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여행자의 일기 #13

상업적인 그러나 상업적임을 까맣게 잊게 만드는 오로라빌리지

by 오궁

적어도 한국에서 오로라를 보러 관광객에게 오로라 빌리지는 옐로나이프의 다른 이름이다. 지구상에서 몇 안 되는 오로라의 성지로 추앙(!)받는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 빌리지 없는 오로라 관광은 성립하지 않는다. 오로라 빌리지라는 이름은 언뜻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이곳은 민간인이 운영하는 회사이다. 오로라 빌리지가 운영하는 시스템에 얹혀 가지 않으면 특히나 추운 겨울에는 오로라를 안정적으로 관측하기가 쉽지 않다. 옐로나이프를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오로라 빌리지는 오로라 관광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한국에서 옐로나이프로 가는 오로라 관광 상품을 구입했다고 가정하고 오로라 빌리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보자.


밴쿠버, 캘거리 또는 애드먼튼을 거쳐 옐로나이프 공항에 도착하면 캐나다 구스를 입은 한국인 가이드가 공항에서 맞이한다. 이미 통지되어 있는 명단과 실제 도착한 사람을 확인한다. 이때부터 이 가이드는 관광객의 절대자가 된다. 절대자는 웰컴 키트를 나누어 준다. 여권 지갑, 오로라 빌리지 방문 증명서, 여행안내 책자, 빌리지 식당에서 쓸 수 있는 수프 쿠폰 2장 등이 들어 있다. 공항 문을 나서면 가이드에 안내에 따라 버스에 탑승한다. 들고 온 가방은 다른 차가 실어 나른다.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호텔에 도착하면 호텔에서 방 열쇠를 나눠준다. 하루가 아까운 여행자는 첫날밤에도 오로라를 보러 나가야 한다. 호텔 방에 들어가면 옷장에 미리 알려 둔 사이즈의 방한복이 걸려 있다. 그 유명한 캐나다 구스, 방한 바지, 내피까지 들어 있는 부츠, 후드 마스크가 여행 기간 내내 입거나 장착해야 할 대여품이다. 이 모든 장비 역시 오로라 빌리지에서 빌려주는 것이다. 후드 마스크는 기념품이란다. 밤 아홉 시 정도가 되면 버스가 호텔 앞으로 온다. 버스 옆구리에 오로라 빌리지 마크가 선명하다. 이 도시에서 버스라고 있는 것은 몇 안 되는 시내버스 말고 죄다 오로라 빌리지 버스인 것 같았다. 버스는 북동쪽으로 오로라 빌리지는 향해 30분을 달린다. 달리는 동안 가이드의 청산유수와 같은 안내방송이 나온다. 도로가 울퉁불퉁해서 위험할 수 있으니 손잡이를 잘 잡고 있어라, 오로라는 태양에서 뿜어내는 입자가 지구의 자기장을 만나 생기는 것이다, 옐로나이프는 원래 선주민의 땅이었고 광업으로 유명해졌다, 빌리지에 도착하면 티피를 배정해 주는데 그 빌리지에서 몸을 녹이고 필요하면 뜨거운 물과 차가 준비되어 있다, 기본은 1시까지이지만 연장도 가능하니 저한테 신청해 주시면 된다, 기념 촬영이나 보온 의자는 유료이니 별도로 신청해 주셔라, 흡연은 지정 장소만 가능하고 플래시 사용은 자제해 달라 등등 듣기에도 숨이 차는 멘트가 쏟아진다. 버스 안에 한, 중, 일 관광객이 모두 타고 있으면 3가지 언어로 똑같은-어쩌면 가이드의 기억력과 개성에 따라 조금씩 다를지도 모르는-방송이 나온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어딘지도 모를 컴컴한 곳에 내린다. 21개의 티피와 레스토랑, 기프트샵 등의 시설을 갖춘 오로라 빌리지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배정된 티피에는 따뜻한 난로와 차가 준비되어 있다. 테이블과 의자에서 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때부터는 자유롭게 티피를 드나들면서 오로라를 관측하면 된다. 오로라는 지구의 시간에 관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그 강도는 제 마음대로지만 오로라 빌리지의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 한 시 정도엔 버스를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간다.


오로라 빌리지는 여행자들의 밤만 책임지지 않는다. 낮에는 옐로나이프 시내 관광도 해준다. 능숙한 가이드는 시내의 명소 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수십 번은 반복했을 멘트로 여행자들의 결핍을 채워준다. 물론 시내에 위치한 오로라 빌리지 기프트샵을 들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대놓고 쇼핑을 해대는 동남아 단체 관광에 비하면 애교 수준도 안 돼서 꼭 필요한 곳에 우리를 데려다준 느낌이 들 정도다. 지금도 꼭 필요한 기념품을 샀다고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


오로라 빌리지에는 피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썰매를 타 볼 수도 있고 설피를 신고 트레킹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소소하게 마시멜로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모닥불도 피워놓고 눈썰매도 탈 수 있다. 심지어 얼음낚시 체험 상품까지 구비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오로라 관광 아니 옐로나이프 관광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이 글이 오로라 빌리지 홍보글이 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오로라 빌리지로부터 1원의 혜택도 받은 적이 없으니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은 옐로나이프 시내를 다녀 보면 온통 오로라 빌리지표 파란색 캐나다 구스 점퍼를 입은 사람뿐이다. 그래서인지 오로라 빌리지가 옐로나이프를 먹여 살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자료를 좀 찾아보니 관광산업이 옐로나이프에 기여하는 정도가 그리 크지 않아서 놀랐다. 이 도시 뭐지? 어쨌든 여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옐로나이프 도착부터 떠나기까지 완벽하게 오로라 빌리지의 관리를 받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옐로나이프와 오로라 빌리지라는 거대한 세트장에 들어와서 매일 밤 아홉 시가 되면 출근하고 한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트루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티피가 있는 빌리지가 아니라 우연히 길을 가다 보는 오로라가 더 멋있고, 더 큰 감동을 줄지 모르겠지만 일생에 한 번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옐로나이프로 날아오는 여행자는 오로라 빌리지에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 시스템에 기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을 오로라 빌리지가 영민하게 파고든 것이 아닐까. 지극히 상업적인 공간이지만 우리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자연은 우리의 뜻과 무관하게 늘 무료로 펼쳐져 있지만 시간과 돈을 쓰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친절한(!) 누군가는 약간의 돈을 받고 그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준다. 뭔가 알 듯 말 듯한 모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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