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아카데미 수업이 진행 중인 9월 중순,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작가님, 너무 오랜만에 연락드리지요? 혹시 아직 전시할 수 있실까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약간의 대화가 더 이어진 후에야 봄에 신청했었던 전시 참여 관련 전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던 6월 말, 해당 프로젝트의 첫 전시를 관람했었다.
떨어졌구나. 잠깐의 씁쓸함을 뒤로한 채 작품들을 감상했다. 그런데 작품들이 어디서 본 것 같다. 작가명도 낯이 익다. 재빨리 핸드폰에 작가명을 검색했다.
전시 작가님은 무지렁이인 나도 알 만큼 인지도가 있으신 작가님이셨다. '그래, 전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그렇게 남아있던 일말의 기대도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나'인 내게도 전시 연락이 온 것이다.
'나도 죽기 전에 전시해 보는 거야?!‘
정말이지 죽을 때가 되니까 평생의 꿈이던 전시도 해보나 보다. 전시만 끝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개인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전시를 위한 첫 번째 인터뷰에서 몇몇 사안들을 들었다.
내 전시가 마지막 전시가 될 것이라는 것과 첫 전시는 전문가들의 손길로 준비되었지만, 이번에는 센터장님과 나 단둘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기존 전시의 메인 공간은 워낙 활용도가 높고 폐쇄적인 공간이라 원활한 전시 관람이 힘든 편이어서 내 전시의 메인 장소는 다른 공간이 될 것이라는 것까지.
'앞의 전시는 작가님의 전시를 전문가가 공간 연출을 해주고 전문가가 인터뷰도 해주셨는데, 이번 전시는 나랑 센터장님 단둘이서 준비해야 한다고?'
순간 서운한 감정과 함께 걱정이 앞섰다. 직접 봤던 앞의 전시와 전부 초보가 하는 내 전시의 퀄리티가 너무 많이 비교될까 봐. 그때 센터장님께서 말씀을 덧붙였다.
"저희 둘이서 가능할까요…."
걱정하시는 센터장님을 보자 나까지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면 전시가 없는 일이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지금은 퀄리티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전시 기회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해야겠다. 그렇게 짐짓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할 수 있어요! 해봐요!"
전시를 위한 두 번째 인터뷰. 이번 인터뷰부터는 본격적으로 전시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정한 것은 전시 공간.
센터장님께서 센터 내에 전시가 가능한 모든 장소를 소개해 주셨다. 기존 전시가 진행되었던 안쪽 공간과 입구 옆 공간 그리고 메인 공간까지.
"여기로 할래요."
센터장님의 전시 공간 소개가 끝나자마자 메인 공간을 지목했다. 나름 메인 공간으로 위치해 있는데도 관심받지 못하고 방치된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내가 전시에 지원할 때 제출했던 내용들을 확인한 후, 다시 한번 전시 주제와 목적, 전시 물품 등 전시 관련 질문들을 받았다.
"하고 싶은 주제는 그때랑 지금이랑 거의 비슷한데요. 전시 물품은 이제부터 만들어야 해요."
지원했을 때와 지금의 생각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전시에 대한 근간은 전시에 지원했던 때와 같다. 메인 주제는 '시도해 보는 삶',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시도를 위한 용기가 생기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전시 물품으로는….
전시 장소인 메인 공간을 보자 숨이 텁, 하고 막혔다. 내가 생각한 전시는 그림이었다. 전시라면 응당 그림 전시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지난 전시를 보니 서너 점만 그려도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곳은 작고 수많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면 작품인 그림보다는 입체 예술로 채워야 할 것 같은 중압감에 빠졌다.
'나한테 전시할 만한 입체 작품이 있나? 아니면 만들 줄 아는 거라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는 것 같다. 고민하고 있는 내게 센터장님이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천천히 해주셔도 돼요."
