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음식과 물품 등 나의 소비재에 대한 취향도 눈을 떴다. 그리고 소비를 하려면 돈을 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벌면 좋을까? 역시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면 최고겠지.
'하고 싶은 일은 있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또 버퍼링이 걸렸다. 먹고 쓰는 것에 대한 취향은 알겠는데, 하고 싶은 일은 아직 없다. 하고 싶은 일도 원하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겪어봐야 알 것 같다.
하지만 돈만 쓰면 금방 알 수 있는 소비재 취향과는 달리,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는 돈은 물론이고 시간도 필요하다. 금방금방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를 알기 위해서는 꽤 많은 것들이 투자되어야 하다 보니 좀 더 신중해지기 시작했다.
남은 돈과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통장 잔액 확인했다. 200만 원, 여전한 200만 원이 나를 반겨줬다. 좀 더 신중해지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은 금방금방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를 겪어보기 위해서는 생계비부터 꽤 많은 것들이 투자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또 200만 원이 전부고 200만 원은 약 두어 달의 생활비에 불과하다. 한 달 안에 빠르게 구직이 되어야 직장 생활 첫 달의 생활비까지 쓸 수 있는 정도의 금액.
여유가 없다고 또 구직만 하고 일만 하기에는 목숨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관심 가는 일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한참의 고민 끝에 관심 가는 일을 찾는 것은 역시 교육으로 시작하는 게 무난하다고 판단했다. 업무가 아니다 보니 부담 없이 시도해 볼 수 있고 해보고 좋으면 최고고 아니라면 말면 그만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수업을 듣는 것도 돈이다. 최소한 수강료와 재료비가 필요하다. 덤으로 수업을 듣는 동안의 생계비도 필요하고 일을 하지 않는 기간의 경력과 수입에 대한 기회비용도 추가다.
'비교적 저렴하게 수업 들을 방법은 없나?'
생계비와 경력 공백은 어쩔 수 없어도 수강료와 재료비 부담이라도 덜고 싶다. 고민하다 경기도 평생학습관에서 무료로 영상편집을 배웠던 사실이 떠올랐다. 부산에도 평생학습관이 있겠지. 부산 평생학습관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마침, 며칠 뒤 수강 신청이 시작될 예정이다. 강좌 리스트를 훑어보니 드물지만, 직장인을 위한 평일 야간 수업도 있고 주말 수업도 있다.
'이거다.'
강좌 리스트에서 평일 야간 수업과 주말 수업 중에 관심 가는 수업을 골라냈다. 그렇게 주말에는 취업용으로 숲해설가 양성 과정을, 주중 야간에는 경영컨설턴트의 자질 중 하나로 생각하는 전문적인 말투를 위해 스피치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렇게 구직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세팅도 끝났다. 살고 싶어졌기에 바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구직이 길어질 경우를 대비해 구직급여도 신청했다.
구직급여 신청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여태 구직급여 수급 가능 여부를 몰랐거나 항상 빠른 취업이 가능해 보여서 신청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일자리라는 게 내가 일할 의지만 있다고 해서 당장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특히 여기 부산에서 뼈저리게 배웠다. 마침, 확실하게 구직급여 수급 대상이기도 하다. 보험이 필요했다.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참 많다. 덕분에 나라에서 해주는 무료 수업인데도 불구하고 대단한 스펙의 강사님들이 진행하시는 양질의 강의 무료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바보 같은 나는 '배움을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따로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처럼 양질의 수업은 성장에 목마른 나에게 성장으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을 인도해 줬다. 하지만 결국 물은 말이 직접 먹어야 하는 법.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성장에 목마르다고 말만 하면서 정작 물가에서 물을 먹지 않는 게으르고 욕심 많은 말이었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문적인 분위기로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스피치 수업은 이론만 안다고 되는 수업이 아니다. 배운 것을 제대로 흡수하려면 수업 시간에 학습한 것을 꾸준히 연습해서 체화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총 4회차의 수업 중 2회차 때에 전문적으로 말하는 법을 연습하고 있는 나의 말투가 부자연스러워 부끄러웠다. 완전히 체화되기 전까지의 어색한 기간을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수업이 거의 끝나가는 3회차나 되어서야 이상한 점을 직감했다.
'다른 사람들은 많이 나아졌는데 나는 왜 아직 그대로지?'
이론만 배우고 끝낼 것이 아니라 연습의 중요성이 그때 와닿았다. 그러고 보니 컨설팅 회사에서 만난 동기의 아나운서 발음의 비결은 피나는 노력이라는 것도 기억났다. 발음을 체화하기 위해 교육비는 물론이고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1년을 연습했다지.
알면 뭐 하나. 게으른 천성은 어디 가지 않는지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천성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강사님의 좋은 강의는 나에게 죽은 지식이 되었다. 뭐, 전문적인 애티튜트로 하는 경영 컨설팅이 나와 맞지 않다는 정도는 알았으니까 아주 소득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잘하는 거, 좋아하는 거 찾으면 그때 열심히 하면 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