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보다 인디펜던트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여행장소는 식당이고,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여행지에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식재료와 주방기구를 살 수 있는 시장이나 마트이다. 시장과 마트는 현지의 식재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학교이자 박물관이다. 여행을 가면 시장은 무조건 일정에 넣어야 한다. 미국 엘에이에 연수차 들렀을 때도 나는 파머스마켓에서 제일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한 번 봐서는 부족해서 두 번을 더 찾기도 했다. 인구가 2만에 불과한 옐로나이프에서 전통시장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이마트 같은 마트는 있을 것이다. 옐로나이프에는 큰 건물이 많지 않은데 호텔 옆에 유독 큰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대형마트로 보였는데 간판에는 “Independent”라고 적혀 있었다.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대형마트로부터는 독립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즐겨 찾는 곳의 작명 치고는 역설적이고 오묘했다. 7박 9일을 옐로나이프에서 머무는 동안 호텔 바로 앞에 있는 Independent라는 대형마트에 다섯 번을 방문했다. 사는 병에 걸린 사람들의 단골 레퍼토리, 꼭 사야 할 물건이 있어서였다. 걸어서 불과 3분 거리에 있는 그 마트엘 가는데도 방한모자부터 부츠까지 중무장이 필요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남는 게 땅밖에 없는 곳에 있는 마트는 당연히 단층이다. 1개 층으로 된 건물답게 실내는 넓고 쾌적하다. 카트 석 대 정도는 여유 있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진열대 배치가 시원하다. 물건을 고르느라 잠시 세워둔 카트를 조심스럽게 밀쳐내며 빠져나갔더니 다른 사람의 엉덩이를 툭 쳐야 할 정도의 교통정체는 당연히 없다. 마트 입구에서는 쌀포대 같은 커다란 자루들이 쌓여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염화칼슘이었다. 겨우내 눈이 녹지 않는 곳이라 파는 제품도 남달랐다. 식료품 코너는 별천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기 힘든 서양요리의 식재료가 가득했고 종류도 세분화되어 있었다. 하나씩 다 사서 요리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고기의 나라답게 값이 쌌다. 소고기는 한국의 40% 정도의 가격에 팔고 있었다. 그 귀한 안심을 덥석덥석 집었다. 돼지고기에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특이하게 닭이 은근히 비쌌다. 손질 안 한 통닭은 무려 15,000원 정도였는데 오히려 윙을 제외하고 크게 손질한 닭은 8~9,000원 선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자 원래 그렇다는 답이 돌아올 것 같아 참았다. 닭도리탕용으로 잘라놓은 닭이 없어 직접 손질을 해야 했는데 뼈가 너무 튼튼해서 두 마리 손질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닭을 튼튼하게 잘 키우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가루며 향신료 같이 계량이 필요한 제품은 저울에 달아 택을 붙여 주는 것이 아니라 봉지에 담고 번호를 택에 연필로 써서 계산대에 가져가면 된다. 계산원들이 제품의 번호를 다 외우지 못할 테니 비싼 제품을 담고 싼 제품의 번호를 써도 모를 것 같은데도 그런 마음조차 먹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정직과 신뢰에 기반한 시스템이다. 맥주를 사려고 하니 마트에서는 술을 팔지 않고 술만 따로 파는 리큐르 샵에 가야 한다. 그나마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술은 나이를 엄격하게 따져서 판다고 해서 혹시 나의 동안(!) 외모 때문에 신분증을 요구해 주기를 바라고 여권을 챙겨갔다. 그들도 이제는 동양인의 나이를 외모로 파악할 정도가 되었나 보다. 여권 보자는 말을 안 해서 실망했다.
마트에서도 촬영은 계속되었다. 장을 보는 장면에서부터 요리를 하고 출연자들이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꼭지가 필요했다. 촬영을 섭외해 줄 현장 코디네이터가 자리를 비워서 촬영 감독님과 단둘이 무작정 갔다. 당연히 마트의 허가를 얻어야 했지만 영어가 부담스러웠던 감독님은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트라이포드를 깔았다. 그러자 마자 우리 옆을 지나던 아줌마 한 분이 인상을 찌푸리며 “You guys can’t do this!”라고 엄하게 말을 했다. 옆에 있던 딸은 ‘엄마, 그냥 내버려 둬.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래.”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에도 이 엄마 깐깐하게 구는 일이 많았던 듯, 딸은 엄마의 팔을 잡아끌며 볼 일이나 보자며 채근했고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새 아줌마가 신고했는지 곧이어 마트 경비원이 달려왔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해서 촬영을 접었다. 덕분에 카메라 의식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외모와 달리 섬세하고 장보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감독님과 다정하게(!) 마트 산책을 했다. 코디네이터 S가 헐레벌떡 달려왔고 고객센터를 가더니 한참만에 올라왔다. 그녀의 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곤 밝게 웃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보는 교육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인데, 이 프로가 출연하는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중요한 일이다. 다른 고객들의 얼굴을 일절 찍지 않고 그 사람이 장을 보는 모습과 제품만 찍을 거니 허락을 부탁한다.’
‘아이들이 보는 교육’을 제외하고는 진실이었던 그녀의 설득에 마트의 오너가 촬영을 허락했다고 한다. 어딜 가나 오너들은 구김살이 없고 관대한 것 같다. 결국 촬영은 재개되었는데 하필이면 아까 그 아줌마와 딸을 유제품 코너 앞에서 다시 만났다. “I said you guys can’t do this!”라며 아줌마는 이번에는 경호원이 아니라 경찰을 부를 기세로 눈을 부라렸고,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마트 측의 허락을 얻어서 촬영 중이고 당신의 모습은 1도 나오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캐나다의 프라이버시법이 매우 엄격해서 사람들도 이런 일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원하지 않는 곳에 내 얼굴이 나오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아줌마처럼 그랬던 것은 아니고 넉넉하게 웃음을 짓거나 신기하게 쳐다보던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어딜 가나 있게 마련이다.
식재료의 천국 인디펜던트를 오갈 때마다 맛있는 요리를 할 생각으로 봉투에 담긴 재료의 무게만큼 나는 행복했다. 그나저나 계산할 때마다 포인트카드 있냐고 묻던데 이렇게 자주 들락거릴 줄 알았다면 하나 만들어둘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