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흠뻑 빠질 줄도 알아야 한다

by 무우지렁이

5월의 어느 날, 짱X 푸딩을 영접하기 위해 팝업스토어에 방문했다.


목표는 대형 푸딩이었으나 생각보다 꽤 비싼 가격에 작은 푸딩 하나로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푸딩에 대한 아쉬움에 빈 용기를 돌려보며 중얼거렸다.


"푸딩 비싸기는 엄청 비싼데 너무 작고 잘 팔지도 않어. 차라리 만들어 먹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도 있고 같은 값에 배 터지게 먹을 수도 있을 거 같구만."


그렇게 호기롭게 푸딩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며칠 후, 침대에 누워 인터넷에서 재료도 가장 적게 들어가고 조리법도 간단한 푸딩 레시피를 찾았다.


'생각보다 쉽구만! 할만하겠는데?'


바보 같은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장장 13시간 동안 '다채로운 사고를 치며 많은 것들을 배우는 일'에 돌입했다.


맛있는 푸딩도 대량으로 만들고 레시피도 공유하고자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준비물도 가지런히 정돈해 사진도 찍고 시럽 휘젓는 장면 등 액션 샷도 열심히 찍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투자해서 얻은 것은 7개의 참사였다.


우선 시럽을 만들기 위해 휘젓다가 시럽이 옷에 튀어 좋아하는 옷에 얼룩이 생겼다.


"앜ㅋㅋ. 진짜 웃기다."


혼자서 깔깔 웃으며 다음 과정으로 푸딩 재료들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이때 전자레인지 전용 용기가 없어 선물 받은 새 냄비를 전자레인지에 데우다가 손잡이를 구워 먹었다. 조금 당황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 요리를 강행했다.




세 번째 과정은 방금 데운 재료에 채반에 거른 달물을 붓는 것이었는데, 집에 반도 없거니와 굳이 써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채반 안 써도 별문제는 없겠지.'


안일한 생각으로 달걀물을 투척하고 레시피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둥둥 떠 있는 정체불명의 달 덩어리들(나중에 찾아보니 '알끈'이었다). 징그러워서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얼마나 놀랐던지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세 번째 사고를 치며 '레시피는 필요하니까 있는 것'이라는 것과 '고생하기 싫으면, 최소한의 준비는 하고 작업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이대로는 요리를 할 수 없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둥둥이들을 분리하기 위해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여러 번 옮겨보았지만, 둥둥이와 남아야 할 재료가 기존과 같은 비율로 소분 뿐이었다.


울고 싶다. 너무너무 포기하고 싶다. 하지만 들어간 재료비가 아까워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다. 망연자실해서 쭈그려있다가 숟가락과 국자를 이용해 하나씩 걷어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놈들, 잡히면 버려질 운명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동동 떠 미끄덩한 몸(?)을 이용해 요리조리 피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한참을 밀당만 당하고 이번에는 아예 하나도 건져낼 수 없었다.


"아니, 왜 안 떠지냐고오오오!!"


덕분에 바짝 약이 올라 소리를 앜앜 지르며 끔찍한 것에 국자를 푹푹 담다. 그때, 둥둥이들이 국자에 담기기 시작했다. 국자가 깊게 들어갔다가 나오며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둥둥이들이 국자에 담겼던 것이었다. 물론 먹을 부분도 함께 담기긴 했다. 하지만 전체를 버리느니 일부를 희생하고 다수를 살리는 편이 낫다.


그렇게 국자로 둥둥이들을 걷어내며 '잃을 것을 겁내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일부 손실도 감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과 '뭐든 정말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깊게 빠져봐야 한다.'는 것들을 배웠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중탕 후 냉장고에서 식히기만 하면 완성이다.


'고생 끝!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는 푸딩을 먹을 수 있겠지!'


만들어 둔 시럽과 푸딩 재료들을 두꺼운 유리잔 2잔과 머그잔 2잔, 총 4개의 잔으로 옮겨 담았다. 그리고 각각의 컵들에 랩을 씌운 후, 중탕을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다.


'와… 하루 종일 씨름했구나. 피곤할 만하다.'


몰려드는 피로감에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중탕 중인 푸딩 재료들을 감상하기 위해 돌아왔는데 유리잔 하나가 조금 이상하다.


'원래 저 자리에 이음새가 있었던가?'


긴가민가하는 마음에 잠시 중탕 중이던 뚜껑을 열고 유리잔에 씌운 랩을 고정하던 고무줄을 벗겨냈다.


