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된다고? 사소한 성과도 ‘시도’해봐야 생긴다.

by 무우지렁이

이사 준비가 한창이던 11월 중순.


"헙!“

"무슨 일이시죠?“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새어나간 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나의 비명에 놀란 팀장님이 물어보셨다.


"저 웹소설 공모전 당선됐어요!“

"아.“


팀장님은 다시 업무에 집중하셨다. 나 또 실수한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다. 민망하고 걱정도 됐지만 당선 소식의 놀라움과 기쁨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작가 오픈 채팅방에 합격 소식을 알리고 많은 축하를 받았다. 공모전 시상식에도 참석했다.


"오, 의외의 분이 집필하셨네요. [나는 킬러다.]를 쓰신 무지렁 작가님, 수상 축하드립니다!"


으악! 아니, 다른 사람들은 담백하게 제목이랑 작가 성함만 불러주셨으면서 왜 저는 앞에 한마디 붙여주시는 건가요. 부끄러움에 얼굴이 펑! 터졌다.


고개를 푹 숙여 꿉뻑 인사하고 얼른 상을 받고 내려왔다. 며칠 뒤 상금도 입금됐다. 세금을 제외하고도 무려 47만 8천 원이다.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돈을 쓸 수 있었다. 웹소설 작가 오픈 채팅방에 치킨 기프티콘을 10만 원어치 뿌리고 40만 원짜리 노트북을 샀다.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컴퓨터 때문에 꽤 애를 먹었던 관계로 바로 컴퓨터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한글 파일로 입사 지원 서류를 내야 할 때에도 컴퓨터가 없으니 꽤 불편하기도 했고.


치킨 기프티콘을 뿌리다 이제는 오랜 흑역사가 부끄럽지 않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짓말이 거짓말로 남았을 때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소설로 탈바꿈해 인정받으니 부끄러웠던 과거가 청산된 기분이었다.


시도해 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부끄러운 감정이 청산되는 기분도, 도움받아 고마운 감정도, 인정받는 기쁨도.




컨설팅 프로그램의 몇몇 부분을 손보고 홍보 효과도 슬슬 나타나기 시작한 11월 말. 팀장님께서 우리 시설에서 주최하는 온라인 전시회에 참여해 볼 것을 제안 주셨다.


"저도 지원해도 돼요…?"

"작품이 있으시다면요.“


전시회 작가 모집은 공모전 합격 소식을 들은 날에 시작했었다. 전시 주제를 보니 마침 지원해 보고 싶은 사진도 있다. 잊고 있던 전시 욕심도 났다. 하지만 내부 직원이라 당연히 안 될 줄 알았다. 그렇게 작가 지원은 포기하고 프로그램 홍보 차 들어가 있던 시각 관련 오픈 채팅방들에 해당 공고를 공유했었다.


그런 내게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바로 제출할 사진을 찾았다. 비록 낡은 핸드폰으로 찍은 데다가 블로그에 올려 화질이 많이 낮아진 사진이었지만 그래도 좋다. 간신히 규격을 맞추고 작품 지원서를 작성했다.




12월 중순, 온라인 기획전이 시작됐다.


기획전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영락없는 전시회다. 하얀 벽과 바닥, 감미롭게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 그런 전시회 한구석에 내 작품이 걸려있다. 비록 상상하던 개인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다. 죽기 전에 전시 참여 작가가 되어본 것으로 만족한다.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회를 둘러보던 중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헉. 나잖아?!'


내가 미친 거지로 출연한 영화도 전시되어 있었다. 회사 사람들이 거지, 그것도 미친 거지가 된 나를 봤을 생각을 하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니, 곧 죽을 사람은 흑역사가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또 부끄럽다니.'


하지만 이번 부끄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당장 죽지 않더라도 계약기간이 다 돼간다. 계약기간만 끝나고 나면 안/못 볼 사이다.


'얼마나 볼 사이라고. 괜찮아.'


많은 일들이 순간적으로는 부끄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조금만 지나고 보면 잊힐 일이다. 부끄러움은 순간이고 결과는 영원하다.




온라인 기획전이 시작된 다음 날,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무지렁 씨, 잘하는 게 뭐죠?"


내가 잘하는 게 있었던가? 내가 알기로는 없다. 당황해서 눈만 끔뻑이다 또 멍청한 어투로 여쭸다.


"네?"

"컨설팅 프로그램 모집률도 거의 채우셨고 이제 마지막 과업인 입주사 홍보 프로그램하셔야죠. 근데 이번에는 무지렁 씨가 기획만 하지 마시고 제작까지 해보시면 좋겠어요."


입주사 홍보를 위해 내가 제작까지 할 수 있는 것…. 없다. 여태 입주사 홍보는 영상이었고 시각 자료였다. 나는 영상편집도 기본, 디자인도 기본밖에 못 한다. 심지어 영상편집도 디자인도 팀 내에 전문가들이 있다. 기본밖에 하지 못하는 내가 괜히 덤볐다가는 기존 콘텐츠들과의 퀄리티 차이가 엄청날 것이다. 문득 최근 웹소설 공모전에서 상을 탄 일이 기억났다.


'글을… 써볼까?'


글로 주제를 잡고 보니 전 직장에서 취업 지원 관련 업무를 할 때에 자기소개서 첨삭으로 서류를 통과시켜 중견기업 CFO에 합격시킨 사례가 떠올랐다. 여전히 자신은 없지만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인 것 같다.


"입주사 인터뷰를 통해 홍보 글을 제작해 보겠습니다."

"어떤 형식으로 만드시려구요?"

"회사 홈페이지랑 블로그에 게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류로 발행하죠. 그 정도 예산은 있거든요. 갱지가 좋겠네요. 아날로그 느낌도 나구요."




그렇게 입주사 인터뷰와 홍보지 제작이 시작되었다. 한 입주사당 인터뷰 시간은 최대 1시간. 인터뷰를 진행하며 속기로 자료를 수집하고 자리로 돌아와 글을 다듬는다.


인터뷰하던 중 한 웹툰 작가님과의 인터뷰가 조금 빨리 끝난 적이 있다. 보통은 인터뷰가 끝나면 바로 가셔서 이번에도 빨리 가실 줄 알았는데 작가님께서 대화를 조금 나눠주셨다.


"무지렁 씨 처음 봤을 때 신기했어요. '이쪽 사람 같은데 어떻게 회사 생활이 가능하지?' 하구요."


뜻 모를 말씀이지만 뇌리에 박혔다.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창작 관련 학과 출신이거나 창작 업무를 한다. 그런데 유일하게 창작이 아닌 기업 지원 업무를 하는 더러 창작 쪽 사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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