 꿈은 오랜 시간 두뇌의 망상, 수면 중에 경험하는 일련의 영상, 소리, 생각, 감정을 뜻해 왔습니다. 하지만 꿈의 시작이나 갑작스러운 꿈의 변화, 사라짐에 대해선 증명할 수 없었죠"
"잠깐만요 학자님. 그렇다면 꿈속에서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 같은 죽음을 당하는 것이 무의식의 두뇌 활동이 아닌, 어딘가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겪는 상황이라는 건가요?"
G는 다소 당황, 흥분한 듯 질문을 냈다. 그는 어느새 작가들이 들고 있던 큰 스케치북 내 대사를 보지 않고 있었다. 작가들은 빨리 이곳을 보란 듯 스케치북은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 상황에 비해 방송용 카메라는 차분하게 A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G씨는 최근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혹시 꿈에서 힘든 모습, 상황을 본 적이 있나요?"
A의 답변 대신 나온 질문에 G의 눈빛이 흔들렸다. A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카메라 방향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아마 증거가 없다면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랬죠. 저는 오랜 시간 꿈을 추적하고 연구하면서 하나의 가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꿈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평상시 볼 수 없던 공간, 시간 등의 모습이 잔상처럼 남을까. 그리고 왜 깨어나면 신기루처럼 꿈은 사라지는 것일까 말입니다."
평소 베테랑 방송인이었던 그는 방송 진행 중에는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4시간 동안 진행됐던 연말 시상식에서도 그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물을 마시지 않고 버텨냈다. 그런 모습에 일부 PD는 '있는 척한다'는 식으로 뒷말을 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그를 뛰어난 방송인으로 기억했다.
"자.. 잠시만요 물 한 모금 하겠습니다"
A는 말을 멈추고 G를 쳐다봤다. 눈빛은 어서 물을 마셔요라는 듯 친절함이 보였다. G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고 아직 따지 않은 생수병을 잡아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뚜껑을 따고 한 모금을 들이켰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물은 미지근했으나 G의 입장에선 시원한 탄산음료처럼 개운한 느낌을 줬다.
"후하.. 죄송합니다. A씨. 계속 말씀하시죠."
"네. 그래서 오늘 방송에서는 처음으로 아무 곳에서 공개하지 않은 꿈에 대한 진실을 직접 공개하려고 합니다"
카메라의 움직임을 잡던 PD가 다소 당황한 듯 옆의 작가들을 쳐다봤다. AD를 비롯해 중앙조정실의 직원들도 모두 당황한 듯 PD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거 대본에 없는 내용 아니야?"
"네. 없는 내용이에요. 지금은 꿈에 대한 A 학자의 논문 일부가 공개되어야 하는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A가 소파에서 일어나 아까 자신이 나온 곳을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그의 움직임에 G도 따라 벌떡 일어났다.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쓴 작가는 G가 볼 수 있도록 높이 들었다. 그곳에는 '그냥 A가 하자는 데로 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그.. 그렇다면 A 학자님! 진실의 증거를 직접 공개해주시죠!"
"나오세요"
카메라맨은 자기도 모르게 게스트가 나왔던 곳으로 카메라를 향했다. PD는 2번 카메라로 화면을 전환했고 그곳에는 아까와 다르게 웅장한 음악도, 조명도 비추지 않았다. 몇 초 간의 정적이 흘렀다.
"어어엇!"
A가 씨익 웃었다. 아까와 다른 옅은 미소가 아닌 이가 살짝 보일 정도로 크게 웃었다. -아마 그의 웃음의 수준을 생각하면 정말 크게 웃은 것 같았다- G는 너무 놀라 게스트가 나오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놀라서 내는 작은 신음 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건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소개드리겠습니다. 저의 평행세계 속 또 다른 인물 A입니다"
눈치 빠른 작가가 관객들을 향해 몸을 돌려 박수 치라는 듯 입모양을 내비쳤다. 정신이 든 관객 한 명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고 순식간에 그곳에 있던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작가는 다시 몸을 돌려 무대를 바라봤다.
"똑.. 똑같이 생겼네요? 혹시 쌍둥이 같네요.. 실례지만 성함을 말씀해주세요"
서 있던 A는 걸어와 자신의 옆에 선 A에게 괜찮다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카메라, 관객, 그리고 G를 바라보듯 두리번거린 새롭게 등장한 A는 손을 가볍게 든 후 말했다.
"번역기가 서툽니다. 난 GDB-18854 행성에서 온 A입니다"
그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목소리는 A였으나 그의 언어는 한 번도 이 도시, 아니 세계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의 가슴 주변에서 나오는 어떤 기계를 통해 나오는 무심한 듯한 말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흘러나올 뿐이었다.