며칠이 지났다. 하지만 전시 물품에 대한 고민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입체 예술은 너무 상업적인데 본 전시는 상업적인 전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비상업적인 입체 예술'에 한정 지으니 할 줄 아는 것이 아예 없다.
'진짜 어쩌지….'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는 관점을 바꿔보면 답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필수 요소만 남기고 가변적인 요소들은 싹 지우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공간은 무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전시할 수 있는, 비상업적인 것들이 뭐가 있지?'
생각의 폭을 넓히자, 전시 후보들이 봇물 터지듯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일단 작년에 전시했던 곰인형과 우산 사진! 그래, 사진이 가능하구나. 사진이라면 쓰레기장에 핀 꽃 사진도 전시해 보고 싶었는데 이거도 전시하면 되겠다. 아, 언젠가 찍었던 분홍색 하늘도 이뻤어. 이것도 전시해야지! 고향에서 찍은 사진들도 전시하면 좋겠는데. 아,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라면 푸딩 망했던 얘기랑 부케 액자랑 캔들 만든 얘기도 좋겠다!'
'그러고 보니 그때 온라인 전시에서 영상도 전시하던데. 영상 전시가 가능하다면 고양이 영화도 가능하겠네!
와, 지금까지 생각난 것들만 해도 이미 다 채우겠는데? 아차, 까먹기 전에 일단 적어두자!'
그렇게 전시 작품 후보들이 나왔다. 이제 남은 것은 '두루뭉술한 전시 의도를 뾰족하게 만드는 것'과 전시 의도를 기반으로 전시할 작품들을 선정한 후 '작품 제작'과 '전시 준비'다.
'하…. 이 말을 하려고 온 게 아니었는데.'
언젠가부터 인터뷰를 마치고 건물에서 나오면 습관처럼 한숨을 쉬게 되었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해 터덜터덜 버스 정류소로 간다.
인터뷰는 전시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 의미는 퇴색되어 어느샌가 전시 기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전시 기획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간의 설움과 현재진행형인 불평불만을 성난 파도처럼 와르르 쏟아내고 있는 나와 그런 나의 분노를 받아주시다 못해 나와 전시에서 관심을 거두신 센터장님만 계실 뿐이었다.
'피해 주는 건 싫어. 하지만 당장 고쳐지지는 않는걸….'
한참의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후회만 하고 끝낼 거라면 후회도 하지 않기로. 당장 개선하지 못할 거라면, 행동하지 않을 일에 의미 없는 스트레스도 받지 말자고 말이다.
그렇게 센터장님에 대한 죄송함을 발판 삼아 여태까지의 쏟아냄 안에서 '전시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대해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솔직히 오늘도 너무 힘들었어. 살고 싶어져서 다시 먹고 살 궁리만 하다 보니 힘들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어. 세상이 나더러 이제는 그만 살라고 하는 것 같아.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 싶은데 그래도 벌여놓은 마지막 일, 전시는 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아직 살아는 있는데 진짜 너무너무 힘들다.'
스스로를 연민해 봤자 나오는 것은 눈물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필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다. 눈물은 이미 많이 쏟아냈다. 이제는 그동안의 눈물로 씻어낸 더러운 감정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을 진주알 같은 생각들을 발굴해 낼 차례다. 그리고 진주알을 모아 진주 목걸이를 만들듯, 생각들을 모아 전시 준비를 해야 한다.
'맞아, 전시 때문에 살아있는 거였지. 참, 전시 신청은 왜 했었더라?'
'표면적으로는 지난 1년간의 경험을 통해 내가 성취한 것들을 자랑하기 위해서였었고, 이면적으로는 다른 사람들도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였지.'
그렇게 눈물을 훔치고 생각의 바다에서 진주를 찾기 위해 헤엄쳤다.
그랬다. 어느 순간 나도 너무너무 살고 싶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삶을 공유하고 싶어졌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아닌 적극적으로, 살고 싶어서 사는 삶을. 곰곰이 생각해 봤었다. 내가 왜 마음이 바뀌었던 것인지를.
