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여행자의 일기 #16

썰매개들도 퇴근하고 싶었다

by 오궁

제주도 여행을 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말을 타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물의 등에 올라타는 일은 비정형적이고 역동적이다. 원시적이기까지 하다. 온순하게 길들여진 차라는 기계를 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좋은 차의 성능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은 어쩌면 근원적인 본능으로 회귀하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 모른다. 짧은 거리이지만 말등에 올라타 있는 동안은 말이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내 몸으로 온전히 전달된다. 그럴 때마다 내 몸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말 다리의 힘겨움이 함께 느껴졌다. 어쩌면 사람을 등에 태우는 일이 그 말의 숙명 같은 것이었겠지만 동물 보호주의자도 아니면서 나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겨울에 오로라 빌리지에서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역동적인 활동은 바로 개썰매 체험이다. 이동 수단이 마땅하지 않았던 선주민들의 전통 교통수단을 체험하는 것이다. 성인 남자 허리 정도까지 오는 크기의 개 12마리가 끄는 썰매에 네 명이 탄다. 제 몸무게 오로라 빌리지에 있는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코스인데 대략 15분 정도 소요된다. 물론 개들의 컨디션에 따라 시간은 조금씩 늘거나 줄어든다. 시베리안 허스키가 주종인 썰매개들의 질주 본능을 타고났다. 하네스를 메고 출발선상에 서 있는 개들은 각자 제 몸무게쯤 되는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데도 달리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개들의 체력이 왕성할 때 개썰매를 타면 그 속도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엉덩이가 들썩들썩할 정도 스릴도 있다. 하지만 개들도 생명인지라 체력의 한계가 있다. 개썰매 체험에서 뒤쪽 조에 배정을 받으면 속도감보다 안쓰러움이 크다. 지친 개들은 본능과 명령에 따라 달리기는 하지만 작은 언덕 하나 오르지 못하기도 한다. 그럴 땐 개썰매를 운전하는 사람이 뒤에서 밀어야 한다. 아내와 나는 촬영 때문에 맨 마지막 조에 촬영감독님과 타게 되었다. 개들을 최선을 다했고 낮은 언덕 앞에서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완주에 실패하지 않았다. 지면과 거의 다름없는 높이에서 느끼는 속도감은 실제 이상이었다. 스프러스 나무와 자작나무 숲 사이로 난 썰매 코스는 아름다웠고 나무 뒤에서 갑자기 뽀로로와 친구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할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그 모든 센티멘털한 감상을 뒤로하고 썰매를 타는 순간만큼은 아이처럼 신났다. 한 바퀴를 다 돌아 처음 출발한 장소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어서 출발 장소에는 더 이상 대기하고 있는 손님이 없었다. 언덕에서 허덕거렸던 개들이 갑자기 무섭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방향도 살짝 달라져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이제 출발장소가 아니라 그들의 집이었다. 퇴근시간이었던 것이다. 질주 본능만큼 무서운 것이 퇴근 본능이었다. 저녁 여섯 시 여의도역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너희들도 직장인 아니 직장견이었구나. 지구 반대편 겨울왕국에 사는 너희들의 삶도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노동이 고단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더냐. 썰매개 시베리안 허스키와 느끼는 동질감이라니. 개를 키우지는 않지만 개를 좋아하는 나는 우리를 끄느라 고생한 개 한 마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촬영팀의 요청이 있기도 했지만 분량이 끝난 다음에도 지친 다리 근육을 마사지하듯 만져주니 귀가를 잠시 미루고 아예 드러눕기까지 한다. 군살 하나 없이 온몸이 근육 덩어리이긴 했는데 생각보다 왜소해서 깜짝 놀랐다.

우리 조상들이 소를 가족처럼 대했던 것처럼, 캐나다 땅 선주민들의 발이 된 썰매개들도 원래는 가족의 일원으로 대접받으며 주인과 호흡을 함께하며 하얀 설원을 달렸을 것이다. 몸은 지치고 힘들어도 자부심 하나로 버텨냈을 것이다. 그랬던 개들이 이제는 주인보다 낯선 이방인들을 더 자주 태운다. 눈에도 익숙하지 않고 냄새마저 낯선 사람들이 잠시 왔다가 떠난다.

지난밤 어디서 늑대소리인지 개 울음소리인지 알 수 없는 처량한 소리가 들리더니 썰매개들을 단체로 사육하는 시설이 근처에 있었다. 큰 기둥에 묶여 있는 개들은 저마다 사람이 지어준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한 몸뚱이 겨우 깃들 수 있는 작은 개집 하나뿐이었다. 개들을 썰매를 끌고 그 대가로 푸짐한 사료 정도는 제공을 것이다. 그것 말고는 보상할 길이 없을 테지만 수고로움에 비해서는 적은 보상임에 틀림없다. 개들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재료비로 계상될 것이다. 견건비(犬件費)라는 단가 높은 항목이 있을 리 없다.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아지가 있다며 보여주었다. 너도 머지않아 엄마 품을 떠나 썰매개로 길러지고 훈련받을 것이다. 너의 질주본능은 저 지평선 너머 수천 킬로미터에 가 닿지 못하고 호숫가 주변에 머물고 말겠지만 썰매개로서의 자부심은 잃지 않고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오로라16.jpeg


이전 05화오로라 여행자의 일기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