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피싱 체험? 아님 그냥 아이스체험?
구글 지도에서 옐로나이프 일대를 훑어보면 듬성듬성 파란색이 눈에 띤다. 호수다. 호수 반 땅 반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일대에 호수가 많다. 그래서 호수는 선주민들의 삶의 일부였다.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귀한 물고기를 낚을 수 있는 곳이다. 그마저도 겨울이 되면 호수는 꽝꽝 얼어버리고 만다. 겨울이라고 하여 들짐승이 더 잘 잡힌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선주민들은 두터운 얼음을 뚫고서라도 물고기를 잡아 올려야 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그들의 삶의 방식은 전통으로 남았고 체험형 관광 상품이 되었다. 아이스 피싱은 선주민의 전통을 체험하는 물고기잡이이다. 겨울이면 강원도에서 열리는 빙어낚시 체험 같은 것이다. 얼음의 두께와 호수의 스케일이 좀 다를 뿐이다. 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차원이 다르다. 호수는 넓디넓어서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 끝엔 지평선 아니 수평선 아니 빙평선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어 보여서 살짝 무섭기도 했다. 해는 여전히 높이 떠오르지 않아서 한낮인지 저녁 무렵인지 명암으로는 구분할 수 없었다. 숨 막히게 거대한 호수를 배경으로 동행했던 사람들은 점처럼 작아 보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를 생각하지 않아도 호수 위에서 인간은 충분히 먼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 무심하고 막막하고 쓸쓸했던 풍경만은 잊지 못할 것이다.
고기를 잡자면 일단 구멍부터 뚫어야 했다. 선주민의 방식으로 하자면 흔히 빠루라고 부르는 쇠지레로 직접 구멍을 뚫어야 했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동력기관의 힘을 빌릴 수 있는 21세기이고 우리는 1분 1초가 아까운 관광객이었으므로 기계가 동원되었다. 어디서 많이 봤다 싶은데 예초기에 달린 것과 꼭 같은 2행정 가솔린 기관을 단 기계로 지름이 한 뼘 정도 되는 크기로 구멍을 낸다. 그것도 체험이랍시고 한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손잡이를 잡아 보라고 권한다. 얼음에 구멍 내는 기계로 호수에서 얼음 뚫어봤냐고 어디 가서 자랑을 하지? 휘발유의 폭발력과 나선의 원리를 이용한 회전력은 위대했다. 생각보다 빨리 구멍이 났고 루어를 달아 얼음 아래로 낚싯줄을 내렸다. 영하 30도. 낚싯줄을 들었다 놨다 하며 얼음 아래에 있을 물고기를 유혹했지만 추워서 움츠리는 건 물고기도 마찬가지였는지 올라오는 건 줄 뿐이었다. 낚싯줄에 딸려 올라온 물이 줄을 따라 흐르다 얼어서 낚싯줄을 10여 분 만에 얼음줄이 되었다. 입질 한 번 없이 속절없는 시간이 흘렀다. 추위는 지루함을 재촉하기도 했다. 가이드에게 도대체 이 방식으로 최근에 물고기를 낚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예상대로 그의 대답은 Yes. 주기를 묻지 못한 건 나의 실수였다. 당연히 1시간 남짓되는 체험 시간 동안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그들이 미리 구멍을 내놓고 낚싯줄을 드리워둔 곳에서도 소식은 없었다. 아내와 함께 한 체험에 카메라 감독님 한 분도 동행했는데 원래 계획은 50센티미터 넘는 물고기를 잡은 다음 공중에 던지면 받을 때는 냉동 상태가 되는 장면을 찍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현되지 않았고 그럴 가능성이 낮을 것이 확실해질수록 과장(뻥이라고 쓰려다 말았다)은 심해진다. 혹시나 싱싱한 민물고기 회를 한 번 떠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호기롭게 가져간 칼은 머쓱해졌다. 고기를 잡았어도 가능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기가 잡히지 않아서 애가 타는 사람은 비싼 돈을 내고 굳이 아이스피싱 체험을 하러 온 관광객이지 가이드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쿨하게 철수를 결정했다. 강원도 빙어체험을 가는 것이 나을 판이었다.
고기는 못 잡았지만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 호수에서 - 그 호수가 맞는지도 의심스러워졌지만 - 그물로 잡았다는 고기를 시식하러 다시 오로라 빌리지로 이동했다. 사실 못 잡았다는 아쉬움보다는 추위를 면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컸다. 오로라 빌리지 피티 근처에서 모닥불 위에 올린 냄비에서 생선살을 데쳐서 준다. White Fish란다. 처음에는 흰살생선을 통칭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캐나다 호수에서 많이 잡히는 연어과의 물고기의 이름이라고 한다. 나중에 책에서 찾아보니 연어를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소금물에 데친 생선살을 맛보는 체험이었던 셈인데 육질은 쫄깃하고 맛은 고소했지만 비린내가 만만치 않았다. 소스의 도움 없이는 쉽게 먹히지 않아 소금을 달라고 했더니 소금물에 데친 건데 왜 자꾸 소금을 달라고 하냐며 웃어 보였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하기는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참았다. 침 뱉었다가 얼굴에서 얼어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하기도 하니까. 조리만 잘하고 소스만 적당하면 괜찮을 생선이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어서 마트에 갔더니 팔지는 않았다. 비린내 때문에 아내는 다 먹지 못했고 함께 갔던 감독님은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한입도 먹지 못했다. 외모는 식성과 비례하지 않고 체험의 기쁨은 가격에 비례하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 해본 것이라고 모두 신기하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