'쩍'


고무줄이 벗겨지자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유리잔이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며 푸딩 국물도 쏟아졌다. 두꺼운 유리잔 하나가 운명하셨다. 두 동강이 난 유리잔을 보며 내 마음도 두 동강이 나버렸다.


'안돼!! 안돼에에에… 흐어어어엉….'


그 고생을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다. 망연자실해서 쪼개진 유리잔을 보고 있는데 그래도 약간이지만 푸딩이 되어 있다. 유가루를 먹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만들어질 푸딩 맛이 궁금한 것과 아까운 마음이 걱정을 앞섰기에 바로 숟가락을 가져와 깨진 잔에 묻은 푸딩 잔재들을 걷어 먹었다.


'오, 맛있다! 맛있어!'


생각보다 훌륭한 맛에 기분이 좋다. 쪼개지지만 않으면 잘되고 있는 것 같아 마음도 놓인다. 아니, 안 될 게 뭐가 있나. 쪼개질 수도 있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내 행동 하나뿐이다. 그 외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것? 그럴 수 있다.


그리고 푸딩은 아직 3개나 남아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는 푸딩을 3개나 먹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머지 잔들을 다시 중탕시키고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중간 점검을 위해 다시 냄비로 다가갔다가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중탕 물이 노란색이 되어 있다.


'?????'


불길함을 직감하고 뚜껑 열었더니 나머지 유리잔 하나가 맥없이 쪼개져버렸다. 이렇게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사고로 인해 유리잔이 모두 쪼개져 버렸다.


"띠링! '유리잔의 파괴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실성한 와중에 농담이 나왔다. 이번에도 깨진 유리잔에 약간의 푸딩이 만들어져 있다. 와신상담하듯 유리잔에 달라붙은 푸딩들을 살살 긁어먹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푸딩이 2개나 남아있다고, 남은 두 개라도 잘하면 된다고.


어찌어찌 중탕을 완료하고 살아남은 머그잔들을 냉장고에 넣었다. 이제 식히면 정말 끝이다. 남은 2개라도 맛있는 푸딩을 먹을 수는 있겠지.




또 몇 시간 후.


냉장고에 있는 푸딩들을 흔들어보니 찰랑찰랑하던 것들이 이제 움직이지 않는다. 단단하게 잘 굳은 모양이다.


'드디어 만화에서 본 띠용띠용 대왕 푸딩을 먹어보는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컵을 접시 위에 뒤집었다. 하지만 푸딩이 나오질 않는다. 한참을 나오지 않아 손으로 컵 바닥을 퍽퍽 쳤더니 '퍽!!' 곤죽이 접시와 테이블에 쏟아졌다.


'아, 아아아아앜…!!'


밤이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쳐다만 보다가 접시와 테이블에 쏟긴 곤죽을 쫍쫍 핥아먹었다. 맛은 있지만 인간성을 버리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양도 생각보다는 적다. 이러려고 하루 종일 걸려서 그 개고생을 하고 옷도 버리고 냄비도 태워 먹고 유리잔도 2개나 깨버린 건가. 너무 속상하다.


멘탈이 다 터진 상태로 약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가 마지막 푸딩을 꺼냈다. 이번에는 최악의 경우, 아까와 같은 정도의 묽기를 가질 것을 대비해 국그릇에 뒤집었다. 뒤집자마자 푸딩이 쏟아져 나왔다. 푸악. 겉보기에는 푸딩이 된 모양새였는데 이번에는 건더기조차 없는 액체가 바닥까지 흘러버렸다.


최종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진이 다 빠져서 이제는 눈물도 나지 않는다. 이렇게 고생고생해서 만들었으면 인간적으로 하나라도 살아남아서 잘 되던가. 접시와 테이블은 물론이고 바닥까지 망설임 없이 핥아먹으며 생각했다.


'기왕 배우는 거 제대로 배우기 위한 것인지 살아남은 것들도 처참히 실패해 버렸네.'


그렇게 하루 종일 투자해서 얻은 것들은 얼룩진 옷과 손잡이가 구워진 냄비, 유 조각들. 그리고 그릇이 아닌 곳에 있는 푸딩이길 바랬던 것들 약간이지만, 그래도 다양한 사고들을 쳐가면서 배운 것들이 많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몇달 후 비빔면을 해 먹기 위해 채반도 사 왔지만, 두 번 다시는 푸딩 만들기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푸딩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한 번 깊게 빠져 끝까지 해봤고 나는 푸딩 만들기를 못 하는 것도 알았으니 이제 두 번 다시는 안 하면 된다.


아차, 푸딩을 잘 팔지 않는 이유 중 하나를 알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다. 결론적으로 푸딩은 보일 때마다 사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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