처음에는 나도 이제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내가 아주 쓸모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도.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나의 취향에 따른 것이거나 운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해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런 좋은 것들을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나는 어떻게 나의 장점을 알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을까? 나는 어떻게 좋은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어떻게…. 시작점을 거슬러 올라가니 답이 보였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적극 시도해 보았음.'
그것이 나의 답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전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던 때에 전시 참여 작가 모집 글을 보았던 것이었다.
그래, 눈물 나게 힘든 곳이지만, 버티기 힘들어서 당장에라도 죽어버리고 싶은 곳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좋은 곳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아직 시도해 보지 않아서 모를 뿐이지, 당신도 당신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일단 시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 나왔네. 이제 이걸 한 문장으로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갑갑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밤이 깊어 새카만 하늘에는 작고 희미하지만,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밤하늘이 눈에 들어오며 순식간에 모든 생각들이 정리되어 전시 제목과 부제목이 결정되었다.
'이거다!'
그렇게 뾰족해진 전시 의도와 함께 자연스럽게 전시 제목과 부제목이 결정되었다.
어느 별의 기록
-삶이 항상 어두워 보여도 가끔은 빛나는 순간들이 있어요-
처음 공간을 소개받았을 때는 제공해 주신 공간의 모든 칸을 사용해 내가 전시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전시하려 했었다.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주제가 확정이 나자 많은 부분이 수정 및 폐기되었다. 전시 물품 선정의 기준이 나의 욕심에서 전하고 싶은 메세지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획 의도에 맞고 전시가 가능한 것들을 추려내고 분류하고 덜어내는 작업을 하다 보니 공간을 모두 채울 수 없어졌다. 또 한 번의 고민 끝에 과감하게 전시에 활용할 칸수를 줄다.
'그래, 사용하지 않는 맨 윗줄에는 현수막을 달아 전시 공간임를 알리자.'
그렇게 제일 윗줄의 6칸을 가리고 가운데의 큰 공간과 양옆의 4칸에만 전시를 하기로 했다. 최대한 적은 금액으로 전시 준비를 해야 하기에 현수막은 종이에 내가 직접 그려 만들기로 했다.
전시 작품은 다른 사람들도 가끔은 하늘을 보는 여유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분홍색 노을' 사진, 쓰레기장에도 꽃은 피더라는 '건물 틈 쓰레기장에 핀 꽃' 사진, 버리는 것도 사람이지만 도와주는 것도 사람이라는 '곰인형과 우산' 사진, 그리고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름다운 영화로 승화된 '고양이 영화'로 정했다.
그렇게 작은 칸들을 채울 전시 목록이 나왔다. 이제 가장 큰 칸에 전시할 물품을 정할 차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커다란 칸을 채울 하나의 멋진 작품은 내 실력으로는 무리다.
'내가 명필이라면 저 자리에 큰 한지에 일필휘지로 만든 작품을 전시할 텐데.'
순간 '캘리그라피'와 '빨랫줄에 사진을 집어두는 인테리어'가 믹싱되며, 가장 큰 공간은 '빨랫줄에 캘리그라피를 매달아 전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여태 썼던 캘리 작품들을 모아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캘리도 전시도 모두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관람객 분들의 꿈과 인류애도 상기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만의 전시가 아닌, 관람객분들과 함께 완성하는 전시를 만들어보자. 그래, 메인 공간을 관람객 분들께 내어드리는 거야. 우선 내가 만든 캘리 문구들을 마중물로 전시해 두고 관람객 분들의 꿈과 버킷리스트로 채워 전시를 완성하자. 마침, 연말이니까 새해 목표도 괜찮겠다. 만약 아직 꿈이 없다면 응원의 말씀으로 전시를 완성해달라고 부탁해 보자.'
그렇게 전시의 제목과 부제목이 정해졌다.
어느 별(들)의 기록
-삶이 항상 어두워 보여도 가끔은 빛나는 순간들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