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ry starry night
7박 9일의 여행기간 동안 수백 장을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두 대나 들고 가서 고작 수백 장밖에 찍지 못했고 봐줄 만한 사진은 스무 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 아내와 내가 최고로 꼽는 사진엔 오로라가 주인공이 아니라 숲을 배경으로 한 별들이 주인공이다. 오로라만큼 우리 부부가 열광한 것은 옐로나이프의 겨울밤이었다.
서너 시부터 지기 시작한 해가 완전히 사라지면 어둡고 하얀 대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로라 빌리지로 향하는 버스는 헤드라이트 빛으로 길을 내며 달린다. 우주선처럼 도로를 유영한다. 지구 밖 우주에서 보는 하늘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뾰족한 삼각형의 스프러스 나무는 빠르게 줄지어 흘러간다. 숲 너머 하늘 가운데엔 손만 내밀면 금세 잡힐 듯한 달이 떠 있었고 김홍도의 소림명월도가 하늘에 걸려 있었다. 어디선가 소쩍새 소리가 들릴 것 같았고 마음의 귀에서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선율이 흘렀다.
오로라가 강하지 않은 날에도 흐린 빛의 오로라를 배경으로 떠 있는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통근버스(!)에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달이 지면 삼등성 별은 이등성이 되었고 이등성은 일등성이 되었다. 일등성은 금성보다 밝게 반짝였다. 북위 62도에서는 북극성이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뼘 정도 반경 안에 있는 별들은 뜨고 지지 않는다. 주변을 돌기만 할 뿐. 북극성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는 늘 함께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계절과 시간을 잘 맞춰야 볼 수 있다. 백조자리 몸통을 따라 흐르는 은하수는 길고 길었다. 주변의 별들이 밝아서 쉽게 눈에 띄는 여름철 대삼각형 견우성(알타이르), 직녀성(베가), 데네브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겨울철 대표 별자리 오리온은 남서쪽 하늘을 수문장처럼 늠름하게 지키고 서 있었다. 서너 개의 별만 볼 수 있었던 황소자리의 좀생이별 플레이아데스 성단에는 별이 몇 개나 모여 있는지 셀 수조차 없었다. 카메라의 도움을 조금 빌려서 화면으로 밤하늘을 보면 검은 빈틈이 거의 없다고 착각할 정도로 별 반 암흑 반이었다. 수시로 떨어지는 별똥별은 꼬리가 길어서 소원을 빌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일이 없었다. 별에 대한 지식은 밑천이 금방 드러났지만, 별을 보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
사방천지 지평 선 뿐인 곳에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는 느낌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Pale Blue Dot’이라는 책에 이렇게 말했다.
‘사방이 탁 트인 들판에 누워 있으면 하늘이 둘러싼다. 나는 곧 그 엄청난 규모에 압도당하고 만다. 하늘은 넓고 깊어 나의 존재는 더없이 보잘것 없어진다. 하지만 하늘이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나는 미미하지만 하늘의 일부가 된다. 하긴 감당할 수 없는 하늘의 거대함 앞에서 모든 것이 미미할 뿐이다. 별과 행성 그리고 그것들의 운행에 집중하다 보면, 우주를 향한 우리의 열망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결국엔 우리를 작은 존재로 만들고 겸손케 하는 거대한 규모의 정교하고 정확하며 지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하늘을 조금 더 제대로 보기 위해서 하얀 눈 위에 그대로 누웠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지평선까지 뻗은 넓은 하늘은 한눈에 담기에 벅찼고, 암흑뿐인 그곳에서 나는 우주의 일부가 되었다. 나의 존재는 우주 먼지에 불과했지만 하늘은 그런 나를 넉넉하게 품어 주었다. 모든 별이 일등성처럼 빛나고 하늘 전체가 은하수 같은 그곳에서 별빛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나는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우주는 정말 저절로 생겨났을까? 신의 존재를 믿은 적은 없지만 우주를 만든 어떤 존재가 있다면 만나보고 싶어졌다.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 혹시라도 커다란 손을 내밀지 않을까 싶어 손을 뻗어 보았다. 그 너머에서 오로라가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