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여행자의 일기 #14

오로라 빌리지의 젊은 한국인들

by 오궁

소싯적에 그러니까 스물여섯 살에 미국에서 잠시 일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해외 나가서 경험을 쌓는 일이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한 필수 코스지만 그때만 해도 어학연수를 가는 친구들도 많지 않았다. 제대하고 나서 3학년을 다니고 나니 왠지 그대로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아쉬웠다.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돌이켜 보면 학생만큼 좋은 직업이 없었다. 4학년은 이제 학생이 아니라 예비 사회인으로서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시기였다. 곧 취업을 의미하는 4학년을 그대로 맞이할 자신이 없어서 휴학을 선택했다. 당시에는 주로 호주로 가는 워킹 홀리데이의 인기가 많았는데, 몇 군데 수소문을 해보니 미국으로 가는 워크 앤 트래블(Work & Travel)이라는 유사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어학연수처럼 돈을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영어도 배울 수 있다고 하니 딱히 부모님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나에게 딱이었다. 그렇게 해서 겁도 없이 내가 가게 된 곳은 애틀란타에 있는 스톤마운틴 파크라는 곳이었다. 거대한 대리석으로 된 산을 주변으로 각종 시설이 있는 리조트였는데 주로 한 일은 팝콘을 튀겨 팔거나 감자튀김을 만드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제3세계 알바 노동자였다. 한국 친구들이 잔뜩 몰려 있어서 생활의 불편은 없었지만 영어도 인생의 경험도 값지게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번 돈으로 생활비와 월세를 충당했고 이따금 주변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4개월의 조금 밋밋했던 경험은 아름답게 포장돼서 자기소개서에 아낌없이 활용됐고, 나는 영어도 되는데 다양한 경험뿐 아니라 본 글로벌 감각과 리더십을 두루 갖춘 둘도 없는 인재가 되었다. 알고서도 속아 준 여러 회사 인사담당자들께 감사드릴 따름이다.

한국, 중국, 일본 사람이 대부분인 오로라 빌리지에는 각국의 관광객을 담당하는 젊은 가이드들이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가이드들이 없으면 오로라 여행객은 미아 신세나 마찬가지다. 여행객들은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완전하게 의지해야 비싼 돈을 내고 오로라 여행에서 본전을 뽑을 수 있다. 공항과 옐로나이프 시내, 오로라 빌리지, 다시 공항으로 마무리되는 오로라 빌리지의 원스톱 시스템의 중심에는 바로 그들이 있었다. 각자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과 동기는 다 다르겠지만 그들의 에너지 하나만큼은 강추위를 거뜬히 이겨내고 있었다.

28세 J는 학생 같은 앳된 외모와 달리 회사는 다니다가 옐로나이프로 왔다고 한다. 뭘 해도 똑 부러졌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안내 멘트 하나를 해도 기내방송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잘했다. 한국에서는 멀쩡하다도 해외여행만 나오면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유난히 까다로워지는 사람들에게도 ‘암요, 돈을 얼마나 많이 내고 오셨는데요.’ 하면서 달래듯이 능수능란했다. 그런가 하면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일행들하고는 금세 친해져서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젊고 밝은 그의 에너지가 좋았다. 그만큼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싶었다. 그와 비슷한 나이였을 2000년 여름의 나는 과연 열정적인 사람이었을까? 그때 이미 안주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했던 것 아니었을까? 그때 더 오래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4개월 만에 도망치듯 미국을 빠져나와서 무위도식하며 또 몇 개월을 지내다가 복학을 했을까? 다른 일자리를 더 알아보거나 조금 있던 돈으로 유럽이나 남미로 여행 떠날 생각을 왜 못했을까? 좋은 멘토가 없어서였다고 둘러대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스물여섯 살이면 어른인 줄 알아서 누구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구하지도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오로라 빌리지의 젊은 가이드들이 기특하고 또 기특했다. 아이를 가진 여느 부모들의 생각처럼 아내와 나는 우리 딸들도 J처럼 용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그들의 의사와는 매우 무관하게 스무 살이 넘으면 이런 곳으로 보내야겠다는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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