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로라 보고 온 남자야
마지막 날 오로라 스톰으로 여행은 끝이 났다. 안타깝게도(!) ‘옐로나이프-애드먼튼-밴쿠버-인천’으로 이어지는 3편의 비행기는 모두 연착 한 번 없이 순조롭게 운항했다. 캐나다 국내선 2편 가운데 하나라도 연착했더라면 밴쿠버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었을 텐데 예정에도 없던 추억은 생기지 않았다. 밴쿠버 여행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캐나다에서 도시는 무려 4군데를 들렀다. 밴쿠버, 캘거리, 애드먼튼, 옐로나이프. 언뜻 보면 캐나다를 알차게 여행하고 온 것 같지만 공항 밖으로 나간 도시는 옐로나이프뿐이니 캐나다를 여행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닌 셈이 되었다. 더구나 옐로나이프는 순전히 오로라만을 위해 간 것이니 현지인을 만나거나 그들의 삶을 제대로 체험하지도 못했다. 춥다 춥다 하면서 사진도 많이 찍지 못했는데 ‘내 이러다 후회하고 말지’ 했던 대로 부족한 사진량에 아쉬워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여행의 본래 목적이었던 오로라를 보고 나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애초에 그런 기대는 무리였을까. 자연현상 하나 관찰했다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가. ‘나 에펠탑 보고 온 남자야’라고 뽐내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복기하고 의미의 지점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7박 9일의 오로라 여행에서 돌아왔는데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일상으로 돌아왔더니 다시 일상은 시작되고 있었다. 나라꼴은 여전히 엉망이었고 수습책은 지지부진해 보였다. 나는 하루 쉬고 출근을 해야 했고 독감에 걸린 아이들을 건사하는 것으로 아내의 일과도 반복되었다. 회사 포털 문서함에도 눈길을 끌 만한 문서를 찾기는 어려웠다. 회사 이메일도 스팸급에 해당하는 것들뿐이었다. 9일의 공백은 무색했다. 하지만 그 사이 팀원들은 일을 수습하느라 고생깨나 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든 일을 척척 해서 내 빈자리는 별로 티가 나지 않았다. 월요일 출근길도 여느 월요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저 토요일, 일요일 주말 이틀 쉬고 나오는 기분, 딱 그 정도였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다만 나는 오로라를 본 사람답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주입하는 중이다. 물론 오로라를 보고 온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누가 알려준 적이 없다. 답도 없을 것이지만 그저 조금 더 관대하고 여유 있게 살아가야 한다고 혼자서 어림 짐작할 뿐. 오로라를 본다는 것은 이중적이다. 진귀한 장면을 내가 직접 보고 남들은 잘 알지 못하는 그 경험을 나만 간직하겠다는 독점적 욕구와 오로라를 통해서 인간 존재의 보잘것없음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는 것. 물론 깨달음이라는 것도 평소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해야 가능하겠지만. 평소 정신의 세계보다 물질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귀한 소장품 목록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말인데 어쩌면 오로라도 욕망의 대상은 아니었을지. 가질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 경험만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갖는' 그런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 이유 뒤에는 우리의 사소하고 소시민적인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뒤늦게 고백해 본다. 9일간의 오로라 여행이 내 인생을 극적으로 반전시키지 않았다. 오로라가 무엇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그런 것이었다.
오로라라는 자연현상은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되고 실체로도 존재하는 것이니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이 대상이 되었다. 나의 그 욕망을 상업적으로 잘 승화시켜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곳이 바로 옐로나이프의 오로라빌리지이다. 항상 하늘 위에 떠 있고 어느 장소에서나 볼 수 있고 누구의 것도 아닌 오로라를 보기 위해 굳이 북위 62.5도, 경도 114.2도의 위치에 있는 그곳으로 사람들은 굳이 찾아간다. 그곳의 잘 마련된 시스템이 아니라면 오로라를 편리하게 안정적으로 관측하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전혀 입을 필요가 없어서 사기에 아까운 고가의 옷과 장비를 빌려주고 따뜻한 공간을 제공한다. 그 대가로 돈을 받고, 그 가격은 본인이 직접 준비하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서로의 이해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점 어딘가에서 가격이 결정되었다. 하늘에서는 오로라가 무심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지만 그 아래 인간세계에서는 오로라를 둘러싼 비즈니스가 한창이고 캐나다 달러는 활발하게 오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로라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께 드리는 팁 : 나는 가기 전부터 너무 많은 자료를 보고 공부했다. 우연히 뜻하지 않게 만나면 무지개도 놀랍고 소중한 것처럼 과도한 준비가 독이 될 수도 있다. 어디 한 번 나와봐라 하는 식으로 벼르고 있으면 그 감동이 약하다. 오로라도 옐로나이프도 캐나다에 대해서도 그다지 많인 공부를 하지 않았던 아내가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고 볼 때 그 놀라움과 감동은 배가된다. 오로라를 두 번째로 보게 된 감독님 한 분은 촬영을 위해 캐나다에 갔다가 이동 중에 우연히 오로라 스톰을 본 순간을 최고로 꼽는다. 오로라 보러 갈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공부하지 말고 그냥 비행기표만 끊어서 가라고 하고 싶다. 과학적인 원리 같은 것 공부하지 말고-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사전에 다큐멘터리도 보지 말고 사진도 보지 않기를 권한다. 눈높이가 높아지면 제법 크고 아름다운 오로라도 우습게 보이기 마련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만해지기 쉽다. 내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