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를 보지 못하는 남자
현지 사람들 말로는 오로라의 스톰이 강하게 터지면 소리도 들린다고 한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면 소리가 들린다는 얘기와 마찬가지이다. 과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연에 사는 로지 아줌마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차가운 겨울날, 하늘은 쨍하게 맑았고 꽁꽁 언 호수 위로 별만 초롱초롱 빛나던 하늘엔 갑자기 스톰이 몰아쳤어요. 남편과 함께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아주 먼 곳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어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분명했어요. 오로라 소리였죠. 어떤 소리였냐면요... 벨크로 뜯는 소리와 아주 비슷했어요. 늘 그렇게 들리는 건 아니었어요. 저도 26년간 몇 번 들어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분명히 들리는 소리랍니다.”
조용한 호숫가에 앉아 넋을 내려놓고 어두운 밤하늘에 강물처럼 흐르는 오로라에만 집중하다 보면 없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과학이 뭐라고 하든 보는 사람의 귀에 들리면 들린 것이다. 강렬한 시각의 자극은 설령 그것이 착각이라 하더라도 청각을 동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오로라에서 소리가 들린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강한 오로라는 감각과 인지를 멈추게 한다. 하지만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강한 스톰이 터졌다 하더라도 벨크로 뜯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로라는 순전히 시각의 영역이다. 보지 못하면 그것은 오로라가 아니다.
우리와 같은 출연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연극배우 H의 동행은 그래서 특별했다. 그의 시각은 얼마 남지 않았다. 시야각은 좁아질 대로 좁아졌고 밝은 빛 정도를 겨우 인식한다. 주변인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극배우로서, 극단 대표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역이다. 시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마지막으로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옐로나이프를 찾았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멀리서 날아온 그 어떤 여행객보다 절실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밝은 대낮에도 사물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그가 캄캄한 밤하늘에 흐릿하게 하얀색으로 빛나는 오로라를 볼 수 있을 리 없다. 오로라가 스톰으로 터지면 모인 빛은 더 밝아지고 초록의 강물 가장자리에는 붉은 띠가 둘러쳐진다. 그의 눈은 붉은색만큼은 더 잘 인식한다고 한다. 그를 위해서라도 오로라가 스톰으로 터져야 했다.
오로라는 간간이 강해졌다 약해졌다를 반복했지만 육안으로 강렬한 느낌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의 눈이 어두운 곳에서 초록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정직한 카메라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극적으로 오로라를 표현해 준다. 오로라가 비교적 강했을 때 다행스럽게 카메라에 사진 몇 장을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이라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티피 안에서 선명한 초록색으로 찍힌 오로라 사진을 손바닥 반 정도 크기에 불과한 뷰파인더로 보여주었다. 그는 간신히 검은색의 바탕 사이에서 초록띠의 윤곽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방금 밖에서 우리 봤다는 그 오로라라는 말이죠?”
그는 눈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실선처럼 보였을 오로라를 아이처럼 좋아했다.
나는 마스크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려 사진을 잘 찍지 못할 때마다 콘택트렌즈를 챙겨 오지 않았음을 후회했고 안경이 필요한 나쁜 눈을 원망했다. 어쩌면 사치 축에도 못 낄 불편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잊고 살고 있었다. 시각이 가장 중요한 감각인 오로라 빌리지에서 눈이 멀어져 가는 배우에게서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배우는 누구보다 유쾌하고 시종 명랑했지만 그를 바라보는 마음에는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이 있었다. 동정도 연민도 아니고 나는 괜찮다는 안도감도 아닌 묘한 모순들이 겹쳐지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존재하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있고 존재하지 않되 눈에 선한 것이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그에 대해 감히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였다. 다만,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의 말투와 호흡만으로도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는 그는 여전히 가슴이 뜨겁고 꿈이 많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