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괜찮아

by 무우지렁이

11월 초, 드디어 문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전부 끝났다. 기다리다 못한 센터장님께서 전시 날짜를 확정하고 전시 홍보 포스터도 만들어 주셨다. 전시 시작 일정은 11월 27일 월요일. 이제라도 집중해서 전시 준비를 끝내야 한다.


꽤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가장 먼저 여태 진행한 것들을 돌아봤다. 전시 주제와 물품들이 정해져 있다. 전시 구상이 되어 있다. 확인해 보니 사진 일기와 답례품을 제외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제는 정말 만들어야 한다.




만들어야 하는 사진 일기는 총 3가지다. 고향에서 찍은 사진 일기와 망한 푸딩 일기 그리고 부케 액자와 캔들 일기.


그중 고향에서 찍은 사진들을 선별하기 위해 사진들을 다시 보고 있다. 선별까지는 금방 했는데 막상 일기를 제작하려니 디자인을 위한 하얀 공간이 막막하다. 이 공간에 사진을 배치하고 글을 배치해야 한다.


'일단 무슨 기준으로 배치하지? 내가 본 순서대로? 아니면, 태어나서 늙어가는 인생 시간 순서로?‘


또다시 선별해 둔 사진들을 멍하게 바라보다 머리를 흔들었다. 더는 물러날 시간이 없다. 겁먹고 졸아있을 시간은 충분히 누렸다. 이미 한참이나 늦었다. 하지만 막상 시도하려고 해도 역시 덜컥 겁부터 났다. 또다시 머리가 굳었다.


'우선 쉬운 것부터, 쉽게 하자.‘


그렇게 레시피(?)가 있고 블로그에 써둔 일기가 있는 '망한 푸딩 이야기'를 먼저 작업하기로 했다. 작업 툴 사용법을 습득하는 부분에서 버벅였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블로그에 써둔 일기와 첨부해 둔 사진들을 기반으로 작업하니 금방 완성되었다. 내용이 완성되니 자연스럽게 제목도 따라붙었다. 그렇게 요리 X손의 인생 공부 '망한 푸딩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막상 해보니까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어렵지는 않은걸?‘


'해보기 전에는 쉬운 일인지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는 것'과 '겁먹고 스트레스만 받고 있기보다는 일단 시도해 봐야 한다는 것' 그 두 가지를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 번 해보고 나니 두 번째는 쉬웠다. 툴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나만의 사진 일기 규격이 생긴 덕에 다음 일기인 선의가 모여 만들어진 '부케 액자 & 부케 캔들 이야기'도 금방 만들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봄날의 고향 사람들' 일기만 만들면 끝이다.


두 개의 사진 일기를 제작하면서 마지막 일기의 사진 순서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선별한 사진들을 시간순과 묶음별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포즈인데 한쪽은 설레는 기다림 같고 한쪽은 시간을 죽이는 것 같아 보였던 모습들. 서로 손 꼭 잡고 의지하며 걸어가는 노부부의 사랑, 그리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시장에 아직 남아있는 복작복작 정겨운 모습, 산책 나와 기분이 좋은 강아지, 사진을 찍는 나를 발견하고 엄마와 함께 포즈를 취해준 아기의 사랑스러운 모습까지. 그렇게 고향에서의 13년과 14년 후의 '봄날의 고향 사람들' 사진 일기가 완성되었다.


세 개의 사진 일기의 인쇄 요청을 했다. 이제 택배만 도착하면 된다.




며칠 후, 사진 일기들이 센터에 도착했다.


"짜잔~!!"


센터장님께서 도착한 사진 3장과 사진 일기 3권을 보여주셨다. 모니터 속에서만 봤던 것들을 실물로 보게 되니 신기하다. 사진들은 액자에 넣고 사진 일기들도 미니 이젤에 얹어 전시장에 비치해 보았다. 모두 그럴듯한 작품들이 되었다. 나머지 두 칸도 각각 캘리그래피로 채웠다.


'됐다!!'


마지막으로 제일 큰 공간에 노끈과 압정을 이용해 빨래터를 만들고 작은 캘리 문구들을 빨래집게로 드문드문 매달았다. 센터장님께 미리 말씀 드려 놓았던 전지들과 포스터물감, 붓을 고르고 블루텍도 구매했다. 센터로 돌아와 전지들을 이어 붙여 현수막을 만들고 그 위에 포스터물감으로 전시 제목을 휘갈겼다.


'어느 별의 기록’


그리고 여분으로 산 연노랑 전지는 별 모양과 동그라미 모양으로 오려 전시장을 꾸몄다. 이 때에 센터에 놀러 와 있던 어린이와 함께 전시장을 꾸몄다. 그렇게 전시 준비가 끝났다. 완성된 전시장을 보자 센터장님께서 매우 놀라워하시며, 전시 기간을 기존 2주에서 1달로 늘려주셨다.


완성된 전시장을 보다 문득 깨달았다. 전시 주체인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 당연히 전시 준비도 멈췄던 것이었다. 전시에 와주실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생겼다. 그렇게 캘리를 하나 더 그려 전시장을 꾸몄다.


'늦어도 괜찮아.'




전시에서 답례품으로 나눠드릴 캘리그래피도 하나하나 그려내고 꾸미고 포장했다. 개인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곳들에는 모두 홍보를 해놓았다. 이제 정말 전시만 시작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포스터를 만들어주셨던 매니저님의 업무 과중으로 인해 카드 뉴스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릴 예정이라는 것이다. 센터장님께서는 전시 시작 일정을 미루자고 말씀하셨다.


이미 11월 27일에 전시가 시작된다고 문화 예술교육에서 만난 분들과 친척들 그리고 지인들에게 홍보를 해뒀던 나는 난감해졌다.


"일정을 미루는 거는 제가 곤란해요. 대신 홍보 카드 뉴스도 제가 만들어볼게요."


그리고 아직 꿈을 시도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길 바라며 나의 이야기를 썼다.


카드 뉴스를 만드는 겸 내친김에 카드 뉴스 밑에 쓰일 문구까지 이전 작가님의 홍보 문구를 기반으로 제작했다. 그리고 전시가 시작되었다.




삶이 항상 어두워 보여도 가끔은 빛나는 순간들이 생기는데요
모두 작은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되더라고요.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이 항상 빛나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카드 뉴스 내용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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