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맛집 블록스 비스트로
옐로나이프 시내에서 가장 관광지스러운 곳을 굳이 하나 꼽아보자면 블록스 비스트로(Bullocks Bistro)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브룩스 비스트로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배우 산드라 블록과 같은 집안사람 같으니 브룩스(Brooks)보다는 블록스라고 불러야 맞다. 올드타운에 있는 부시 파일럿 모뉴먼트 근처이자 그야말로 잡화점 데보앤위보어 맞은편에 있다. 이 집은 호기롭게 세계 수준의 피시앤드칩스를 만든다고 자부한다. 우연히 시내에서 블록스 비스트로의 트럭을 봤는데 문짝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The world famous fish and chips” 맛을 보면 과연 그러한지는 의심스럽기도 한데 그 누구도 증명할 길이 없으므로 그렇다고 해주자. 어쨌거나 그 배포 하나는 대단하다. 뭘 하든 그 정도 자부심은 있어야 근처라도 가는 것 아니겠는가. 적어도 옐로나이프에서 최고의 식당이라 할 만한 블록스 비스트로는 외관, 분위기, 음식 모든 면에서 옐로나이프스럽고 따라서 여행자들에게는 가장 이국적인 곳이다. 나무판자로 장식된 낡은 외관은 이곳이 바로 올드타운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고, 벽이며 천장에 빼곡한 낙서는 이곳이 외국인들의 성지임을 알려준다. 낙서뿐 아니라 명함은 기본이고 고액권의 위안화도 붙어 있었다. 대륙의 부유한 따거의 관대한 손길이 이곳에까지 스며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낙서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개 ‘나 여기 왔다 갔다’, ‘우리 사랑 영원히’, ‘블록스 비스트로 최고’와 같은 문구들 가운데 더러 세계 평화와 환경 보호를 기원하는 기특한 문구들도 눈에 띈다. 핸드폰 번호까지 적힌 명함을 붙여 놓고 간 모 회사의 김 모 씨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 모르겠다. 좁은 실내, 낮은 천장, 낙서로 어지러운 벽, 평범하고 낡은 테이블과 의자 덕분에 블록스 비스트로는 영락없는 동네밥집이다. 동네 사람들을 만날 걸로 기대하지만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이름난 가게 되어서 다운타운이나 기념품 가게에서 만났던, 파란색 오로라 빌리지 유니폼(!)을 입은 여행객들을 다시 만나기가 더 수월하다. 그래서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다. 캐나다 평균을 상회하는 옐로나이프의 소득 수준과 여행객들의 두툼한 지갑 두께를 고려한 나름 합리적인(!) 가격 정책이다.
메뉴는 스테이크와 피시앤드칩스가 중심이다. 가까운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로 만든 생선요리와 흔치 않은 버팔로 스테이크를 맛볼 수도 있다. 동네에서는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춘 곳이다. 자리가 없어서 주방이 바로 보이는 바에 앉았다. 나가는 접시들을 보니 그 양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생선도 고기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두 접시를 시켰다가는 그대로 남길 것 같아서 나는 대구로 만든 피시앤칩스를 주문했고 아내는 샐러드와 감자튀김이 나오는 베지테리언 메뉴를 주문했다. 음식맛은...세계적 수준은 그가 지향하는 이상향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회사도 마찬가지인 것이 그 회사가 가장 못하는 것을 사훈이나 비전으로 선포하는 경우가 많다. 그 회사의 약점을 보려면 비전, 전략방향 이런 걸 보면 된다고 어떤 강의에서 들었다.
사실 음식 맛이나 분위기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오너 셰프 블록씨의 움직임이었다. 그의 유려하고 절제된 몸놀림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주방 공간과 주방기구의 배치는 가장 효율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기에 최적화되어 있었고 그의 동작에는 일초도 빈틈이 없어 보였다. 주문이 들어오면 준비해야 할 음식의 종류에 따라 그는 다음 동작을 미리 머릿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손님의 요구에 따라 어떤 음식은 딥프라잉, 팬프라잉, 그릴링을 하고 시와 때에 맞춰서 소스를 더하고 뒤집었다. 감자튀김은 눅눅해지지 않게 요리가 나가는 시간에 맞춰서 자르고 튀겨서 건져냈다. 푸짐한 접시 하나가 완성되고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손에 전달돼서 테이블로 나갈 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흐뭇해했다.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노드라마였다. 커다란 덩치에 짧은 머리를 하고 앞치마를 두른 그는 울그락불그락한 인상과는 달리 매우 섬세한 남자였다. 파인 다이닝 수준의 절제된 접시를 내지는 않지만 그의 움직임은 그러했다. 투박하지만 정성과 자부심이 듬뿍 담긴 접시 하나가 나오기까지 그의 섬세함은 끝이 날 줄 몰랐다. 바쁜 셰프에게 말 한마디 걸어보지 못하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남겨두는 것도 여행의 감칠맛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