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나이프의 동지섣달
십 년 전쯤 여름, 팔자에 없을 줄 알았던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앞으로 살면서 여기보다 위도가 더 높은 곳에 올 일은 아마도 노년에 크루즈 여행이라도 다니면 모를까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가 8월 정도였는데, 도대체 해가 지지 않아 밤 12시가 넘어도 주위가 밝아서 당황스러웠다. 호텔방에서 암막 커튼을 치고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출장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백야를 맞이하고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후 겨울, 스톡홀름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옐로나이프로 아내와 오로라를 보러 온 것이다. 백야의 반대말은 흑야인 줄 알았더니 극야(極夜, Polar Night)이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을 가진 ‘아아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해가 뜨지 않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한겨울에 해가 뜨지 않는 흑야를 옐로나이프는 겨우 면했다.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 연안, 겨울이라도 해가 조금이라도 뜨는 곳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늦잠을 충분히 자도 티도 안 날 만큼 해는 느적느적 10시 정도에 뜬다. 우리가 흔히 보는 해돋이처럼 한 번 실낱같은 빛을 보여주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쑥쑥 떠올라서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떴는지 마는지 한다. 위로 떠오르니 않고 한참을 지평선에서 옆으로 옆으로 이동한다. 타원형에서 제대로 된 원형이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떴다보다 스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때마침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였다. 정오에 해는 중천에 걸리지 않고 남쪽 하늘에 낮게 주유한다. 이제 다 떴나 싶으면 이내 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떠오를 때의 모양과 비슷하게 옆으로 눕듯이 진다. 해가 떠오르는 곳과 지는 곳이 그리 멀지 않아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봐야 시간은 서너 시 정도다. ‘안녕, 나 해야.’ (중략) ‘아, 이제 그럼 안녕.” 이러는 것 같다. 중략의 미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해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축하할 일이다. 실제로 극야를 경험하는 옐로나이프보다 더 위쪽에 사는 선주민들은 겨울의 끝자락 해가 다시 실낱같이 뜨는 날 모여서 축제를 연다고 한다.
해가 뜨고 지는 모양이 그러하니 늦잠을 자도 새벽형 인간이 된 것 같고 저녁을 먹어도 야식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눈에 반사된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눈을 뜨기 힘들다는 말은 어디서 주워 들어 선글라스를 챙겨 갔으나 큰 쓰임을 하지는 못했다. 반사시킬 눈의 양만 충분했고 눈은 저절로 빛을 내뿜진 않았다. 날이 추우니 밖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는 데다 일조량도 적은 이곳 사람들은 동지섣달 기나긴 낮과 밤을 무엇을 하며 지낼까? 온기를 찾아 실내로 실내로 찾아드니 가족 간의 유대 하나는 좋아지겠다. 딱히 할 것이 없으니 책은 많이 볼 수 있겠구나. 적당히 어두운 조명 아래 사색을 할 기회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을 텐데 이방인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한 걱정이다. 이방인의 걱정과 무관하게 해가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옐로나이프의 일상은 잘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엘도라도를 찾아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더라도 해 짧고 추운 옐로나이프는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를 아내와 주고받으며 오로라 빌리지로 가기 위해 중무장을 주섬주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