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하나 차릴까?
옐로나이프로 공짜여행을 갈 수 있게 해 준 것 가운데 하나가 요리였고 실제로 방송내용에도 요리가 등장해야 해서 아내를 포함한 출연자들을 위해서 요리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옐로나이프에 도착할 때까지도 메뉴를 정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던 내 속내와 무관하게 그것도 입소문이라고 셰프도 아닌 나를 사람들은 셰프님이라고 불렀고 정말 셰프가 된 양 나는 무려 네 번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 출연자와 제작진 말고 일반 여행객들 10명도 함께 있었는데 티피 안에서 대기하다가 요리 이야기가 나왔고 그들의 옐로나이프 마지막 날 저녁에 초대를 하면 어떻겠냐는 누군가의 제안이 있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 흔쾌히 응했다. 몇 명이나 올까 싶었는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오븐구이용으로 정형된 등심 두 덩이를 샀다. 쌌다. 오븐에 넣어서 구워서 썰어냈다. 닭가슴살과 채소로 진한 육수를 내고 닭고기양송이수프를 끓였다. 신선한 채소로 샐러드도 뚝딱 만들었다. 빈이 아버님이 모짜렐라 치즈를 사다 주신 덕에 간단한 피자빵도 만들었다.
BYOB(Bring Your Own Bottle). 음료와 안주는 각자 챙겨 왔다. 10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미리 크리스마스 파티가 벌어졌다. 공연용으로 가져온 트리전구를 루엘은 창에 걸었다. 사람들은 음식이 맛있다고 해주었다. 왁자한 분위기에 취해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다. 이국의 호텔방에서 직접 만든 음식으로 파티라니.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설렜을지도 모르겠다.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다 고개를 들어 파티장(!)을 바라보는데 흐뭇했다. 다른 분이 찍어주신 사진 속에서도 그러고 있더라. 누군가는 교주가 신도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식당을 하나 내면 정말 이런 기분일까 싶은 마음이 잠깐 들었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아내와 나의 손발은 척척이었다. 이제 아내도 손님 초대에 이골이 난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남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식당을 내겠다는 꿈이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TV의 정보 프로그램 출연을 위해서 몇 시간 정도 촬영을 한 적은 몇 번 있었는데 일주일 넘게 제작진과 사실상 숙식을 같이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는 사이 제작진과의 친밀도도 높아졌다. 그 추운 날씨에도 장갑만 벗으면 금세라도 동상이 걸릴 것 같은 영하 30도의 날씨에서도 촬영감독님들과 연출팀은 한 장면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서도 요리를 하고 싶었다. 닭은 두 마리 샀다. 신기하게도 캐나다의 닭값은 손질 안 된 통닭이 더 비쌌다. 우리 돈으로 15,000원 정도였다. 닭도리탕용으로는 손질된 닭이 없어서 다리와 몸통을 붙이고 날개를 떼어 낸 부위를 사서 직접 손질을 했다. 닭한테 뭘 먹였는지 뼈가 단단해서 혼났다. 한국에서 가져간 고추장과 간장으로 닭도리탕을 두 냄비 끓였다. 전날 먹다 남은 소고기와 김치로 소고기두루치기도 만들었다. 남은 수프는 물을 부어 데웠다. 밥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정을 나누는 것이다.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잘 어울리는 북구의 밤이었다.
옐로나이프에서 요리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세 번째였다. 나는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는 따뜻한 중년의 남자 이미지를 담당하고 있었고 그걸 증거화면으로 받쳐주기 위해서는 요리를 해야 했다. 메뉴는 촬영일 오전에 정했다. 과일샐러드, 소고기스튜, 연어스테이크, 커피였다. 실수는 없어야 했다. 다른 출연진도 함께 하는 저녁식사였고 촬영팀이 다섯 명이나 카메라를 대고 지켜보고 있었다. 장을 보는 장면부터 요리를 하는 모든 장면을 영상으로 담았다. 어렵게 메뉴를 정했다. 마트는 나에게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은 신선하고 다양한 채소가 눈길을 사로잡았고 질 좋은 고깃값은 4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과감하게 안심을 집어 들었다. 싱신한 냉장연어도 저렴했다. 닭고기와 채소로 진하게 육수를 냈다. 스튜에는 감칠맛이 넘쳤다. 진한 육수에 소고기와 감자, 양파, 당근을 넣고 뭉근하게 끓였다. 생타임을 깔고 버터를 팬에 올려서 알맞은 크기로 자른 연어를 구웠다. 루와 생크림으로 소스를 만들었다. 데친 아스파라거스, 브뤼셀스프라우트, 미니당근을 곁들여서 연어스테이크를 완성했다. 케이퍼도 올리고 생 딜로 장식을 더했다. 남은 타임 줄기는 접시의 빈 곳을 채워 주었다. 하얀색 접시 위에서 연어가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카메라를 의식해서인지 지켜보던 아내는 지금까지 요리하면서 그렇게 떠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방송용이 아니길 바라는 호응이 이어졌고 6인분 밖에 만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하던 제작진에게는 한국에 돌아가서 따로 대접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가까운 미래에 요리로 먹고살고 싶어 하는 40대 금융인으로 방송에 나갈 것이다. 사람들은 불안하지 않냐고 자꾸 묻는다. 정작 불한 것은 그들처럼 보인다. 남의 일에 불안해 주어서 고맙긴 하나 그게 염려인지 연민인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꿈에 대해 자신의 기준으로 말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나도 그런 일이 많았을 것 같아 머쓱해졌다. 잠시.
M도 피디다. 이번 촬영팀에서 살림을 담당하는 코디네이터로 동행했다. 도착한 첫날부터 쌀, 라면, 우유, 빵, 주스, 과일, 계란까지 바리바리 챙겨주었고 전체 팀 살림을 살뜰하게 도맡아 했다. K 대표님은 이번 프로젝의 총괄이었다. 그 두 분에게도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았다. 그들을 위한 아침식사 대접 제안에 아내도 오케이 사인을 주었다. 가수 R과 K대표님, M피디를 아침식사에 초대했다. 메뉴는 전날의 메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은 계란으로 스크램블 에그를 했는데 전기스토브의 불조절이 익숙하지 않아 원하던 대로는 만들지 못했다. 여행 일정이 이틀밖에 남지 않아 남은 재료를 다 처분해야 했다. 지혜를 모았다. 냉장고 대방출을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이로써 우리와 함께 한 일행들 모두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다. 최소한 10명은 미래의 고객으로 확보한 듯하다. 오로라를 보러 온 것이 확실한데 어쩌면 요리를 하러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무래도 좋았다. 오로라도 좋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나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오로라 하나를 보기 위해 일주일 남짓 함께 한 사람들의 인연이 얼마나 길고 깊게 이어질지는 각자 하기 나름일 것이다. 식당을 정말로 내게 되었을 때 그들의 말처럼 첫 번째 손님은 아니더라도 한 명이라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놀랍고 신기한 일일까. 죽고 못 살았던 친구가 영영 모르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짧은 만남으로 시작된 인연이 길게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의 인연을 알 수가 없다.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오로라가 내게 말해 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