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주로 사람을 통해 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따로 사람을 만나지는 않으니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기회를 줍나 보다.
세상이 던져 준 두 번째 기회, '독립영화 거지 출연'이 그렇게 내게 찾아왔다. 이번에도 프로그램 홍보차 들어가 있던 오픈 채팅방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날 영상 오픈 채팅방에 누군가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거지로 출연해 줄 사람을 찾았다. 아뿔싸,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다. 여기는 출연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 영상을 찍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 채팅창이 일순 얼어붙었다.
"준비된 거지 여기 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참 동태를 살피다 결국 적막감을 깨뜨렸다. 평소라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나였다. 하지만 배우를 구하기 위해 여러 오픈 채팅방을 전전하고 있을 감독의 모습이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여러 채팅방을 전전하는 내 모습과 겹쳐 보여 도움이 되고 싶었다. 마침 부스스한 머릿결과 기가 다 죽어 초라한 내 모습이 딱 거지꼴이기도 하고.
웹소설 공모전 마감 하루 전날인 11월의 첫째 주 토요일.
출연을 위해 머리도 감지 않고 최대한 후줄근한 차림으로 번화가에 갔다. 그리고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한 매장이 눈에 박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다가 결국에는 발걸음마저 멈춰버렸다.
고디바. 고급 초콜릿의 대명사 고디바 매장이 부산에도 있었다니. 명성에 압도된 나는 그 작은 매장에 들어갈 수도, 지나칠 수도 없어 길 한복판에 서서 한참 동안 매장을 바라봤다. 옷차림뿐만 아니라 하는 행동까지, 정말이지 영락없는 거지다.
'엄청 비쌀 것 같은데. 내 주제에 고디바는 무슨 고디바야. 역시 그냥 지나가는 게….'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거지의 뇌리에 달콤한 유혹이 속삭였다.
'어차피 금방 죽을 거잖아?'
진열된 초콜릿들이 눈에 들어오며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초콜릿이었다는 사실도 기억났다. 초콜릿 덕후 거지는 꿈의 음식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1라운드. '엄청 비쌀 텐데 그냥 지나가자' vs '그래도 한 개쯤은 사 먹어보자'의 대결.
문제는 가격.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여튼 엄청 비싼 초콜릿이란다. 그때 혀가 말했다. '200만 원 다 쓰고 죽는다며? 이거야말로 돈 쓸 가치가 있는 일 아니야? 일종의 버킷리스트에 들어갈 만한 음식이잖아.' 혀의 논리로 1라운드에서는 '그래도 한 개쯤은 사 먹어보자.'가 승리했다.
2라운드. '지금 사갈까?' vs '이따가 사갈까?'
이번에는 구매 시기의 문제. 이번에는 다리가 말했다. '나중에 여기로 다시 온다는 보장도 없고 근처에 오더라도 내가 녹초 상태면 나는 그냥 집으로 가버릴 거야. 그러니까 지금 사.'라고. 그때 이번 기회를 놓치면 고디바를 다시 만날 일이 언제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도 추가되었다. 2라운드에서는 '지금 사갈까?'가 승리했다.
그렇게 거지는 고급 초콜릿 매장 안으로 쭈삣쭈삣 들어갔다. 이른 시간임에도 매장 안에는 사람이 많았고 다들 익숙하다는 듯 빠르게 초콜릿을 고르고 구매하고 있다. 거지는 사람들 틈에 끼지도 못하고 멀리서 흘금흘금 매대들을 구경했다.
초콜릿의 종류가 많아 봐야 3~4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케이크도 있고 종류가 제법 다양하다. 가격도 상상 이상으로 부담스럽다. 거지의 눈이 핑핑 돌았다. '뭘 사야 하지? 생각보다 너무 비싼데. 그냥 나갈까?'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거지꼴을 하고 매장에 오래 있자니 괜히 다른 사람들의 눈치도 보인다. 식은땀이 나고 숨이 막힌다. 초콜릿이고 뭐고 매장에서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 나가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버텨야 한다. 거지는 다리에 힘을 주고 눈을 부라리며 진열된 초콜릿들을 노려보았다.
"맛있게 드세요."
영원 같았던 시간이 흐르고 계산을 마친 거지의 손에는 3가지 맛의 초콜릿이 있는 큐브가 놓였다. 그렇게 죽을 준비를 위한 첫 구매가 이루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을 준비를 하면서 취향도 상기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나를 위한 선물도 살 수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큐브를 깠다. 형형색색 예쁘게 포장된 사탕 모양의 초콜릿들. 흡사 해리 포터가 마법 학교로 가는 기차에서 사 먹은 초콜릿 같다. 한참을 구경하다 적당히 4등분으로 나눴다. 내 몫과 엄마, 여동생, 남동생 몫이다.
딱 맞게 모두가 3가지 맛을 다 맛볼 수 있다. 내 몫의 초콜릿 3개 중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고급 초콜릿의 식감. 하나를 먹어보니 다른 맛들도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얼른 또 하나.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입안에서 퍼지는 고급 초콜릿의 다채로운 풍미가 상상을 초월한다. 시도하지 않고 견뎌내지 않았다면 절대 맛볼 수 없었을 달콤 쌉쌀하고 부드러운 풍미였다.
