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꽃이 활짝

by 오궁

작년 이맘때, 웬일로 참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쪼아 먹고 있는 걸 보았다. 꽃이 막 피기 시작한 나무에 먹을 만한 게 있을까 싶어 참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 참새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전 해에 주렁주렁 알알이 달린 열매를 맘껏 따 먹었기 때문에 그 해에도 기대가 컸다. 그런데 한 두 주가 지날수록 꽃잎은 더 펴지지 않고 잎도 하나둘씩 떨어졌다. 참새가 바쁘게 주둥이로 쪼아댄 것이 벌레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살충제를 뿌려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참새가 지나간 자리를 한 번 더 세심하게 살폈더라면. 이른 봄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기세를 뽑아 올린 작은 가지들은 잎도 꽃도 잃고 앙상한 채로 시위하듯 서 있었다. 사실상 생명력을 잃은 나뭇가지는 모조리 잘라내야 했다. 그리고 늦봄과 여름을 지나면서 나무는 다시 새로운 가지를 있던 만큼 올렸고 꽃은 없어도 잎을 훌륭히 키웠고 다음 해를 기대하게 했다. 그 모든 과정이 얼마나 기특하던지.


해가 바뀌고 봄이 와서 주변의 산천이 자연의 경이로 풍요로워질 때, 나무에도 잎눈과 꽃눈이 트이고 어느새 초록과 아이보리의 향연이 펼쳐졌다. 꽃은 꽃잎 네 개를 활짝 펼쳐 벌과 나비를 맞이하고 코를 가까이 가져가야 겨우 알아챌 수 있는 향은 은은해서 더 애틋했다. 꿀벌과 뒤엉벌 몇 마리가 이꽃저꽃 옮겨 다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저절로 멍해지며 빠져들게 되더라.아직 참새가 기웃대지 않는 걸 보니 빨갛고 까슬한 보리수 열매가 한가득 달릴 것 같다. 보리수 단물 빨아먹고 씨 후두둑 뱉으며 작은 땅뙈기에서의 여름날을 날 수 있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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