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여행자의 일기 #25

여보 조금만, 워워워

by 오궁

오로라를 보러 나가기 전에 호텔방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아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음... 내가 할 말이 있어. 그런데 지금은 말 안 할 거야.”

“그게 말이야. 말을 꺼냈으면 맺어야지. 감질맛 나게 그런 게 어딨어.”

“아니야. 나중에 말하는 게 좋겠어.”

이럴 때 나는 참지 못한다. 호기심이 강한 탓도 있지만 이런 표정과 이런 말이면 나에게 뭔가 메시지를 주겠다는 말이라 조바심이 저절로 난다. 듣기 좋은 말을 할 때는 이런 뜸들임이 없으므로. 표정과 말투, 단어와 단어 사이의 호흡. 문장 속에서 단어의 강세로 나는 알 수 있다.

“뭐 안 좋은 거 이야기하려고 하는 거지? 기분 나쁘게 안 들을 테니까 이야기해 봐. 그거 말하는 거야?”

물론 이런 경우 기분은 이미 살짝 상해 있지만, 티를 다 내면서도 그렇지 않을 거라며 채근한다. 사실 나도 내가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던 차였다.


오로라도 보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오로라 여행은 만족스러웠고 오로라만 보는 일정인데도 하루하루가 새로움이 연속이었다. 나는 시종 흥분된 상태였다. 차분하게 무언가를 추스를 틈 없이 오로라는 감동으로 밀려왔고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과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흥미진진했다. 그런 가운데 마음속에 뭔가 불안한 기운이 아주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에 맞장구만 쳐주던 아내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꺼냈다.

“자기 여기 와서 왜 그래? 자기는 100을 갖고 있으면 그 100을 다 드러내서 보여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같아. 멋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다 드러나기 마련이야. 제발 조금만 워워워.”


나는 이런 아내가 참 좋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는 22년 지기 친구는 낯선 여행지에서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썰매개처럼 앞으로만 달리는 나에게 조용히 경고등을 켜주었다. 평소에도 아내는 내가 앞뒤 가리지 않고 질주하고 있을 때 아주 세련된 방법으로-그것을 조련이라고 불러도 좋다.- 소리 없는 브레이크를 가만히 잡아주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아차 하는 시점을 적절하게 선택했다.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친구처럼-실제로 친구니까- 대하는 아내를 둔 장점은 이런 것이다. 대체로 이런 경우 나의 대답은 “알았어. 내가 잘할게.’이다. 살아 보니, 기분 나빠하는 것보다 이렇게 쿨하게-사실 늘 쿨한 것은 아니지만-받아들이는 것이 가정의 평화와 만수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다. 마누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이 땅의 유부남들이여 깊이 새길지어다.


부부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 보면 주파수가 비슷해진다. 어떤 현상에 대해 갖는 생각도, 주기도 비슷할 때가 많다. 웃는 시점도 같아지고 눈물을 흘리는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찌찌뿡’을 외치며 ‘이젠 질린다. 제발.’ 하는 표정을 주고받을 때도 많다. 천상 베필이라기보다 오랜 세월 익숙해지고 서로에게 길들였기 때문이리라.


항상 나의 중심을 잘 잡아주는 아내와 달리 나는 아내의 뭘 잡아주는지 잘 모르겠다. 농반진반으로 아내는 나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고 한다. 나는 철들지 않음이 나의 매력이라고 눙친다. 하지만 마흔이 훌쩍 넘도록 철들지 못한 나는 적어도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서만큼은 철이 좀 들지 않았을까?

천생연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닭살 같은 사랑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잘 지켜왔고 그 사랑의 힘으로 오로라도 보러 왔다. 오로라 아래에서 우리는 앞으로 남은 시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목소리로 사람을 인식하는 배우 H에게 출연자들의 인상이 어떠냐고 B 감독님이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아내에 대해 이런 촌평을 했다.

“형수님은 뭔가 까칠하고 자존심이 강해 보였어요. 좋은 의미로요. 그리고 그 자존심에 뒤에는 ‘나한테 이런 남편이 있어’ 하는 게 느껴졌어요.”

까칠하다는 말에 마음이 살짝 상했겠지만, 여보 이걸로 갈음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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