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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un 06. 2023

당일치기 혼자 의성여행(4)

고운사를 갔더니 찜닭을 먹게 되었네

이미 고운사로 들어가는 마지막 버스는 놓친 터라 대리리에서 의성읍으로 버스를 타고 들어오면서 한 생각은 의성읍내에 경치 좋고 그럴 싸한(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카페가 있으면 그곳에서 여행기나 정리하다가 대구나 구미를 거쳐 서울로 복귀하려는 것이었다. 버스가 의성의 중심부인 터미날(대도시는 터미날이 외곽에 있지만 소도시는 터미날이 중심이다.)에 가까워져도 탑리리에서 본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주말인데도 사람 하나 없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카페라고는 프랜차이즈만 눈에 띄었다. 


계획에 있던 고운사를 가야했다. 일단 터미날에서 내렸다. 고운사까지는 아니고 고운사가 있는 단촌면까지 가는 버스가 있더라. 목사님과 열심히 통화중인 버스 기사님이 문을 열어주었다. 

“기사님, 단촌까지 가서 고운사 가는 택시 탈 수 있을까요?”

“고운사 갑니꺼? 단촌에서는 택시가 없을 낀데요.”

“그럼 택시를 타고 가야겠네요. 알겠습니다.” 하면서 내려리려는데,

“손님 잠시만예.” 그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덕아, 니 지금 고운사 갈 수 있나. 손님이 고운사 간다 카시는데.”

“손님, 지금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나올까요?”
“덕아, 얼마나 나올라나?”
“한 25,000원 정도 나온다 카네예. 불러드릴까예?”

“덕아, 니 지금 이리 온나. 내 보이제? 그래 건너편에 버스 앞으로 오면 된다.”


버스기사님과 고운사행을 상담한 지 불과 5분 만에 택시가 바로 앞에 왔다. 이 신기하고도 정겨운 풍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지. 고운사까지는 안 가는 버스 기사는 동네 후배 택시 기사가 건너편에 대기하고 있는 걸 발견하고 곧장 그를 섭외해서 손님을 연결해 주는 이 아름다운 상부상조형 원스탑 서비스에 경탄과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와 택시의 긴밀한 공조 덕에 고운사에는 불과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고 요금은 27,000원이 나왔다. 뜻밖의 지출이었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의 주인공이 된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고운사는 오래 전에 의성 답사여행을 했을 때도 찾은 곳이다. 고운사도 여느 이름 난 절처럼 천년고찰이다. 굳이 다시 찾아 온 이유는 가운루 때문이었다. 고운사에는 주변으로는 개울이 두 개가 흐르는데 그 두 개울에 만나는 지점 위에 너럭바위를 딛고 서 있는 건물이 바로 가운루이다. 개울의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이용해서 짓다 보니 건물은 정교하기보다는 좀 느슨하게 허술한 느낌인데 나는 그 점이 좋았다. 더구나 절이 과도하게 개발의 수혜(!)를 입지 않은 점도 반가웠지만 절의 하일라이트나 마찬가지인 가운루의 관리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점은 아쉽기도 했다. 버스를 대절해서 부산에서 온 형형색색 등산복 패션의 관람객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다음(그들이 집으로 간 건 아니었고 나중에 보니 버스주차장에서 테이블을 펴놓고 작은 잔치를 하고 계셨다.) 경내는 조용해졌고 나는 카페 우화루에 앉았다. 가운루가 한 눈에 보이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한 잔 한다. 초봄의 여린 잎이 막 솟아 오르는 산사에서 찰나의 행복을 느낀다. 그럼 된 거지. 


고운사는 의성과 안동의 중간이라 의성에서도 안동에서도 버스가 온다. 5시 20분에 출발한다는 의성버스를 타기 위해 조금 서둘렀더니 안동 가는 410번 버스가 와 있더라. 5시 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안동 시내에 40분 정도에 도착. 의성보다는 안동에서 서울 가는 일이 수월하니 차라리 잘 됐다 싶어서 그 버스를 탔다. 저녁은 먹어야겠기에 버스 노선과 안동찜닭거리를 찾아보니 대략 겹쳤다. 도착해서 먹는 데 30분이면 되니까 택시를 타면 안동역에서 출발하는 저녁 7시 KTX를 탈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안산의 느린 시골버스와 달리 안동 410번 기사님은 버스로 카레이싱을 하듯 달렸다. 일직과 안동 사이의 빼어난 절경을 초스피드, 속성으로 관람하고 안동 시내에 도착했다. 몇 분 걸어 안동찜닭 골목이라는 구시장으로 들어서는데 입구에서부터 간장 졸인 냄새가 진동한다. 곧게 뻗은 시장 점포의 반 이상은, 반 이상이 뭐야, 찜닭을 파는 식당인듯 했다. 사전 정보 하나 없이 갔기 때문에 이럴 때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안동 출신 친구에게 뜬금없이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없고. (출향인사는 현지 사정을 잘 모를 때가 많다.) 이 정도 대규모로 모여 있는 곳이면 가격이나 맛은 상향 평준화되었다고 봐야 한다. 원래 다니던 집이 아니라면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바로 입구에 있는 식당은 이유없이 가기가 꺼려지고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 여유있게, 그렇다 한들 최선의 선택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 둘러 볼 상황이 아니라 호객행위(호객이라고만 해도 될 것에 굳이 행위를 붙임으로서 이 행동이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그대로 드러내는)도 없었는데 서너 번째 있는 가게로 주저없이 좌회전했다. 


