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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ul 19. 2024

당일치기 혼자 익산여행(3)

20년 만의 해후

미륵사지와는 구면이다. 장소한테 구면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20 하고도 몇 년 만에 만나니 반가워서 그렇다. 한때 문화재 답사 여행에 빠져서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익산과 김제를 한데 묶은 여정에 미륵사지가 있었다. 석탑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나는 역사교과서에 나오는 미륵사지 석탑을 내 눈으로도 직접 보고 복원이랍시고 무너진 한쪽을 공구리(!) 쳐 놓은(당시엔 시멘트가 최고의 신소재였으니 그럴 만도 했겠으나) 일제의 무도함도 확인하고 싶었다. 미륵산을 배경으로 두른 미륵사지의 휑한 공간에서 2001년부터 석탑의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석탑 주변으로 비계와 가림막이 쳐졌다. 가림막 사이로 보니 이미 해체된 석재들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십 수년은 족히 걸릴 거라고 했다. 그 대신 동쪽에 있는 탑이 모형으로 복원되어 있었다. 새로 깎은 화강암 석재 사이사이에 색이 바랜 오래된 원래 석재 몇 개가 어색하게 자리했다. 그때의 미륵사지 탐방은 허무했다.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했는데 20년이 더 걸릴 줄은 몰랐다.


2019년 4월 30일에 18년에 걸친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이 마무리되었다는 기사를 몇 해 전에 얼핏 본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찾은 미륵사지는 쾌적했다. 평화로웠다. 아무나 여기 와서 편하게 쉬고 가라는 듯 너른 품을 내주고 있다. 저 멀리 미륵산은 앉은자리도 모양도 인왕산을 닮았다. 시대와 공간을 넘어 좋은 땅을 보는 눈은 다르지 않으리라. 임수까지는 모르겠고 적어도 잘생긴 뒷산을 뒷배 삼아 공간이 조성된 점은 똑같다..  


그 넓디넓은 미륵사지에 건축물이라고는 양쪽으로 긴팔을 벌린 듯 서 있는 동탑과 서탑, 그리고 당간지주뿐. 왼쪽에 있는 서탑이 진품이고 오른쪽의 동탑이 가품(!)이다. 미륵사지의 주인공을 주인공답게 대접해 주기 위해 마지막에 찬찬히 둘러보기로 하고 절터 전체를 천천히 훑으며 걷는다. 두 탑을 수평으로 연결한 선이 마치 경계선이나 되는 양 그 위로는 좀처럼 사람들이 찾질 않는다. 온통 잔디뿐인 빈 공간에서 뭐 볼 게 있냐 싶어서 그럴 것이다. 왕궁 자리이든 절터든 가장 좋은 자리는 맨꼭대기이다. 그 자리에서 보는 풍경이 왕의, 부처의 눈에 들어오는 경관이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봐야 얼마 걸리지 않는다. 등 뒤에 미륵산이 서있고 저 멀리로는 얕은 산자락이 좌우로 흐르면서 부지 전체를 감싸되 개방감을 잃지 않은 형국이다. 탑 두 기는 호위무사처럼 든든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역사나 문화재를 잘 몰라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그늘에 자리를 잡고 잠시 쉰다. 천년을 넘게 이어 온 이곳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백제시대에 지은 절이 있던 자리에서 고려시대 유적이 발굴되고 조선시대 건물터와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현대의 우리는 여기에 박물관을 짓고 역사를 기억하는 장으로 활용한다. 시대마다 용도를 달리했던 이곳이 몇 백 년이 지난 뒤에는 또 어떻게 쓰이고 있을지…


석탑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게 조금 떨어진 기단석 위에 걸터앉아 물끄러미 바라본다. 미륵사지 석탑은 뒷부분이 조금 더 온전하다. 무너져 내린 데를 성벽을 쌓듯 돌로 복원한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오니 탑을 찾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각보다 안 예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반바퀴만 돌아보아도 이 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들었는지를 알게 된다. 온전히 복원되면 좋았겠지만 7세기부터 서 있던 탑을 18년 동안 이 정도로 튼튼하게 세우고 맞추어 놓은 것만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2년에 사실상 새로 만들어진 동탑은 석재들은 이제 색이 바래 원래 있던 옛날 석재와도 제법 잘 어울려서 튀어 보이지 않았다. 세월 지나면 이 탑의 가치가 커지게 될 것이다. 반대말인데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미륵사지 입구에 있는 국립익산박물관에는 미륵사지와 익산 주변에서 출토된 백제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것만큼 감동적인 것은 미륵사지 복원에 참여했던 분들의 이름과 사진, 그들이 한 일들을 잘 기록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의 복원에 참여했던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이 터를 닦아 절을 세우고 탑을 만든 7세기의 누군가를 잊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모든 이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언젠가는 그들 중 누군가에게는 가닿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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