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볼래? 사진으로 볼래?
오로라는 낮에도 떠 있지만, 늘 떠 있을 별을 낮에는 관측할 수 없는 것처럼 밤에만 볼 수 있다. 여기에 눈과 카메라 사이의 고민이 있다. 우리의 눈은 색을 인식하는 세포보다 명암을 인식하는 세포가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어두울 때는 색을 잘 가려내지 못한다. 카메라는 렌즈 화각이 아무리 넓어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제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눈으로 느끼는 오로라의 스케일을 쫓아갈 수 없고 제 아무리 나쁜 카메라도 눈보다는 오로라의 초록색을 잘 잡아낸다.
사실 오로라를 육안으로 보면 그냥 밤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구름보다 조금 더 밝은 흰색이다. 형광색 느낌이 조금 더해져 있어서 구름과 분명히 구별할 수는 있다. 그런데 아무리 흐릿한 오로라라도 장노출로 사진에 담으면 선명한 초록색이 된다. 사진을 보고서야 오로라가 초록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진의 인상적인 색감 때문에 육안으로 흰색이라고 인식하고서도 나중에는 초록색 오로라를 맨눈으로 봤다고 믿게 된다. 오로라가 강해지면 분홍색의 띠가 가장자리에 나타나는데 이 분홍색은 오히려 육안으로 눈에 잘 띈다. 물론 아주 강력한 스톰이 몰려와 하늘 전체가 오로라로 물들 때는 초록색이 드러나고 분홍색도 함께 보인다. 오로라가 하늘을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세차게 움직이는 오로라의 색과 움직임은 그 어떤 좋은 눈으로도 그 어떤 최신 카메라와 렌즈로도 제대로 담지 못한다. 마치 자연의 법칙이 그런 것인 양. 오로라는 멈춰 있지 않고 계속 변한다. 지나가는 것은 그저 지나가는 대로 받아들이라는 자연의 명령이다. 사람의 눈으로도 카메라의 눈으로 정확히 담을 수 없는 그 색은 말로는 당연히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학습효과-오로라 여행 간다고 하니 관련 자료며 영상을 얼마나 많이 봤겠는가-와 보상심리-오로라를 보기 위해 돈과 시간은 또 얼마나 많이 투자했겠는가-로 부푼 기대를 안고 갔다가 ‘에이 뭐 이래’하고 실망하기가 쉽다. 스톰을 만날 확률도 높지 않지만 스톰을 만나더라도 사진보다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곱씹어 보다가 다시 신기해지는 그런 존재가 바로 오로라였다. 그래서 만족할 만큼 충분히 봤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오로라 사진을 찍는 작가이거나 오로라 전문 여행사 직원(부럽다 이분들)이 아니고서는 오로라 여행은 일생에 한 번일 가능성이 높다. 나도 아마 그럴 것이다. 다시 오기 힘들 곳이라는 생각에 사진이라도 남기자는 생각은 당연하다. 그런데, 오로라 사진을 찍는 것은 찰나와의 싸움이다. 단단히 준비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어렵다. 준비를 해도 놓치기 일쑤다. 깜깜한 밤이고 영하 30도가 넘는다. 카메라는 다루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경험해 본 적도, 예측도 어렵다. 그것을 거스르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 만수무강에 이롭다. 오로라의 신이 너에게 허락한 사진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후회하고 안타까워해야 소용없다. 일주일 밤을 있는 동안 6일 동안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다행히 오로라도 스톰으로 터지지 않았다. 마지막 날 스톰이 터졌을 때 메인 카메라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나자빠졌다.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주머니에 들어 있던 작은 똑딱이 카메라로 겨우 몇 장을 찍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좋은 사진이 나왔다. 몇 장이라도 건져서 천만다행이라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못 견딘다. 다시 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시 간다고 하더라도 인생사진을 찍는다는 보장이 없다.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오로라 앞에 선 인간의 숙명이다. 그날 영하 40도의 강추위에서 프로 오로라 사진가도 원하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사진을 잘 찍어야 한다면 삼각대와 릴리즈는 필수이다. 카메라는 당연히 수동모드를 지원해야 한다. 핸드폰으로 찍어도 나오긴 하지만 그야말로 기념사진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수동모드로 설정하고 릴리즈를 연결한다. 셔터속도는 7~15초 정도로 해서 몇 장 찍어 본 뒤에 그날 상황이나 연출 의도에 맞게 조정한다. 달이 떠 있는 경우 조금 더 짧게 가져가도 된다. ISO는 1600~6400 정도의 값에서 선택하면 된다. 화이트 밸런스는 사용자 정의로 하고 색온도는 4000~5000K 정도가 무난하다. 조금 더 파란 하늘을 원하면 3000K대 후반도 괜찮다. 초점은 MF로 놓고 무한대로 놓은 다음 조금 조절해서 멀리 있는 티피의 불빛 같은 것에 초점을 맞추면 됨. 하지만 이 모든 설정을 완벽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겨울철에 오로라를 찍을 때에는 배터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너무도 추운 날씨에 배터리 소모가 빛의 속도다. 서른 장 찍고 배터리가 다 닳아버린 적도 있었다. 카메라에 습기가 찰 수 있으니 밖으로 나왔던 카메라는 절대 티피로 들고 들어가서도 안 되며, 가방 넣은 채로 방으로 가져가서 다음 날 아침에 꺼내야 한다는 말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배터리 보온은 미처 챙기지 못했다. 오로라 사진가인 권오철 작가는 보온병을 개조해서 외장 배터리 케이스로 활용했다고 한다.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으니 적어도 배터리를 사진 찍을 때만 끼워놓고 카메라를 껐을 때는 따뜻한 겨드랑이에 품어주는 센스를 발휘해야 한다. 마지막날 그걸 깨달았으니 내 머리도 어지간하다 싶었다. 덩치 큰 카메라 A7M2는 배터리 소모에서도 덩치 값을 했다. 주인 잘못 만나 좋은 오로라 사진을 찍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똑딱이급이라 할 수 있는 RX100M3로 좋은 사진을 다 찍었던 것 같다. 세상 일만큼 사진 찍는 일도 알 수 없다. 오로라가 늘 터지는 것은 아니니 오로라가 쉬는 시간에는 별사진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 공기는 차고 하늘은 우주에 떠있는 듯 맑은데 별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걸 사진으로 담으면 이런 장관이 따로 없다. 거기다가 초록색 오로라를 배경으로 빛나는 별이라니. 스프러스와 자작나무가 어우러진 별밤의 풍경은 사진으로 볼 때 훨씬 더 멋있었다.
오로라가 제법 세게 터졌을 때 사진을 잘 찍지도 못하면서 애를 쓰다 뷰 파인더만 실컷 봤다. 사진과 실물 둘 다 가질 수 없으니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특히 스톰이 터질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실물을 선택하겠다. 사실 사진과 영상은 다른 훌륭한 작가들이 올려놓은 것들이 온라인상에 차고 넘친다. 그걸 보면 된다. 강처럼 흐르고 물결처럼 일렁이는 오로라는 그 움직임에 정해진 길이 없다. 예측할 수도 없다. 우리는 움직이는 그곳을 따라 조금 늦게 쫓아갈 뿐이다. 별똥별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못하는 것처럼. 카메라가 쫓아갈 정신은 더더욱 없다. 사진은 살아서 꿈틀대는 오로라의 스케일을 결코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내 눈을 믿어야 한다. 오로라가 알려준 영업기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