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궁 Jul 18. 2024

당일치기 혼자 익산여행(2)

알고 보면 윤똑똑이

셀프 우여곡절 끝에 익산역에 내렸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역 치고는 규모가 꽤 커서 왜 그런가 했더니 익산은 호남선(대전-목포), 전라선(익산-여수엑스포), 장항선(천안-익산)이 모두 지나거나 기점이 되는 철도교통의 요지 중의 요지이다. 코레일 전북본부도 익산역에 있다. 익산 가서는 함부로 철도 교통에 대해 자랑할 일이 아니다.


네이버도 카카오도 구글도 잘 모르는 걸 관광안내소에 계신 분들은 정확히 안다. 개찰구를(개찰이라는 말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나오는 길에 표 검사를 하지 않는 요즘엔 생경한 표현이다.) 빠져나오자마자 관광안내소가 눈에 들어왔다. 관광 자원이 많은 도시답게 역 앞마당이 아니라 역사 안에 있다. 반가운 “i”. 미륵사지 가는 버스 편을 물었더니 “익산역→관광지 가는 시내버스“라고 적힌 코팅된 종이를 내미신다. 익산역에서 함열, 금마, 여산으로 가는 버스며, 콜버스, 관광택시 번호를 비롯해 익산역에서 동부 지역의 주요 관광지로 가는 버스 편의 번호와 타는 곳, 소요 시간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미륵, 보석, 왕궁, 금마, 심곡사, 쌍릉, 가람이병기생가, 여산숲정이, 천호성지, 사자암. 이것만 봐도 익산여행 완전정복 수준이다. 귀하디 귀한 자료다 싶어 얼른 사진을 찍어 두었다. 나는 버스 편을 물었을 뿐인데, 익산역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가 아침 9시 50분부터 오후 4시 20분까지 총 7편이나 있다며 그 버스를 꼭 타라고 한다. 그 말에는 이렇게 좋은 게 있는데 왜 굳이 시간도 더 걸리고 돌아서 가는 시내버스를 타려고 하느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나한테는 가끔 말도 안 되는 고집 같은 게 있는데 소도시까지 와서 시티투어 버스를 타는 건 뭔가 지는 느낌이라 그래도 시내버스를 타겠다고 우겼고(!) 길 건너 계화림 앞에서 41번이나 41-1번을 타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역 앞에 시에서 만든 무슨 숲이 있나 했더니 이름에서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계화림은 하림에서 만든 닭요리 식당이었다. 누구나 알 만한 익산의 명물인가 보다. 닭으로 전국을 호령하는 하림의 김홍국 회장이 익산 출신인데 나고 자란 고향 익산에 음으로 양으로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경매로 낙찰받은 나폴레옹의 진품 모자 전시회를 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토요일 오전 10시께 운행하는 버스는 한산했다. 여유로웠다. 시내를 벗어나자 야트막한 구릉으로 이루어진 시골마을 곳곳을 누빈다. 토질 좋아 보이는 붉은 황토밭엔 고구마 농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버스 차장을 살짝 열어 들어오는 바람에 묻은 시골냄새를 맡아본다. 좋네.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을 태우고 내려준 버스는 나도 미륵사지 앞에 데려다주었다.


익산 출신 친구가 소개해 준 식당에서 밥부터 먹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미륵산순두부는 미륵사지 바로 옆에 있다. 위치도 좋고 이 동네서 이름난 맛집답게 주차장엔 차들이 꽉 차 있고 널찍한 식당 안은 손님들의 왁자한 소리와 점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가득했다. 장례식장에서 자주 보던 비닐테이블보가 여러 장 겹쳐 깔려 있어 이 식당의 위용을 짐작케 했다. 테이블 회전이 엄청 잘 되는 식당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셀프바에는 “제발 드실 만큼만 가져가세요! 환경부담금 5,000원 부과합니다.” (진짜???), 수저통 위에는 “물, 추가반찬은 셀프입니다. 찌개 짜면 육수 요청해 주세요. 인절미 리필은 불가합니다. 외부음식 반입금지입니다.”라는 주의사항이 잔뜩 적혀 있었는데 뭔가 위압적인 느낌이었다. 그렇잖아도  혼자 간 나는 더 마음이 더 쫄 린 채로 소심하게 한방순두부찌개를 주문했다. 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여긴 뭔가 다른가 싶어 나도 모르게 반찬도 직접 갖다 먹는 건가 싶어 셀프바에 가서 반찬을 갖다 놓았다. (성격 급한 손님이 배고파서 빨리 반찬 갖다 먹은 걸로 하자.) 그런데 여느 식당과 다르지 않게 반찬과 순두부찌개가 한 번에 나왔다. 당황한(이게 당황할 일인가?) 나는 같은 반찬을 한 그릇에 옮겨 담고 티 나지 않게 슬며시 빈 그릇을 포개놓았다. 한방순두부찌개 맛은 괜찮았고, 셀프바에서는 안 되고 직접 요청해야 준다는 위대한(!) 겉절이도 더 시켜 먹었다. 나이 50 다 되면 뭐 하나. 때때로 이렇게 하찮고 지질하고 소심하기까지 한데. 이런 사람을 전문적으로 일컬어 윤똑똑이라고 한다.


순두부보다는 낯뜨거움으로 배를 채운 윤똑똑이는 이제 미륵사지로 간다.

작가의 이전글 당일치기 혼자 익산여행(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