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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ul 17. 2024

당일치기 혼자 익산여행(1)

익산과 이리 사이

오랜만에 지방 소도시 여행이다. 올해는 연초에 회사에서 신분과 부서가 달라지는 바람에 여행을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 일에 전력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어떤 일을 할 때는 나름의 뚜렷한 명분이나 결심이 필요하다. 지방의 작은 도시를 다니는 건 나 좋자고 하는 일이지만 일종의 개인 프로젝트처럼 자리매김을 해놓다 보니 숙제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서 오늘 날짜와 마지막으로 다녀온 때의 사이가 벌어질수록 마음의 짐도 커진다.


가보겠다고 적어 둔 도시는 여럿인데 그중에서 임실이 첫 번째 후보 도시였다. 10시간이 채 안 되는 현지 체류 시간을 감안하면 언제나 여행 일정은 효율적이고 압축적으로 짜야한다. 시간에 쫓기듯 다니는 여행은 여유를 누리고 싶다는 여행의 본질에는 맞지 않지만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방문지를 물색하고 장소와 장소를 잇는 동선을 자다 보면 그 지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임실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군수님이 밝게 웃으며 1천만 관광시대를 열어 가겠다고 야심차게 선언하고 있다. 1천만이라. 산술적으로 국민의 20%가 임실을 다녀가게 하겠다는 뜻인데 365일로 나누면 매일 임실 인구보다 많은 2만 하고도 7천 3백 9십 7명이 임실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임실 인구는 2024년 4월 현재 25,815명이다.) 임실 주민이 관광객 한 명씩 마크를 해도 모자랄 인원을 불러 모으겠다는 계획 때문에 군수님이 당선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임실 하면 떠오르는 건 임실 치즈와 옥정호 정도인 데다가 군수님의 염원과 다르게 임실의 문화관광 홈페이지는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아서 이곳을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들게 하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가게 될 것이지만) 군민들끼리 자급하고 자족하며 행복하게 살기에는 부족한 현실에서 관광업이라도 흥하게 하고 싶은 지방의 모든 자치단체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가든 안 가든 임실관광 1천만 시대와 군민들의 안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임실을 잠시 접어두고 임실서 멀지 않고 초성이 ㅇㅅ으로 같은 익산을 쳐다보게 되었다. 익산은 아주 오래전 문화재(지금은 국가유산으로 부른다.) 답사 여행을 많이 다닐 때 김제와 함께 찾았던 곳이라 조금은 익숙한 곳이다. 공주, 부여와 함께 백제 시대의 찬란한 유적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관광 자원에서만큼은 어느 도시에 뒤지지 않을 도시라 그런지 블로그나 카페 같은 곳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관광 홈페이지도 잘 구성되어 있다. 동선을 짤 때 조금 게으름을 피워도 될 만큼 서울을 오가는 교통도 편리한 편이다. 그리하여 임실을 뒤로하고 익산으로 행선지가 정해졌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했다.


이제는 익산이라는 이름이 당연히 더 친숙하지만 최근까지도 나는 이리라는 이름이 먼저 떠올랐다. 옛날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한데, 이리시와 익산군이 1995년에 도농 통합 정책에 따라 하나가 되면서 이리역 폭발사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이리(구경도 못해 본 이리한테는 미안할 따름이다.)라는 동물 이름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이리를 버리고 익산을 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나 저러나 고향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늘 안타깝고 그리운 마음이 있다. 내 고향은 김천시와 금릉군을 통합하면서 익산과 달리 군의 이름을 버렸는데, 금릉군 출신인 나는 김천에서도 찾기 어려운 금릉이라는 상호를 다른 데서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익산의 대표 관광지인 미륵사지를 가장 먼저 가려고 지도에서 검색을 했더니 무궁화호를 타면 익산역까지 가지 않고 함열역이라는 곳에 내려도 된다고 나온다. 함열은 익산시에 있는 읍의 이름인데 처음 들어보았다. 거리상으로야 익산역보다는 함열역이 더 유리한데 문제는 지방 도시에서는 대중교통편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점이다. 네이버 지도에 물어봐도 카카오맵한테 수소문해도 답은 언제나 엉망이다.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의 대중교통편을 검색하면 보기엔 그럴싸한 답을 내놓긴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면 순 엉터리인 경우가 많다. 기다려도 안 온다. 번호도 틀린다. 다른 데서 몇 번 속고(!)나서는 지방도시에서의 여행 출발은 결국 그 도시의 기차역이나 터미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함열의 유혹(?)을 뿌리치고 영등포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익산으로 향했다. 덤으로 함열이라는 지명을 알게 되었으니 나중에 거기 출신이라는 사람을 만나면 알은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함열 출신이라고? 거기 무궁화호 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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