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생에 가장 긴 근무 기간인 11개월 근무의 3번째 끝이자 11개월 근무 중 유일하게 계약 만료로 끝난 첫날이다.
백수로 맞이하는 첫날이 토요일이라 그런지 백수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는 않는다. 그저 누군가의 결혼식 핑계로 오랜만에 차려입어 기분이 좋을 뿐이다. 친구도 없는 내가 생에 처음으로 부케도 받았다.
'11개월이나 되는 계약기간도 채우고 부케도 받아보다니.'
정말이지 모두 만우절 거짓말 같은 날이다.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선물을 준비해야지. '결혼식 100일째 되는 날에 말린 부케를 돌려받으면 잘 산다'는 속설에 따라 부케를 말려 액자로 돌려드릴 생각이다. 최대한 원형을 복원한 부케 액자를 만들기 위해 받은 부케를 요리조리 돌려보며 눈에 담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남겼다.
실물이 더 예쁘지만, 사진도 충분히 예쁘다. 찍은 사진을 보니 친구도 없는데 부케를 받은 사실은 자랑하고 싶다. 홍보차 들어갔던 오픈 채팅방 중에 유일하게 아직 남아있는 웹소설 작가 오픈 채팅방에 사진을 올렸다.
"부케 받았어요!! 말려서 100일에 돌려드릴 거예요!!"
"어머. 부케 돌려드리려구요? 향초 재료 있는데 드릴까요?"
선의에는 선의가 붙나 보다. 말도 거의 섞어보지 않았고 얼굴도 한두 번 본 사람을 위해 결혼식에 참석하고 부케도 돌려드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말도 아예 섞어보지 않으신 분께서 선뜻 향초 재료를 나눠주신다고 한다. 순간 부담스럽기도 하고 조금 귀찮다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선물은 다다익선.
"앗, 괜찮으시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액자에 향초 만들기까지 계획에 추가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부케를 인수분해 해 여기저기 널어놓기 시작했다. 최대한 많은 꽃과 풀들이 예쁘게 말라주길 바라며.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라는 체에 쳐질수록 좋은 것들만 곱게 걸러 남겨져 추억이 되는 모양이다. 학창 시절에는 좋은 기억이 없는 줄 알았던 나조차도 직장 생활에 눈물이 날 때마다 재송동이 배경인 행복한 꿈을 꿨으니 말이다. 그리고 꿈꾼 날이면 으레 다짐했었다.
'언젠가 재송동에 다시 가보리라.'
그러나 막상 부산으로 돌아오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또 가지 않게 되더라. 멀리 있을 때는 그리웠는데 막상 언제든지 갈 수 있게 되면 소중함을 잃어버리는 곳. 온갖 좋은 것들이 그러하듯 고향도 그러한 것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재송동은 내 머릿속에서 뿌옇지만 선명하고 따듯한 색으로 미화되고 있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가까이 있을 때에에~~ 붙잡지 그랬어~~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 고!'
아빠 생전 집에서 자주 부르던 오승근 님의 노래 가사다. 정말이지 기회가 있을 때 해야 한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나는 최근에도 재송동 꿈을 꿨다. 수구초심이라고 여우도 죽을 때 고향을 그리워한다는데 나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고향에 가봐야겠다. 이번 기회에는 정말 가야겠다. 숙원을 해소하기 위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백수 생활 1주일째에 학창 시절을 보냈던 재송동으로 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그대로였고 많은 것들이 낡았으며 많은 것들이 또 변해 있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장면들을 핸드폰으로 찍어댔다.
'찰칵.' 변하지 않은 도로와 삼거리 길을 찍었다. 자주 지나가던 빨간 벽돌의 빵집은 낡고 빈 건물이 되었다. 그 외에도 많은 가게들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났다. 그리고 여태 보지 못했던 평일 낮 학교와 회사 밖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어느 가게 옆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줌마에게서 여유로움을 볼 수 있었다. '찰칵.' 그러고 보니 나도 지금은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더라.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때 전동 휠체어로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장애인분과 건너편 길에서 등산 스틱 두 개를 이용해 경사가 심한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씩씩한 노인분이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찰칵, 찰칵.' 그들에게서 활기가 느껴졌다. 젊고 사지도 멀쩡한데 속이 썩어 죽을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이 퍽 우습게 느껴졌다.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두 손을 꼭 잡은 채 서로에게 의지하며 길을 걷는 노부부의 사랑이 보여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들었다. 나도 저렇게 서로 믿고 의지하며 늙어갈 남편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좋은 면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나처럼 사람 구경을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노인도 볼 수 있었다. 다만 4월의 햇살이 좋아 그런지 그 모습마저도 따스하게 느껴졌다.
시장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수다를 떠는 사람들에게서 따뜻한 인정을 볼 수 있었다. 나도 저 무리에 끼여 음식도 얻어먹고 말도 섞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 멀리서 사진만 한 장 찍고 지나갔다.
평일 낮이라 근무 중인 사람들도 당연히 많았다. '찰칵, 찰칵, 찰칵.' 중간중간 보인 열심히 근무하시는 배달기사님들, 환경미화원님, 유리벽을 닦는 직원분과 낮은 지붕 위에서 페인트를 바르시던 페인트공님 등에게서 열심히 사는 삶의 아름다움도 볼 수 있었다.
찰리 채플린 명언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데 나도 근무할 때에 저분들처럼 아름다워 보였을까. 저분들 중에도 속은 나처럼 썩어 문드러진 분들이 계실까.
산책이 거의 끝나가는 그때, 축축한 무언가가 내 다리에 닿았다. 내려보니 산책길이 마냥 행복한 강아지가 내게도 눈부신 미소를 나눠주고 있다.
"헥, 헥, 헥, 헥."
기분 좋은 강아지의 행복에 전염되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엄마 손 꼭 잡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어린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따듯하고 부러워서 그 장면도 '찰칵.' 그 순간 아이가 홱 뒤돌아 나를 확인한 후 엄마를 톡톡 쳤다. 몰래 찍어서 혼나는 건 아닐까. 걱정하던 순간.
아이가 별처럼 환한 미소와 함께 다리를 벌리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 옆에 브이를 만들어 포즈를 취해줬다. 엄마를 부른 것은 같이 포즈를 취해주자는 뜻이었나 보다. 나는 속으로 감사 인사를 하며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찰칵.‘
그렇게 나는 고향에서 과거, 현재, 미래와 여유와 열정과 정겨움을 얻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