순식간에 초콜릿 3개를 해치우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혀끝에 남아있는 뒷맛을 느끼다 깨달았다. 돈을 버는 이유는 돈을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을 써서 삶을 누리기 위한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화폐는 가치의 교환 수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경제를 그렇게도 좋아했던 내가 돈을 내 목숨과 동급으로 보고 있었다. 아니, 내 목숨보다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돈. 중요하다. 하지만 먹고살려고 돈을 버는 거지 돈 벌려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이 당연한 사실을 평생 모르고 살았다. 가치의 교환 수단이 내 목숨보다 중요했다니.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자주 죽고 싶었나 보다. 그 기준에서 본다면 아등바등 죽어라 일을 해도 한 사람 몫도 잘 해내지 못하는, 가성비 제로인 사람이었으니까.
'더 먹고 싶은데….'
이대로 놔두면 남은 초콜릿마저 내가 다 먹어 치워버릴 것 같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나눈 초콜릿을 가지고 엄마 화장대에 초콜릿을 놓고 말했다.
"엄마 이거 먹어."
엄마는 내가 놔둔 초콜릿을 힐끔 쳐다본 후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이게 뭔데?"
"고디바라고 엄청 비싼 초콜릿임. 엄청 비싼 거니까 아껴먹으셈."
엄마에게 비싸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방 안에서 너 혼자 비싼 초콜릿 다 처먹고 꼴랑 이거 3개 나눠주나?"
순간 울컥해 소리 질렀다.
"나 혼자 다 처먹은 거 아니거든! 비싼 거라서 나도 3개밖에 못 먹었거든! 그럴 거면 그 초콜릿 나 줘라. 나 먹게."
내가 울분을 토해내자, 엄마는 밥이나 처먹으라며 나를 돌려보냈다. 식탁 위에는 남동생이 지저분하게 헤집어 먹고 남은 고기가 있다. 온 가족이 거의 다 먹고 국물만 흥건하게 남은 밑반찬이 있다. 밥을 푸고 자리에 앉았다.
문득 그 모든 것들이 다 싫어졌다. 항상 가족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먹는 것도, 그 음식이 조금 상했더라도 거리낌 없이 먹어 치우는 내 모습과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도. 마치 나 스스로가 잔반 처리기같이 느껴졌다.
'뭘 먹으라는 거야.'
밥을 먹자니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대로 밥을 다시 밥솥에 넣고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둘러썼다. 집의 모든 것이 다 싫다. 집과 직장과의 거리도, 집 안에서의 잔반 처리기 신세도, 자유는커녕 사생활도 없는 생활도, 마지막으로 매일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통유리 창도.
다시 떠올랐다. 더 이상 이 집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빠의 임종을 지키러 왔고, 임종을 지켰다. 나도 더 이 집에서 고통받고 있을 이유가 없다. 이제라도 나가자. 그리고 최대한 내 취향대로 꾸며두고 살자.
바로 다음 주 주말인 11월 중순에 자취방을 알아보고 가계약도 완료했다. 이사 날짜는 한 달 후인 12월 중순으로 정했다. 보증금은 전세 대출받았고, 이사는 차가 있는 여동생에게 부탁해 뒀다. 가장 큰 난관은 엄마의 반대였는데, 마침 이사할 날에 엄마가 집에 없었다. 잦은 이사 경력을 살려 오전 시간 동안 정말 최소한의 짐만 싸서 이사했다.
집에는 미리 주문해 둔 예쁜 침대와 침구, 흔들의자와 담요와 스탠드, 그리고 세제 등의 생필품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집을 채울 예산으로 100만 원을 잡았었는데 이미 80만 원가량을 소비했다.
남은 예산은 20만 원. 적은 돈으로 예쁜 물품들을 사기에는 국민 가게 다X소가 최고다. 바로 자취집 근처 다X소에서 식기와 수저, 식탁과 욕실화 등 자잘한 물품들을 취향대로 사 왔다. 그렇게 한껏 나의 취향으로 꽉 채워진 집이 완성되었다.
내 취향의 침구에 파묻혀 생활하고 잔다. 내 취향의 식기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 내 취향의 물건들에 둘러싸여 생활한다. 모르고 살았을 때는 몰랐는데 환경만 바뀌어도 삶의 질이 수직 상승했다.
내 취향의 그릇에 밥을 먹으며 입맛이 돌아왔다. 내 취향의 욕실화를 신고 내 취향의 칫솔꽂이와 발 매트를 보며 한 번이라도 더 씻게 되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게 행복이구나.'
덤으로 회사와의 거리도 왕복 3시간에서 1시간으로 대폭 줄었다. 1시간을 더 잘 수 있게 되었고 1시간 먼저 집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남은 계약기간 3개월 반을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자유'가 다시 생겼다.
정말이지 돈은 쓰려고 버는 거고, 쓰려고 모으는 거였다.
돈은 수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