찜닭 대자는 48,000원, 소자는 32,000원. 선택지가 소자밖에 없다 싶어 체념하던 차에 친절한 점원이 혼자 오셨으니 반마리가 되는지 알아보겠다 한다. 금세 돌아온 점원은 소자가 32,000원임에도 불구하고 반마리는 16,000원이 아니라 22,000원인데 괜찮겠냐고 묻는다. 그래 그대가 생각해도 20,000원 정도가 합리적이렸다. 돈 더 내고 남기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 흔쾌히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메뉴판을 탐독해 보니 22,000원의 의문이 풀렸다. 반 마리도 가능한지를 물어본다는 뜻은 거의 안 판다는 뜻이고, 한참 뒤에야 승낙의 의사를 들고 온 이유는 생각해 보니 주인장도 도대체 이 반마리를 얼마를 받아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포스에 찍을 수 있는 메뉴 중에서 지금은 판매를 하지 않은 후라이드치킨 값을 받으면 된다는 결론을 내리느라 그랬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같지 않은 고민을 하며 새콤한 무를 아삭아삭 씹다 보니 어느새 반 마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세숫대야 사이즈 접시에 찜닭, 그것도 찜닭의 대명사, 안동의 찜닭거리 식당에서 나온 안동찜닭이 등장했다. 닭 반마리(믿어야지 그렇다니), 감자, 당근, 대파, 양파, 마늘, 홍고추, 느타리버섯과 당면이 듬뿍 든 안동찜닭은 훌륭했다. 달달하고 감칠맛이 좋았고 의외로 깔끔했다. 밥을 비벼 먹고 싶었으나 이미 양이 많아 참았다. 다른 데는 안 가봤지만 정말 탁월하다고 할 몇 집을 제외하고는 대개는 다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전 빠른 식당에서 그 정도로 신선한 재료가 들어갔는데 맛이 없으면 안 되니까. 


애시당초 계획은 의성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로 넘어가서 KTX 타고 서울로 복귀하는 것이었는데 뜻밖에 안동버스를 만나서(여행 계획을 짤 때 슬쩍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안동찜닭도 먹고 결국 집엔 더 싸고 빨리 갈 수 있게 되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낙담할 때도 있지만 때때로 계획하지 않은 우연한 사건으로 새롭고 이로운 경험도 할 수 있는 것, 그게 여행이지. 19시에 안동에서 출발해 청량리로 가는 KTX 이음 열차는 일반석과 우등석의 가격 차이가 5천원 정도밖에 나지 않아서 쾌적한 우등석을 선택했다. 소도시 여행 치고는 택시도 많이 타고 돈도 제법 썼지만 3만 보나 걷고 돌아가는 길에 그 정도 사치(!)는 부려볼 만하지. 


의성에서 시작해서 안동에서 끝난 의성여행은 뜻대로 되지 않은 것들이 서로 좋고 나쁨을 주고 받은 괜찮은 여행이었다. 


여정

0525 집에서 출발

0604 신도림

0650 청량리

1007 탑리

1130 산운마을

1210 탑리리 5층석탑

1300 조문국박물관

1440 조문국 고분군 버스

1510 의성에서 고운사

1530 고운사

1705 고운사 안동

1740 안동 신시장

1750 안동찜닭

1900 안동역 

2105 청량리역

2230 집 도착


비용

기차 18,000

택시 6,000

커피 9,000

버스 1,200

과자 1,500

택시 27,000

우화루카페 9,000

버스 1,400

안동찜닭 반마리 22,000

택시 7,300

KTX 30,100

지하철 2,900

합계 135,400(돈 많이 썼네, 교통비가 전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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