"A씨.. 이 분은 누구 신가요?"
G는 힘겹게 말을 떼었다. 아마 오랜 방송 경험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스케치북은 바닥에 떨어져 있고 카메라는 두 명의 A를 크게 잡고 있었다. 너무나도 닮은 모습. 아마 쌍둥이보다도 더 닮은 모습이었다. 다만 새로 온 A가 조금 더 긴장한 모습이었 뿐, 다른 건 전부 같았다.
"저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지구가 아닌 다른 곳, 저는 이렇게 부르는 행성 '낙원'에서 온 A입니다"
"그렇다면.. 저분도 학자인가요?"
새롭게 온 A는 G의 말을 경청하려는 듯 그쪽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G는 그런 A의 모습에 살짝 움츠린 듯 몸을 움직였다. 학자 A는 아까처럼 가벼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는 학자가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그는 살인자입니다"
"!"
장내는 순간 술렁거렸다. G를 비롯한 모든 사람, 그리고 방송을 찍고 있는 많은 스태프들조차 -그 무수한 사건을 본 PD 조차- 놀란 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온 A는 번역이 끝난 이야기를 들은 듯 아까와 달리 킥킥 천박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이다. 학자 A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몇 년 전 저는 꿈을 꿨습니다. 무자비하게 어떤 남자를 살해하는 꿈이었죠. 얼마나 생생했는지 깨어나자마자 샤워실로 뛰어가 구토를 했습니다. 그렇게 생생하게 한 사람의 생명이 꺼지는 걸 처음 봤기 때문이죠."
학자 A는 그때가 생각난 듯 목을 손으로 가볍게 훔쳤다. 그 후 다시 말을 이어나갔고 킥킥거리던 새로운 A는 귀찮다듯 소파에 털썩 앉았다. G의 시선은 앉아 있는 새로운 A로 향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꾼 꿈에서 말을 걸어오더군요. 살인마 A였습니다. 뭐라고 한지 처음엔 몰랐어요. 저도 당황했으니깐요. 그리고 그냥 꿈이잖아요. 그래서 연구소 주소를 불러줬습니다. 그게 다였어요. 몇 달이 지날 때까지 전 이상한 꿈만 꿨습니다. 어딘가에 갇혀 있고 움직일 수 없는 그런 느낌.. 하지만 뭔가 괜찮다는 안심이 들었죠"
"뉴스 속보입니다. 아주 작은 운석이 경기 외곽 쪽에 떨어져 경찰 및 소방관이 긴급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자세한 건 현장에 연결돼 있는 J기자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J기자"
"네 J기자입니다. 운석이 떨어진 곳은 경기의 한 마을인 000의 00 산입니다. 운석이 목격됐다는 신고 전화가 나온 후 약 10분 만에 추락한 것입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작은 운석은 '펑!' 폭탄 터진 듯한 소리를 내 주민들을 뛰쳐나오게 했지만 다행히 화재도 진압돼 그냥 일종의 경사나, 어르신들의 구경거리처럼 지나갔다. 수사본부는 그곳에 산산조각 난 파편을 분석하기 위해 그 일대를 출입하지 못하게 했으며, 몇 개의 뉴스가 나왔지만 이내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졌다.
"그가 타고 온 소형 탑승기에서 내린 그를 만난 건 두 달 전입니다. 아마 제가 안락하다고 느낀 건 아마 작은 소형 탑승기가 둥근 타원형의 관처럼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더군요. 생명 유지장치로 보이는 것부터 간단한 소품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무언가를 차던 A는 곧 나에게 말을 했죠. 도망가야 한다고"
학자 A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앉아 있던 A는 슬슬 시간이 됐다듯 자신의 이마를 검지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 번 쳤다. G는 그런 A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만졌다. 학자 A는 뒤돌아본 후 앉아 있던 A를 향해 말을 꺼냈다.
"이걸로 충분해?"
"-무뚝뚝한 말투- 아니.. 이제 막 시작했잖아. 아직 많이 부족해"
관객들을 비롯한 모두가 침묵했다. 평소 작가들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조종실 들어오는 걸 싫어했던 PD가 갑자기 휴대전화를 찾기 시작했다. 막내 작가에게 소리치듯 자신의 휴대전화를 가져오라고 시킨 그는 곧바로 경찰에 전화를 했다. 생방송은 갑작스럽게 다른 방송으로 대체됐고 10분 정도 흐르고 경찰들이 무대로 들어왔다.
프롤로그 <끝>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오랜 동안 생각해왔는데 브런치를 통해 조금씩 연재 해보려고 합니다. 많이 부족한 점 먼저 사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